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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육림(酒池肉林)은 술로 연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호사스러운 술잔치를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중국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못을 파 술을 채우고 숲의 나뭇가지에 고기를 걸어 잔치를 즐겼던 일에서 유래한다.[1]

권력자나 부자가 재물을 아끼지 않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노는 모습, 나아가 생활이 극도로 사치하고 방탕한 것을 비판할 때 쓴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형태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술과 고기가 많음을 형용”하던 말이 뒤에 “생활이 극도로 사치하고 욕심을 절제하지 못함”을 비유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2] 일본어에서는 ‘酒池肉林(しゅちにくりん)’이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1477년의 《사기초(史記抄)》를 든다.[3]

《사기》 〈은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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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권3 〈은본기(殷本紀)〉는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제신帝辛)이 재주가 뛰어났지만 술과 음악, 여색에 빠져 나라를 잃었다고 적는다.[4]

帝紂資辨捷疾,聞見甚敏;材力過人,手格猛獸;知足以距諫,言足以飾非;矜人臣以能,高天下以聲,以為皆出己之下。好酒淫樂,嬖於婦人。愛妲己,妲己之言是從。於是使師涓作新淫聲,北里之舞,靡靡之樂。厚賦稅以實鹿臺之錢,而盈鉅橋之粟。益收狗馬奇物,充仞宮室。益廣沙丘苑臺,多取野獸蜚鳥置其中。慢於鬼神。大㝡樂戲於沙丘,以酒為池,縣肉為林,使男女倮相逐其閒,為長夜之飲。

“주왕은 타고난 말재주가 날카롭고 행동이 재빨랐으며 듣고 보는 것이 매우 밝았다. 힘이 남달라 맨손으로 맹수와 싸웠다. 지혜는 신하의 간언을 물리치기에 충분했고, 말솜씨는 잘못을 꾸미기에 충분했다. 신하들에게 재능을 뽐내고 천하에 명성을 높여 모두가 자기 아래라고 여겼다. 술과 음란한 음악을 좋아하고 여인을 가까이했다. 달기(妲己)를 사랑하여 달기의 말이면 다 따랐다. 악사 사연(師涓)에게 새로운 음란한 곡과 북리(北里)의 춤, 퇴폐적인 음악을 짓게 했다. 세금을 무겁게 거두어 녹대(鹿臺)를 돈으로 채우고 거교(鉅橋)를 곡식으로 채웠다. 개와 말, 진기한 물건을 더 거두어 궁실을 가득 채웠고, 사구(沙丘)의 동산과 누대를 넓혀 들짐승과 새를 많이 잡아다 풀어 놓았다. 귀신을 업신여겼다. 사구에 악공과 광대를 크게 모아 놀았는데,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만든 뒤 남녀를 벌거벗겨 그 사이에서 서로 쫓아다니게 하며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이어서 백성이 원망하고 제후 가운데 배반하는 자가 생기자 주왕은 형벌을 무겁게 하여 포락(炮格)의 형벌을 만들었다고 한다.[4] 원문은 ‘酒池肉林’이라는 네 글자가 아니라 ‘以酒為池,縣肉為林’이다. ‘縣’은 ‘매달다(懸)’, ‘㝡’는 ‘모으다(聚)’, ‘倮’는 ‘벌거벗다(裸)’와 같은 글자이다.[2]

네 글자 형태: 《사기》 〈대원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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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池肉林’이라는 네 글자는 같은 《사기》의 권123 〈대원열전(大宛列傳)〉에 나온다. 한 무제가 외국 손님들에게 한나라의 부유함을 과시하려고 씨름과 기이한 놀이를 벌이고 상을 내리며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만들어(酒池肉林)” 창고의 쌓인 재물을 두루 구경시켰더니, 외국 손님들이 한나라의 크기를 보고 놀랐다는 대목이다.[2] 여기서는 비판의 말이 아니라 풍성한 대접을 그린 말이다.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의 찬(贊)도 무제가 “주지육림을 베풀어 사방 오랑캐의 손님을 대접했다(設酒池肉林以饗四夷之客)”고 적었다.[5]

비슷한 표현은 다른 문헌에도 있다. 《회남자(淮南子)》 〈본경훈(本經訓)〉은 걸(桀)과 주(紂)의 사치를 늘어놓으며 “주는 고기 동산과 술 연못을 만들었다(紂為肉圃酒池)”고 적었다.[2] 이보다 앞선 《한비자(韓非子)》 〈유로(喻老)〉에도 기자(箕子)가 주왕의 상아 젓가락을 보고 앞날을 두려워했는데, 과연 다섯 해 뒤 “주는 고기 동산을 만들고 포락의 형벌을 베풀며 술지게미 언덕에 오르고 술 연못에 임했다(紂爲肉圃,設炮烙,登糟丘,臨酒池)”는 이야기가 있다.[6]

걸왕의 술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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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연못 이야기는 하(夏)나라 걸왕(桀王)에게도 붙어 전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 권4는 걸왕의 사치를 이렇게 적었다.[7]

桀為酒池,可以運舟,糟丘足以望十里,而牛飲者三千人。

“걸왕은 술로 못을 만들었는데 배를 띄울 만했고, 술지게미 언덕은 십 리 밖을 바라볼 만큼 높았으며, 소처럼 엎드려 마시는 자가 3천 명이었다.” 판본에 따라 ‘牛飲’ 앞에 ‘한 번 북을 쳐서(一鼓)’가 더 있다. 한나라 초 육가(陸賈)의 《신어(新語)》에도 “술 연못은 배를 띄울 만하고 술지게미 언덕은 멀리 바라볼 만하다(酒池可以運舟,糟丘可以遠望)”는 구절이 있다.[8] 서진 황보밀(皇甫謐)의 《제왕세기(帝王世紀)》는 지금 전하지 않지만, 《태평어람(太平御覽)》이 인용한 글에 “걸은 고기로 산을, 포(脯)로 숲을 만들고 술로 못을 만들어 배를 띄울 만하게 했다(桀爲肉山脯林,以酒爲池,使可運舟)”는 구절이 있다.[9] 조선의 정도전(鄭道傳)도 《삼봉집(三峯集)》 〈군도(君道)〉에서 걸왕의 “요대와 주지육림, 한 번 북을 치면 소처럼 마시는 자가 3천 명(酒池肉林。一鼓而牛飮者三千人)”을 들었다.[10] 나무위키 등에는 술 연못이 배를 띄울 만큼 컸다는 이야기와 손을 쓰지 않고 짐승처럼 마시게 했다는 이야기를 주왕의 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사기》 〈은본기〉의 주왕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한시외전》·《신어》 등에서는 걸왕의 일로 전하는 이야기이다. 다만 후한 《논형》이 인용한 전승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주왕의 일로도 전한다(아래).

과장이라는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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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왕충(王充)은 《논형(論衡)》 〈어증(語增)〉에서 이 이야기가 부풀려진 것이라고 따졌다. 그는 “주는 술에 빠져 술지게미로 언덕을 만들고 술로 못을 만들어 소처럼 마시는 자가 3천 명이었으며, 밤새 술을 마셔 날짜를 잊었다”는 전승을 들고, 술 연못이 뜰에 있었다면 방 안에서 창을 닫고 촛불을 켜고 마셨다는 ‘장야지음(長夜之飮)’과 맞지 않고, 3천 명이 못가에 엎드려 마셨다면 안주를 먹고 풍악을 즐길 수도 없으니 “술 연못에서 소처럼 마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酒池牛飲,非其實也)”라고 했다. 또 주왕이 술을 엎질러 땅이 흥건하니 ‘술로 못을 만들었다’고 하고, 고기를 숲처럼 매달았으니 ‘고기로 숲을 만들었다’고 한 것일 수 있다고 보았다. 주공이 강숙(康叔)에게 주왕의 술버릇을 경계하면서도 술지게미 언덕과 술 연못, 고기 숲을 말하지 않았으니 성인이 말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 했다. 주왕과 함께 즐긴 이는 신하였을 텐데 그 수가 3천 명에 이를 수 없으니, 3천 명이라 한 것은 “전서를 쓴 이들이 주왕을 미워하여 실상을 부풀린 것(傳書家欲惡紂,故言三千人,增其實也)”이라고도 했다.[11]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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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주지육림은 임금에게 사치를 경계하는 말로 자주 쓰였다. 1573년 유희춘(柳希春)은 선조에게 경연에서 ‘검소한 덕을 삼가라(愼乃儉德)’는 구절을 풀며 “걸의 경궁요대와 주의 주지육림(桀之瓊宮瑤臺,紂之酒池肉林)” 이하 역대 사치한 군주들이 모두 나라를 잃었다고 아뢰었다.[12] 이이(李珥)도 《성학집요》에서 “높은 집과 아로새긴 담은 궁실에서, 주지육림은 먹고 마시는 데서 비롯한다(峻宇雕墻,本於宮室。酒池肉林,本於飲食)”는 정이(程頤)의 《주역》 손괘(損卦) 풀이를 인용해, 사람의 욕심이 지나치면 해가 된다고 했다.[13][14]

연산군은 이 말을 거꾸로 신하를 누르는 데 썼다. 1499년 대간이 삼공인 성준(成俊)을 탄핵하다 옥에 갇히자 연산군은 “대간이 임금의 요대(瑤臺)와 주지육림 같은 놀이를 논하다가 옥에 갇혔다면 언로를 막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삼공을 불초하다고 한 것을 어찌 다스리지 않겠느냐”고 했다.[15] 1504년에는 대신들이 궁중에서 말을 탄 일을 입에 올리자 “임금이 경궁요대와 주지육림으로 걸·주의 짓을 한다면 논해도 되지만, 이렇게 말을 타는 것은 한때 답답함을 풀려는 것일 뿐인데 어찌 감히 논하느냐”고 했다.[16] 연산군은 2년 뒤인 1506년 중종반정으로 쫓겨났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酒 주 술 술
池 지 못 못(을 이룸)
肉 육 고기 고기
林 림 수풀 숲(을 이룸)
  • 공금으로 주지육림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 임원들이 줄줄이 물러났다.
  • 투자 유치 행사를 주지육림처럼 치르고 정작 제품 개발 예산은 삭감했다.
  • 흉년에도 궁중에서는 주지육림의 잔치가 끊이지 않았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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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산주해(肉山酒海): 고기가 산을 이루고 술이 바다를 이룸.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2]
  • 육포주지(肉圃酒池), 육림주지(肉林酒池): 같은 뜻의 다른 형태.[2]
  • 경궁요대(瓊宮瑤臺): 옥으로 꾸민 궁궐과 누대. 걸·주의 사치를 함께 이를 때 짝으로 쓰였다.
  • 가렴주구(苛斂誅求):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재물을 빼앗음.
  • 반대로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이르는 말로는 안빈낙도(安貧樂道) 등이 있다.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주지육림”,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A3%BC%EC%A7%80%EC%9C%A1%EB%A6%BC,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酒池肉林”,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539, 확인날짜=2026-09-27.
  3.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酒池肉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85%92%E6%B1%A0%E8%82%89%E6%9E%97,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사마천, 《사기(史記)》 권3 〈은본기(殷本紀)〉.
  5. ↑ 반고(班固), 《한서(漢書)》 권96 하 〈서역전(西域傳)〉 찬(贊).
  6. ↑ 《한비자(韓非子)》 〈유로(喻老)〉.
  7. ↑ 한영(韓嬰), 《한시외전(韓詩外傳)》 권4.
  8. ↑ 육가(陸賈), 《신어(新語)》 권하.
  9. ↑ 이방(李昉) 등, 《태평어람(太平御覽)》 권57·권863 인용 《제왕세기(帝王世紀)》.
  10. ↑ 정도전(鄭道傳), 〈군도(君道)〉, 《삼봉집(三峯集)》. 한국고전종합DB.
  11. ↑ 왕충(王充), 《논형(論衡)》 권7 〈어증(語增)〉.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7권, 선조 6년 11월 30일 병오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0611030_001, 확인날짜=2026-09-27.
  13. ↑ 이이(李珥), 《성학집요(聖學輯要)》 〈위정 제4 하(爲政第四下)〉, 《율곡전서(栗谷全書)》. 한국고전종합DB.
  14. ↑ 주희(朱熹)·여조겸(呂祖謙) 편, 《근사록(近思錄)》 권5.
  15.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35권, 연산 5년 11월 24일 경진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0511024_003, 확인날짜=2026-09-27.
  1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7일 정해 7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1004127_007,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