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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망청은 흥에 겨워 마음대로 즐기는 모양, 또는 돈이나 물건 따위를 마구 쓰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1] 흔히 ‘興淸亡淸’이라는 한자로 적지만, 이 표기는 조선 연산군 때의 기녀 ‘흥청(興淸)’에서 말이 나왔다는 유래 설에 따른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은 흥청망청에 한자 원어를 달지 않는다.[1][2]

부사로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놀다”, “돈을 흥청망청 쓰다”처럼 쓰고, ‘흥청망청하다’라는 동사로도 쓴다.[1] 오늘날에는 즐겁게 논다는 뜻보다 돈이나 자원을 아끼지 않고 함부로 쓴다는 비판의 뜻으로 더 자주 쓴다. 예산 낭비, 무분별한 소비를 꼬집는 기사 제목에 흔히 보인다.

같은 뜻의 말로 ‘흥청거리다’, ‘흥청대다’, ‘흥청흥청’이 있다. 중국어·일본어에는 이 말이 없다.

아래 한자는 유래 설에 따라 붙인 표기이다. 국어사전에는 이 표기가 없다.

한자 음 기본 의미 표기 안에서의 의미
興 흥 일어나다, 흥겹다 연산군 때 기녀의 이름 ‘흥청’의 앞 글자
淸 청 맑다, 깨끗하다 ‘흥청’의 뒷글자
亡 망 망하다, 잃다 ‘흥청 때문에 망했다’는 풀이에서 붙인 글자
淸 청 맑다, 깨끗하다 ‘흥청’의 뒷글자를 되풀이함

말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연산군의 ‘흥청’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지만, 국어사전은 이를 따르지 않는다.

연산군의 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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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興淸)’은 조선 연산군 때 나라에서 모아들인 기녀를 이르는 역사 용어이다.[3] 연산군은 여러 고을에 가무 기생을 널리 모아 두고 이를 ‘운평(運平)’이라 했으며, 그 가운데 대궐로 뽑혀 온 기생을 ‘흥청’이라 했다.[4] 1504년(연산군 10) 12월 22일 연산군은 악명(樂名)을 손수 써서 내리며 이름의 뜻을 이렇게 풀었다.

下御書樂名,曰興淸、曰運平、曰廣熙。仍傳曰:“所謂興淸乃蕩滌邪穢之意也,運平乃運際太平之意也。其意何如?”承旨等啓:“稱號甚美。”

어서로 악명(樂名)을 내려 흥청(興淸)·운평(運平)·광희(廣熙)라 하였다. 이어 전교하기를 “이른바 흥청이란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씻어 낸다는 뜻이고, 운평이란 태평한 운수를 만났다는 뜻인데, 그 뜻이 어떠한가?” 하니, 승지들이 “칭호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5]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興淸’은 266건, ‘運平’은 203건 검색되며, 대부분 《연산군일기》 기사이다.[6] 같은 해 5월 22일 기사 끝에 사관은 연산군이 술에 취해 흥청 가운데 재주 있는 수십 명을 거느리고 처용 탈을 쓴 채 대비 앞에서 춤추고, 흥청에게 노래로 화답하게 한 일을 적었다.[7] 1506년 중종반정 직후 박원종 등은 여러 원(院)의 가흥청(假興淸)·운평을 모두 놓아 보내고, 취홍원(聚紅院)의 흥청은 내탕의 보물을 거두어들인 뒤 내보내자고 청했다.[8]

‘흥청 때문에 망했다’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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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이 흥청을 끼고 놀다가 나라를 망쳤다고 여긴 백성들이 ‘흥청’에 ‘망청(亡淸)’을 붙여 ‘흥청망청(興淸亡淸)’이라는 말을 퍼뜨렸다고 전해진다.[9][10] 역사 교양서와 칼럼에서 흔히 소개되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설을 뒷받침하는 당대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과 한국고전종합DB의 원문에는 ‘興淸亡淸’이라는 표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11]

국어사전의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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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은 ‘흥청’을 두 표제어로 나눈다. ‘흥청 1’은 ‘흥청거리다’의 어근으로 한자를 달지 않고, ‘흥청 2(興淸)’는 연산군 때의 기녀를 뜻하는 역사 용어이다. ‘흥청망청’은 한자 없이 올라 있으며 뜻풀이도 ‘흥청거리다’와 같은 계열이다.[1][12] ‘흥청거리다’에는 ‘흥에 겨워서 마음껏 거드럭거리다’, ‘재산이 넉넉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아끼지 아니하고 함부로 쓰다’ 외에 ‘막대기나 줄 따위가 탄력 있게 자꾸 흔들리다’라는 뜻도 있다.[12] 이 셋째 뜻은 기녀 흥청과는 관계가 없다.

이런 처리에 따르면 ‘망청’은 ‘흥청’에 소리를 맞추어 덧붙인 말로 볼 수 있다. 국립국어원 자료를 인용한 한 교육 칼럼도 ‘망청’은 별 뜻 없이 후렴처럼 붙은 말이어서 한자로 적지 않으며, ‘망’ 자가 ‘亡’을 떠올리게 할 뿐이라고 설명한다.[13] 이렇게 보면 ‘興淸亡淸’은 말소리가 연산군의 흥청과 겹치고 뜻도 잘 어울려서 뒤에 붙은 풀이, 곧 민간 어원으로 볼 여지가 크다. 다만 ‘흥청거리다’ 자체가 연산군의 흥청에서 나왔는지, 그 반대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근대 잡지에서 확인되는 이른 예로 1938년 《삼천리》 제10권 제10호에 실린 염상섭(廉想涉)의 소설 〈자살미수〉가 있다. “일생을 흥청망청 살리라는 턱없는 꿈”이라는 구절이다.[14]

잘못 알려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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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목록 가운데에는 흥청망청의 출전을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나무위키 등). 《연산군일기》에 나오는 것은 기녀를 가리키는 ‘흥청(興淸)’이라는 이름이고, ‘흥청망청’이나 ‘興淸亡淸’이라는 말은 실록 원문 어디에도 없다.

  • 연말에 남은 예산을 흥청망청 쓰듯 장비를 사들이는 관행 때문에 정작 보안 패치 인력은 늘 부족했다.
  • 클라우드 요금이 정액이라고 여기고 서버를 흥청망청 띄워 두었다가 다음 달 청구서를 보고 놀랐다.
  • 복권에 당첨된 뒤 흥청망청 돈을 쓰다가 몇 해 만에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 연산군의 총애를 받은 장녹수(張綠水)를 흥청 출신으로 소개하는 글이 있다.[9] 그러나 《연산군일기》는 1502년(연산군 8) 11월 기사에서 이미 장녹수가 왕의 총애를 받아 숙원(淑媛)에 봉해졌다고 적는다. 본래 제안대군 집의 여종으로, 대군 집 종의 아내가 되었다가 노래와 춤을 배워 창기가 되었다는 것이다.[15] 연산군이 ‘흥청’이라는 이름을 내린 것은 그보다 2년 뒤인 1504년 12월이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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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청거리다: 흥에 겨워서 마음껏 거드럭거리다. 재산이 넉넉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아끼지 아니하고 함부로 쓰다.
  • 주지육림(酒池肉林): 술로 연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호사스러운 술잔치를 이르는 말.
  • 호의호식(好衣好食):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음.
  • 무위도식(無爲徒食): 하는 일 없이 놀고먹음.
  • 반대 의미: 자린고비: 다라울 정도로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 반대 의미: 근검절약(勤儉節約): 부지런하고 알뜰하게 재물을 아낌.
  1. ↑ 1.0 1.1 1.2 1.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흥청망청”,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D%A5%EC%B2%AD%EB%A7%9D%EC%B2%AD, 확인날짜=2026-10-12.
  2.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흥청망청”,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D%9D%A5%EC%B2%AD%EB%A7%9D%EC%B2%AD, 확인날짜=2026-10-12.
  3.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흥청(興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D%A5%EC%B2%AD, 확인날짜=2026-10-12.
  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운평(運平)”,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A%B4%ED%8F%89, 확인날짜=2026-10-12.
  5.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군 10년 12월 22일 무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1012022_002, 확인날짜=2026-10-12.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興淸”(원문 266건), “運平”(원문 203건),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2.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5월 22일 신해 1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1005022_011, 확인날짜=2026-10-12.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9월 3일 기묘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0109003_001, 확인날짜=2026-10-12.
  9. ↑ 9.0 9.1 참고: 신병주, “‘흥청망청’의 유래가 된 연산군, 그가 만든 사치와 쾌락의 공간”, 서울시 미디어허브, 2021-09-29,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2803, 확인날짜=2026-10-12.
  10. ↑ 참고: 김주원, “연산군 시대의 채홍사와 중앙당 5과”, 자유아시아방송, 2021-08-18,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ae40c528c77cac00c758-c228aca8c9c4-c9c4c2e4/co-su-08182021102007.html, 확인날짜=2026-10-12.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興淸亡淸”(0건), https://sillok.history.go.kr/;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고전원문 검색 “興淸亡淸”(0건),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12.
  12. ↑ 12.0 12.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흥청거리다”,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D%A5%EC%B2%AD%EA%B1%B0%EB%A6%AC%EB%8B%A4, 확인날짜=2026-10-12.
  13. ↑ 참고: 김환희, “우리말, 바르게 알고 사용합시다(2)”, 한국교육신문, 2006-12-08, https://www.hangyo.com/mobile/article.html?no=53119, 확인날짜=2026-10-12.
  14.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염상섭(廉想涉), “自殺未遂”, 《삼천리》 제10권 제10호, 1938년 10월 1일, https://db.history.go.kr/id/ma_016_0670_0470, 확인날짜=2026-10-12.
  15.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47권, 연산군 8년 11월 25일 갑오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0811025_002, 확인날짜=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