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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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호식(好衣好食)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입고 먹는 것을 넉넉하고 호사스럽게 누리며 사는 생활을 가리킨다. “자식만큼은 호의호식시키고 싶다”처럼 바람을 말할 때도 쓰지만, “남의 고생은 아랑곳없이 저 혼자 호의호식한다”처럼 땀 흘리지 않고 잘사는 사람을 비판하는 말로도 많이 쓴다. ‘호의호식하다’처럼 동사로도 쓴다.
같은 뜻의 성어로 중국어에서는 ‘금의옥식(錦衣玉食)’, ‘풍의족식(豐衣足食)’을 흔히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에도 ‘好衣好食’은 실려 있지 않다.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나란히 놓은 일상적인 표현으로, 중국에서는 송대 이후 시와 백화 문학에 보인다. 남송의 유학기(劉學箕)는 새 이름을 소재로 한 〈칠금영(七禽詠)〉에서 “좋은 옷 좋은 음식은 저잣거리 여인, 땀방울 뚝뚝 떨어지는 것은 밭일하는 아낙(好衣好食街市女,汗珠滴滴田婦苦)”이라고 대비했다.[2] 원대 잡극 《살구권부(殺狗勸夫)》, 명대 《경세통언(警世通言)》 권22 등에도 쓰였다.
나무위키 등에는 중국어에서 쓰이지 않는 표현이라고 되어 있으나, 위와 같이 옛 중국 문헌에는 용례가 있다. 다만 현대 중국어에서는 성어로 굳은 말이 아니다. 일본의 주요 사전(코토뱅크 수록 사전)에도 표제어로 실려 있지 않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한 건이 있다. 광해군 7년(1615), 어린아이들을 꾀어 동래 왜관 근처로 데려간 사건을 조사한 기록에서, 아이 일상(日上)은 길에서 만난 남자가 “우리 집이 울산에 있는데 아주 좋다. 네가 나를 따라오면 좋은 옷과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고 말도 주겠다(當以好衣好食待汝,且給馬匹)”고 꾀었다고 진술했다.[3]
《승정원일기》에서는 18건이 확인되며 대부분 영조 때의 것이다. 가장 이른 것은 현종 8년(1667) 김채(金寀)의 상소로, 양반이라는 자들이 노비를 거느리고 “좋은 옷 좋은 음식(好衣好食)”을 누리는 반면 농사짓는 백성은 전세에 시달린다고 했다.[4] 영조는 사치를 경계하며 이 말을 자주 썼다. 영조 25년(1749) 2월 17일에는 세자에게 당나라 섭이중(聶夷中)의 시를 들려주며 “농부와 누에 치는 아낙이 이렇게 애쓰는데도 정작 자신은 입고 먹지 못하고 나와 너에게 바치니, 이를 생각하면 어찌 차마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누리며 오두막의 백성을 생각하지 않겠느냐(豈忍好衣而好食,不念蔀屋之民乎)”고 했다.[5] 실록 원문은 ‘好衣而好食’이고, 같은 날 《승정원일기》에는 “爲人君,豈可好衣好食” 꼴로 적혀 있다.
문집에서는 이재(李縡)가 쓴 〈유인완산이씨묘지(孺人完山李氏墓誌)〉에, 화를 당한 집안의 부인이 자식들의 옷과 음식을 일부러 검소하게 하며 “너희가 어찌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누릴 사람이냐(汝輩豈好衣好食之人哉)”라고 했다는 대목이 있다.[6]
‘호위호식’으로 잘못 쓰는 경우가 있다. 가운데 글자는 옷을 뜻하는 ‘의(衣)’이므로 ‘호의호식’이 맞다.
- 그는 회사 돈으로 호의호식하다가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다.
- 부모님은 자식들 호의호식시키겠다고 평생 쉬지 않고 일하셨다.
- 실록 국역문에는 원문에 없는 ‘호의호식’도 보인다. 선조 31년(1598) 10월 3일 비망기의 국역문 “평소 호의호식하며 임금을 섬기던 자들”은 원문이 “平日肉食事君者”이다. ‘고기를 먹는 자(肉食者)’는 높은 벼슬아치를 가리키는 옛말인데, 번역자가 이를 ‘호의호식’으로 풀었다.[7]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호의호식”,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8%B8%EC%9D%98%ED%98%B8%EC%8B%9D, 확인날짜=2026-10-01.
- ↑ 유학기(劉學箕), 《방시한거사소고(方是閒居士小藁)》 권상 〈칠금영(七禽詠)〉.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정초본] 87권, 광해 7년 2월 2일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ob_10702002_003,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현종 8년 윤4월 10일 갑신, https://sjw.history.go.kr/id/SJW-C08041101-02600,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69권, 영조 25년 2월 17일 을미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2502017_001, 확인날짜=2026-10-01.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재, 《도암집(陶菴集)》 권45 〈유인완산이씨묘지(孺人完山李氏墓誌)〉, 자료ID ITKC_MO_0485A_0450_010_0070,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485A_0450_010_0070,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05권, 선조 31년 10월 3일 을묘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110003_004,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