불요불굴
더 많은 작업
불요불굴(不撓不屈)은 한번 먹은 마음이 흔들리거나 굽힘이 없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한서(漢書)》 권100 하 〈서전(敘傳) 하〉에서 반고(班固)가 왕상(王商)·사단(史丹)·부희(傅喜)의 열전을 짓는 까닭을 밝힌 대목에 “불요불굴”과 같은 말이 나온다.[4]
樂昌篤實,不橈不詘,遘閔既多,是用廢黜。
“낙창후(樂昌侯)는 성실하고 진실하여 휘지도 굽히지도 않았으나, 근심스러운 일을 많이 만나 끝내 쫓겨났다.” 낙창후 왕상은 한나라 성제(成帝) 때의 승상으로, 외척 왕봉(王鳳)과 맞서다 모함을 받아 물러났다. 《한서》 권82 〈왕상전〉에는 그가 뜻을 굽히지 않은 일이 실려 있다. 건시(建始) 3년(기원전 30) 가을, 큰물이 몰려온다는 헛소문에 장안이 발칵 뒤집히자 대장군 왕봉은 태후와 황제를 배에 태우고 백성을 성 위로 피하게 하자고 했고 신하들도 모두 따랐다. 좌장군이던 왕상만이 “나라가 평안한데 어찌 큰물이 하루아침에 닥치겠는가. 이는 틀림없이 헛소문이니 백성을 성에 올려 더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고 홀로 반대했다. 과연 헛소문으로 밝혀지자 성제는 왕상을 크게 칭찬했고, 왕봉은 몹시 부끄러워했다.[5] ‘橈’는 ‘撓’, ‘詘’은 ‘屈’과 같은 글자로 쓰였다. 당나라 이선(李善)은 《문선(文選)》 주석에서 이 구절을 “不撓不詘”로 인용했다.[6]
《성어전》은 중국어 ‘不屈不撓’의 語本을 《순자(荀子)》 〈법행(法行)〉에서 공자가 옥(玉)의 덕을 군자에 견주며 한 말 “꺾여도 휘지 않는 것은 용기이다(折而不橈,勇也)”로 보고, 《한서》 〈서전〉을 함께 참고한다.[2] 한편 ‘不撓不屈’ 네 글자는 명나라 왕수인(王守仁)의 〈군자정기(君子亭記)〉에서 대나무의 덕을 “우뚝 홀로 서서 휘지도 굽지도 않는다(挺然特立,不撓不屈)”고 읊은 대목에 보인다.[7]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3건이 있다. 가장 이른 것은 정조 4년(1780) 기사로, 암행어사가 힘없는 고을 두 곳의 형구 위반만 적발한 것을 두고 정조가 “불요불굴의 뜻에 부끄럽지 않겠는가(得無愧於不撓不屈之意乎)”라고 나무랐다.[8] 정조 23년(1799)에는 병자호란 뒤 심양에 볼모로 간 소현세자를 따라갔다가 청나라 역관을 제거하려던 일이 드러나 죽임을 당한 정뇌경(鄭雷卿)을 기리며, 사죄 한마디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는데도 “불요불굴하여 임금과 어버이에게 하직하고 칼날 밟기를 즐거운 곳에 가듯 했다”고 했다.[9]
문집에서는 그보다 이른 예가 있다. 홍위(洪葳)는 효종 5년(1654) 옥당에서 올린 차자에서 “임금의 얼굴을 범하며 바로 간하는 신하는 강직하고 불요불굴한 선비가 아니면 할 수 없다(苟非剛方正直不撓不屈之士,不能也)”고 했다.[10]
일본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도쿠토미 소호(徳富蘇峰)의 《시무일가언(時務一家言)》(1913)의 “어떤 것과도 응전하여 결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불요불굴의 정신”을 첫 용례로 든다.[3]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不 | 불 | 아니다 | 아니하다 |
| 撓 | 요 | 휘다, 어지럽히다 | 휘다, 흔들리다 |
| 不 | 불 | 아니다 | 아니하다 |
| 屈 | 굴 | 굽히다 | 굽히다, 굴복하다 |
일본어에서는 ‘撓’를 관용음 ‘とう’로 읽는다.[3]
- 수십 번의 거절 끝에 투자를 받아 낸 창업자의 불요불굴한 의지가 오늘의 회사를 만들었다.
- 그는 어떤 외압에도 불요불굴의 자세로 원칙을 지켰다.
- 일본 스모에서 오제키·요코즈나 승진을 통보받은 선수가 답례 구상(口上)에 사자성어를 넣는 관행은, 1993년 1월 사상 최연소(20세 5개월)로 오제키에 오른 다카하나다(훗날의 요코즈나 다카노하나)가 “앞으로도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스모의 도에 정진하겠습니다(今後も不撓不屈の精神で相撲道に精進いたします)”라고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현장의 기자들은 이 말의 한자와 뜻부터 찾아보느라 소란스러웠다고 한다.[11]
- 일본에는 세무 당국과 7년 동안 다툰 세무사 이즈카 다케시(飯塚毅)의 실화를 다룬 다카스기 료(高杉良)의 소설을 모리카와 도키히사(森川時久) 감독이 영화로 만든 《불요불굴(不撓不屈)》(2006)이 있다.[12]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불요불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6%88%EC%9A%94%EB%B6%88%EA%B5%B4, 확인날짜=2026-09-26.
-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不屈不撓”,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598, 확인날짜=2026-09-26.
- ↑ 3.0 3.1 3.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不撓不屈”,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D%E6%92%93%E4%B8%8D%E5%B1%88, 확인날짜=2026-09-26.
- ↑ 반고, 《한서》 권100 하 〈서전 하〉.
- ↑ 반고, 《한서》 권82 〈왕상사단부희전(王商史丹傅喜傳)〉 왕상(王商).
- ↑ 이선 주, 《문선(文選)》 권47.
- ↑ 왕수인, 〈군자정기(君子亭記)〉, 《왕양명집(王陽明集)》 권2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10권, 정조 4년 7월 26일 임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0407026_002, 확인날짜=2026-09-2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52권, 정조 23년 7월 27일 계미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2307027_001, 확인날짜=2026-09-26.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홍위, 《청계집(淸溪集)》 권6 〈옥당응지진언차(玉堂應旨進言箚)〉,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84A_0070_010_0010, 확인날짜=2026-09-26.
- ↑ “大相撲で現場の報道陣を騒然とさせた貴花田の「不撓不屈」 伝達式口上、四字熟語のルーツ”, THE ANSWER, 2025-01-29, https://the-ans.jp/news/501003/, 확인날짜=2026-09-26.
- ↑ “不撓不屈”, 映画.com, https://eiga.com/movie/56513/, 확인날짜=2026-09-26.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백절불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B1%EC%A0%88%EB%B6%88%EA%B5%B4,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