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일가친척(一家親戚)은 일가와 외척의 모든 겨레붙이를 뜻하는 말이다.[1] 성과 본이 같은 집안 사람에 어머니 쪽, 혼인으로 맺어진 쪽 친척까지 모두 아울러 이른다.

‘일가(一家)’는 한집에서 사는 가족을 뜻하기도 하고 “성(姓)과 본이 같은 겨레붙이”를 뜻하기도 한다.[2] ‘친척(親戚)’은 친족과 외척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3] 두 말을 겹쳐 “일가친척이 다 모였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처지”처럼 피붙이 전체를 묶어 말할 때 쓴다. 명절·혼례·장례 같은 집안 행사를 이야기할 때 특히 자주 등장한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一 일 하나 하나의, 같은
家 가 집, 집안 한 집안
親 친 친하다, 어버이 가까운 피붙이
戚 척 겨레, 친척 겨레붙이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일가’와 ‘친척’을 나란히 붙여 쓰던 표현이 그대로 굳었다. 중국 문헌에서는 명나라 이정(李禎)의 소설집 《전등여화(剪燈餘話)》 권2에 “장씨 집안의 친척이니(張氏一家親戚)”라는 구절이 있고, 이 이야기를 옮긴 명대 소설집에도 같은 말이 보인다.[4] 다만 여기서는 ‘한 집안의 친척’이라는 뜻의 구절이다.

조선 문헌에서는 피붙이 전체를 아우르는 말로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4건이 있는데, 1483년(성종 14년) 경복궁 경회루 잔치에서 명나라 부사 김흥(金興)이 성종에게 “전하께서 소민을 불쌍히 여기시어 일가친척을 모두 벼슬에 올려 주시고, 가난한 이에게는 쌀을 내리시고, 선영에 제사까지 내려 주셨다”며 감사한 말이 가장 이르다.[5] 조선 신하의 말로는 1600년(선조 33년) 대간이 권세를 부리는 관원을 탄핵하며 “일가친척이 안팎에 깔려 조금만 거슬러도 모두 배척당한다(一家親戚,咸布內外,睚眦有忤,皆被擯斥)”고 아뢴 예가 있다.[6] 1703년(숙종 29년)에는 사관 조태억(趙泰億)이 성균관 유생 점검 사실을 “일가친척에게 급히 알려” 밖의 유생들이 몰려들게 했다는 이유로 파직을 청하는 계사도 있다.[7]

문집에서도 17세기부터 자주 보인다. 최유연(崔有淵)은 임금에게 올린 상소에서, 전에 올린 글로 세상의 비난을 받은 일이 있어 “일가친척이 옷자락을 붙들고 울며 말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一家親戚。無不挽衣泣止)”고 적었다.[8]

  • 일가친척이 모두 모이는 명절에는 단체 대화방 알림이 끊이지 않는다.
  • 그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스타트업을 꾸려 자리를 잡았다.
  • 할아버지 팔순 잔치에 일가친척이 한자리에 모였다.
  • 1483년 실록 용례에서 말한 김흥은 명나라 사신이었지만, 조선에 있는 자기 집안 친척이 벼슬을 받고 선영에 제사까지 받은 것을 고마워하고 있다. 같은 날 김흥은 성종의 생일이라며 임금을 자리에 앉히고 스스로 “늙은 종”이라 낮추어 술을 올렸다.[5]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친인척(親姻戚): 친척과 인척.
  • 겨레붙이: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들.
  • 사고무친(四顧無親): 의지할 만한 친척이 전혀 없음. 일가친척 하나 없는 처지.
  • 혈혈단신(孑孑單身): 의지할 곳 없는 홀몸.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가친척”,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A%B0%80%EC%B9%9C%EC%B2%99, 확인날짜=2026-10-12.
  2.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일가”,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C%9D%BC%EA%B0%80, 확인날짜=2026-10-12. 일가(一家) 「003」「004」.
  3.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친척”,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9%9C%EC%B2%99, 확인날짜=2026-10-12.
  4. ↑ 이정(李禎), 《전등여화(剪燈餘話)》 권2.
  5. ↑ 5.0 5.1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56권, 성종 14년 7월 30일 경신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407030_002, 확인날짜=2026-10-12.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24권, 선조 33년 4월 17일 경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304017_002, 확인날짜=2026-10-12.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8권, 숙종 29년 2월 18일 계사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2902018_001, 확인날짜=2026-10-12.
  8.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최유연, 《현암유고(玄巖遺稿)》 〈응지구언 진치안경제서 천인상감설소(應旨求言。進治安經濟書天人相感說䟽)〉,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818A_0040_070_0010, 확인날짜=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