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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청옥결(氷淸玉潔)은 얼음같이 맑고 옥같이 깨끗하다는 뜻으로, 티 없이 깨끗한 마음씨와 몸가짐을 비유하는 한자성어이다.[1]

주로 재물에 욕심이 없고 행실이 깨끗한 사람, 곧 청렴한 관리나 지조 있는 선비를 기릴 때 쓴다. 조선 시대에는 청백리를 천거하거나 사람의 행장·묘갈을 지을 때 자주 쓰였다.

중국어에서는 ‘冰清玉潔’로 쓰며, 《성어전》은 뜻을 셋으로 나눈다. 글자 그대로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한 모습, 품행이 고결하고 떳떳함, 그리고 여자가 정절을 굳게 지킴이다.[2] 명청 소설에서는 세 번째 뜻으로 쓴 예가 매우 많다. 한국어에서는 주로 청렴과 지조를 기리는 뜻으로 쓴다. 순서를 바꾼 ‘옥결빙청(玉潔冰淸)’도 같은 뜻이다.[2]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氷 빙 얼음 얼음. 冰과 같은 글자
淸 청 맑다 맑다
玉 옥 구슬, 옥 옥
潔 결 깨끗하다 깨끗하다

사마천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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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전》은 이 말의 근원을 한나라 사마천(司馬遷)이 벗 지준(摯峻)에게 보낸 편지 〈여지백릉서(與摯伯陵書)〉에서 찾는다. 이 편지는 진나라 황보밀(皇甫謐)의 《고사전(高士傳)》에 실려 전하며, 《태평어람》 권508도 이를 인용했다.[2] 지준은 자가 백릉(伯陵)으로 깨끗한 절개를 닦으며 산에 숨어 살았는데, 태사령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마천이 그에게 벼슬에 나오라고 권하며 이렇게 썼다.

遷聞君子所貴乎道者三,太上立德,其次立言,其次立功。伏惟伯陵材能絕人,高尚其志以善厥身,冰清玉潔,不以細行累其名,固已貴矣,然未盡太上之所由也,願先生少致意焉。

“저는 군자가 도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이 셋이라 들었습니다. 가장 높은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고, 그다음은 말을 세우는 것이며, 그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입니다. 백릉께서는 재능이 남보다 뛰어나고 뜻을 높이 가져 몸을 닦으시니,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하여 자잘한 일로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이미 귀하지만 가장 높은 것에 이르는 길은 다하지 못하셨으니, 선생께서 조금 마음을 쓰시기 바랍니다.”[2] 《고사전》 본에는 ‘絕人’이 ‘絕大’로, ‘累’가 ‘荷累’로 되어 있는 등 글자에 차이가 있다.[3]

지준은 “이로움은 헛되이 받을 수 없고 이름은 구차하게 얻을 수 없다”며 끝내 나오지 않았다. 《고사전》은 이어서, 사마천이 뒤에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당해 욕을 보았고 지준은 끝까지 벼슬하지 않고 산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적었다.[2]

그 뒤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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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서(晉書)》 권68 〈하순전(賀循傳)〉: 진 원제가 즉위하기 전, 청빈한 태상(太常) 하순(賀循)에게 상과 돈을 내리며 “하순은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하며 행실이 세속의 본보기가 된다(循冰清玉潔,行為俗表)”, “집은 겨우 비바람을 가릴 정도”라고 했다.[4]
  • 북제 유주(劉晝)의 《신론(新論)》 〈망하(妄瑕)〉: “백이와 숙제는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하여, 의리상 고죽국의 후계가 되지 않고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다가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2]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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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는 4건(광해군일기 중초본·정초본 중복 포함)이,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는 80건 남짓이 검색된다. 청렴한 사람을 기리는 말로, 또는 그렇지 못한 현실을 꼬집는 말로 쓰였다.

  • 선조 34년(1601) 염근리(廉謹吏)를 뽑을 때 사관은 “이때 빙청옥결하여 한 점 티도 없는 사람은 참으로 얻기 어려웠다(此時如氷淸玉潔,無一點瑕者,誠不可多得)”고 평하면서, 정승에 올라서도 입고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이원익(李元翼) 등을 들었다.[5]
  • 선조 38년(1605) 선조는 뇌물죄로 국문을 받는 자들이 번번이 풀려나는 것을 꾸짖으며 “뇌물죄로 국문을 받는 자가 어찌 빙청옥결한 무리이겠기에 포승 속에서 매미 허물 벗듯 빠져나간단 말인가(犯贓被鞫者,豈是氷淸玉潔之徒,而蟬蛻於縲絏之中)”라고 했다.[6]
  • 광해군 10년(1618) 사간원이 유생의 상소로 공격받은 헌납 박종주(朴宗冑)를 감싸며 출사를 청하자, 사관은 “과거에 급제한 뒤 곧바로 큰 부자가 된 것은 가릴 수 없는 죄악인데, 이제 빙청옥결에 견주니 놀랍다(今以氷淸玉潔比之,則駭矣)”라고 적었다.[7]
  • 그는 수십 년 동안 구매 업무를 맡으면서도 협력사의 선물 하나 받지 않은 빙청옥결의 인물로 기억된다.
  • 감사 결과 법인 카드를 사적으로 쓴 내역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 동료들은 그를 두고 빙청옥결이라 했다.
  •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송인수(宋麟壽)의 시장(諡狀)에 따르면, 송인수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중국 사람들이 그의 풍모를 보고 “참으로 빙청옥결한 선비이다. 아깝게도 바다 밖에서 태어나 함께 조정에 서지 못하는구나(是眞氷淸玉潔之士也。惜乎生於海外。不得與之同朝也)”라고 감탄했다고 한다.[8]
  • 《송강집》에 실린 정철(鄭澈)의 행장에는 조헌(趙憲)이 정철을 두고 “빙청옥결하고 붉은 마음으로 나라를 받든다(氷淸玉潔。赤心奉公)”고 평했다는 대목이 있다.[9]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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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결빙청(玉潔冰淸): 빙청옥결과 같은 말.[2]
  • 빙청옥수(冰清玉粹)·빙결옥청(冰潔玉清): 《성어전》이 드는 같은 뜻의 말.[2]
  • 청렴결백(淸廉潔白): 마음이 맑고 깨끗하며 재물 욕심이 없음.
  • 청백리(淸白吏): 청렴결백한 관리.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빙청옥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9%99%EC%B2%AD%EC%98%A5%EA%B2%B0, 확인날짜=2026-10-03.
  2. ↑ 2.0 2.1 2.2 2.3 2.4 2.5 2.6 2.7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冰清玉潔”,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8390, 확인날짜=2026-10-03.
  3. ↑ 황보밀(皇甫謐), 《고사전(高士傳)》 권상(卷上).
  4. ↑ 《진서(晉書)》 권68 〈하순전(賀循傳)〉.
  5.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37권, 선조 34년 5월 16일 계축 7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405016_007, 확인날짜=2026-10-03.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91권, 선조 38년 9월 10일 신사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809010_004, 확인날짜=2026-10-03.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 126권, 광해 10년 4월 23일 임자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ob_11004023_004, 확인날짜=2026-10-03.
  8. ↑ 송시열(宋時烈), 〈시장(諡狀)〉, 《규암집(圭菴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21A_0040_010_0130, 확인날짜=2026-10-03.
  9. ↑ 〈행장(行狀)〉, 《송강집(松江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03A_0160_010_0010,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