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절불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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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절불굴(百折不屈)은 어떠한 난관에도 결코 굽히지 않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 ‘백절불요(百折不撓)’라고도 한다.[1]
백절불굴은 글자 그대로 ‘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거듭된 실패와 좌절에도 뜻을 꺾지 않는 굳센 의지를 가리킨다. “백절불굴의 의지”, “백절불굴의 정신”처럼 주로 관형어로 쓴다. 역경을 이겨 낸 인물을 기리거나 스스로 각오를 다질 때 자주 쓰인다.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는 같은 뜻으로 ‘백절불요(百折不撓)’를 주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百折不撓’를 표제어로 올리고, ‘百折不屈’은 따로 싣지 않는다.[2]
《성어전》은 ‘百折不撓’가 후한의 채옹(蔡邕)이 태위 교현(橋玄)을 기려 지은 비문 〈태위교현비(太尉喬玄碑)〉에서 나왔다고 본다.[2]
其性莊,疾華尚樸,有百折不撓、臨大節而不可奪之風。
“그 성품은 엄정하여 화려함을 싫어하고 질박함을 숭상했으며, 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고 큰 절개에 임해서는 빼앗을 수 없는 기풍이 있었다.”[3]
교현은 권세 있는 관리의 비리를 거침없이 탄핵한 강직한 인물이었다. 《성어전》이 소개하는 일화에 따르면, 강도들이 그의 어린 아들을 인질로 잡고 몸값을 요구하자 관병이 아들이 다칠까 봐 머뭇거렸는데, 교현은 “강도가 법을 우습게 아는데 내 아들 때문에 풀어 줄 수는 없다”며 공격을 재촉했다. 강도들은 잡혔지만 아들은 목숨을 잃었다.[2] 채옹은 이런 교현의 기개를 ‘百折不撓’라고 기렸다. 《성어전》은 《예문유취(藝文類聚)》에는 이 구절이 ‘有折而不撓’로 인용되어 있다고 덧붙인다.[2]
‘百折不屈’이라는 형태도 중국 문헌에 나온다. 명나라 정민정(程敏政)의 《황돈문집(篁墩文集)》은 송나라 문천상(文天祥)을 두고 “강상을 짊어진 몸으로 우뚝이 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고 죽음을 돌아가듯 맞았다(挺然以其綱常之身百折不屈就死如歸)”라고 썼다.[4] 《안노공문집(顔魯公文集)》(사부총간본)의 서문도 안진경(顔眞卿)이 조정에서 바른말을 하다 여러 번 오르내리면서도 “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았다(屢升屢復百折不屈)”고 기렸다.[5]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百 | 백 | 일백 | 여러 번, 수없이 |
| 折 | 절 | 꺾다, 꺾이다 | 좌절하다, 꺾이다 |
| 不 | 불 | 아니다 | ~하지 않다 |
| 屈 | 굴 | 굽히다 | 굴복하다 |
‘百折不撓’의 ‘撓(요)’는 ‘휘다, 굽히다’라는 뜻으로 ‘屈’과 같다. 《성어전》은 ‘撓’를 ‘饒’로 잘못 쓰지 말라고 적어 둔다.[2]
- 수십 번의 투자 거절에도 그는 백절불굴의 의지로 서비스를 출시했다.
- 몇 달째 재현되지 않던 장애를 끝내 잡아낸 것은 백절불굴의 끈기 덕분이었다.
- 독립운동가들의 백절불굴 정신을 기리는 기념식이 열렸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백절불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B1%EC%A0%88%EB%B6%88%EA%B5%B4, 확인날짜=2026-09-26.
- ↑ 2.0 2.1 2.2 2.3 2.4 2.5 2.6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百折不撓”,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4, 확인날짜=2026-09-26.
- ↑ 채옹, 〈태위교현비(太尉喬玄碑)〉.
- ↑ 정민정, 《황돈문집(篁墩文集)》 권2.
- ↑ 《안노공문집(顔魯公文集)》(사부총간본) 서문.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경종실록》 14권, 경종 4년 2월 21일 을축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ta_10402021_001, 확인날짜=2026-09-26.
- ↑ 신득구, 《농산선생문집(農山先生文集)》 권9.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百折不撓”,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99%BE%E6%8A%98%E4%B8%8D%E6%92%93,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