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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저옥배(象箸玉杯)는 상아 젓가락과 옥 술잔이라는 뜻으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箕子)가 그것이 끝없는 사치의 시작이 될 것을 알고 두려워했다는 고사에서 나왔으며, 작은 사치가 더 큰 사치를 부르니 그 시작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쓴다.

상아 젓가락 한 벌은 대단치 않아 보여도, 그 젓가락에 어울리는 그릇과 음식과 옷과 집을 차례로 찾게 되어 결국 나라를 망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말은 사치 자체보다 ‘사치의 첫걸음’과, 그 작은 조짐을 보고 끝을 내다보는 안목을 함께 가리킨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으며, 한국에서는 주로 한문 문헌과 고사성어 해설에서 쓰인다.[2] 중국어에서도 象箸玉杯(xiàng zhù yù bēi)라고 쓴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象 상 코끼리 상아
箸 저 젓가락 젓가락
玉 옥 구슬, 옥 옥으로 만든
杯 배 잔 술잔

《한비자》 〈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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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에 나온다. 〈유로〉는 《노자》의 구절을 고사로 풀이한 편인데, 이 이야기는 《노자》 제52장의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다고 한다(見小曰明)”를 설명하는 데 쓰였다.[3]

昔者紂爲象箸而箕子怖,以爲象箸必不加於土鉶,必將犀玉之杯;象箸玉杯必不羮菽藿,必旄、象、豹胎;旄、象、豹胎必不衣短褐而食於茅屋之下,則錦衣九重,廣室高臺。吾畏其卒,故怖其始。居五年,紂爲肉圃,設炮烙,登糟丘,臨酒池,紂遂以亡。故箕子見象箸以知天下之禍,故曰:「見小曰明。」

옛날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가 두려워했다. 기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상아 젓가락을 쓰면 흙으로 빚은 국그릇에는 놓지 않고 반드시 무소뿔이나 옥으로 만든 잔을 쓸 것이다. 상아 젓가락과 옥 잔을 쓰면 콩잎국 따위는 먹지 않고 반드시 들소 꼬리(旄)·코끼리 고기·표범의 태(胎) 같은 진미를 찾을 것이다. 그런 것을 먹으면서 짧은 베옷을 입고 띳집 아래에서 먹지는 않을 것이니, 비단옷을 아홉 겹 껴입고 넓은 집과 높은 누대에 살려 할 것이다. 나는 그 끝이 두려워서 그 시작을 두려워한다.” 5년 뒤 주왕은 고기를 동산처럼 늘어놓고, 포락(炮烙)의 형벌을 만들고, 술지게미로 쌓은 언덕에 오르고 술로 채운 못을 굽어보다가 마침내 망했다. 그래서 기자는 상아 젓가락을 보고 천하의 화를 알았다고 하며,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다고 한다”고 한 것이다.[3]

‘象箸玉杯’ 네 글자는 이 원문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성어전》도 이 대목을 출전으로 든다.[1]

같은 이야기의 다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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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의 〈설림 상(說林上)〉에도 이 이야기가 짧게 실려 있다. 여기서는 끝을 “이렇게 맞추어 구하다 보면 천하도 모자랄 것이다(稱此以求,則天下不足矣)”, “성인은 작은 것을 보고 싹을 알고, 실마리를 보고 끝을 안다(聖人見微以知萌,見端以知末)”로 맺는다.[4] 〈유로〉가 주왕의 멸망까지 이어 말한다면, 〈설림 상〉은 조짐을 읽는 성인의 안목에 무게를 둔다.

《사기》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주왕이 처음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가 탄식하며 말했다. ‘저가 상아 젓가락을 만들었으니 반드시 옥 잔을 만들 것이고, 잔을 만들면 반드시 먼 곳의 진귀한 물건을 가져다 쓰려 할 것이다. 수레와 말과 궁실의 사치가 여기서 비롯되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紂始爲象箸,箕子嘆曰:彼爲象箸,必爲玉桮;爲桮,則必思遠方珍怪之物而御之矣。輿馬宮室之漸自此始,不可振也)’.” 이어서 기자가 간했으나 듣지 않자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하며 노비가 되었다고 적는다.[5]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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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상소와 문집에서는 임금의 검소함을 권하는 말로 쓰였다.

  • 인조 26년(1648)의 상소는 궁궐 밖까지 사치가 번진 풍조를 지적하며 “상나라 주왕이 망한 일은 한 가지 까닭이 아니지만 그 근원은 상아 젓가락과 옥 잔에서 비롯되어 교만하고 음탕하게 제멋대로 한 데 있을 뿐(其原則始於象箸玉杯,驕淫自恣而已)”이라 하고, 이를 한 문제가 해진 옷을 입고 검소하게 지낸 일과 맞세웠다.[6]
  • 이항로(李恒老)는 편지에서, 밤에 글을 읽다가 하찮은 상아 젓가락과 옥 잔 하나가 거친 음식과 옷을 즐기던 옛 법도를 무너뜨렸다는 대목에 이를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고 했다.[7]
  • 사무실 의자 하나 바꾼 것이 책상, 모니터, 회의실 인테리어로 번지는 것을 보니 상저옥배라는 말이 떠올랐다.
  • 클라우드 사양을 한 단계 올리자 다른 서비스도 줄줄이 상위 요금제로 맞추게 되었다. 상저옥배를 경계해야 할 일이다.
  • 그는 상저옥배의 고사를 들어 첫 사치부터 삼가라고 당부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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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지육림(酒池肉林): 술로 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룸. 같은 주왕의 사치를 가리키는 말.
  • 견미지저(見微知著): 작은 조짐을 보고 드러날 일을 앎. 〈설림 상〉의 “見微以知萌”과 통한다.
  • 견소왈명(見小曰明): 작은 것을 보는 것을 밝다고 함. 《노자》 제52장의 말로, 〈유로〉가 이 고사로 풀이했다.
  •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 새 물건 하나를 들이면 그에 어울리도록 다른 물건까지 잇달아 바꾸게 되는 현상. 프랑스 사상가 드니 디드로의 수필에서 이름을 땄으며, 상저옥배와 같은 생각을 담고 있다.
  1. ↑ 1.0 1.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象箸玉杯”(수정본 참고 자료),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763, 확인날짜=2026-10-03.
  2.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상저옥배”(등록되지 않음),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C%83%81%EC%A0%80%EC%98%A5%EB%B0%B0, 확인날짜=2026-10-03.
  3. ↑ 3.0 3.1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
  4. ↑ 《한비자(韓非子)》 〈설림 상(說林上)〉.
  5. ↑ 사마천, 《사기》 권38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49권, 인조 26년 10월 4일 을미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2610004_004, 확인날짜=2026-10-03.
  7. ↑ 이항로(李恒老), 〈답이휴범(答李休範)〉, 《화서집(華西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621A_0050_010_0030,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