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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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단심(一片丹心)은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변치 아니하는 마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임금이나 나라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말하던 데서, 오늘날에는 한 사람을 향한 한결같은 사랑이나 어떤 일에 대한 꾸준한 정성까지 두루 이른다. 한국에서는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를 통해 충절을 상징하는 말로 특히 널리 알려졌다.
중국어에서도 一片丹心(yī piàn dān xīn)을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한 조각 참되고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풀이하고 一片赤心을 같은 말로 든다.[2] 중국어의 용례는 대부분 나라나 임금에 대한 충정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어 사전(코토뱅크)에는 이 네 글자가 표제어로 오르지 않았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丹心에 一片을 붙인 시어(詩語)가 굳은 말이다.
당나라 말의 승려 시인 관휴(貫休)가 지방관 왕 사군(王使君)에게 비가 온 것을 축하하며 올린 시에 “한 조각 붉은 마음이 온갖 신령과 맞닿으니, 때맞춘 단비가 용의 비린내를 띠고 온다(一片丹心合萬靈,應時甘雨帶龍腥)”는 구절이 있다.[3] 지방관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 비가 왔다는 뜻이다.
북송의 소식(蘇軾)은 대유령(大庾嶺)을 넘으며 아우 소철(蘇轍)에게 부친 시에서 이 말을 썼다.
投章獻策謾多談,能雪冤忠死亦甘。
一片丹心天日下,數行清淚嶺雲南。
“글을 올리고 계책을 바치며 부질없이 말이 많았으나, 억울함을 씻고 충심을 밝힐 수 있다면 죽어도 달겠다. 한 조각 붉은 마음은 하늘의 해 아래 있고, 몇 줄기 맑은 눈물은 고개 남쪽 구름 속에 떨어진다.” 《성어전》도 이 시를 첫 용례로 든다.[2] 남송의 육유(陸游)는 〈금착도행(金錯刀行)〉에서 “천 년 역사에 이름 없음을 부끄러워하니, 한 조각 붉은 마음으로 천자께 보답하리라(千年史策恥無名,一片丹心報天子)”고 읊었다.[5]
나무위키 등에는 소식의 이 시가 일편단심의 유래라고 소개되어 있으나, 위에서 보듯 당나라 말 관휴의 시에 이미 같은 네 글자가 쓰였다.
고려 말 문인들이 즐겨 쓴 말이다. 이색(李穡)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을 두고 “한 조각 붉은 마음은 대궐에 걸려 있다(一片丹心懸魏闕)”고 읊었고,[6] 신돈(辛旽)을 탄핵했다가 장사(長沙) 감무로 좌천되었던 이존오(李存吾)는 풀려난 뒤 아우에게 “한 조각 붉은 마음은 예전보다 곱절이다(一片丹心倍昔年)”라는 시를 보냈다.[7]
이 말을 한국에서 충절의 상징으로 만든 것은 정몽주의 〈단심가〉이다. 조선 중기 심광세(沈光世)는 우리 역사를 읊은 〈해동악부(海東樂府)〉에서 이방원(李芳遠, 뒤의 태종)이 잔치를 열어 노래로 정몽주의 뜻을 떠보자 정몽주가 노래로 답했다는 이야기를 적고, 그 노래를 한문으로 옮겨 실었다.
此身死了死了。一百番更死了。白骨爲塵土。魂魄有也無。向主一片丹心。寧有改理也歟。
오늘날 널리 알려진 시조로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이다. 같은 글에서 심광세는 이방원이 부른 노래도 “此亦何如。彼亦何如。城隍堂後垣。頹落亦何如。我輩若此爲。不死亦何如”로 옮겨 적었다. 흔히 〈하여가(何如歌)〉라 부르는 노래이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一片丹心이 6건 있다. 세종 17년(1435) 진양대군(뒤의 세조)이 모화관에서 명나라 사신을 전송할 때, 사신 이약(李約)이 “천 산 만 물은 끝이 없으나, 한 조각 붉은 마음은 만 리에 통한다(千山萬水無窮盡,一片丹心萬里通)”는 구절을 남겼다.[9] 영조 1년(1725) 영의정 이광좌(李光佐)는 자신을 해명하는 상소에서 “신의 일편단심은 끝내 성상을 위해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원할 뿐(臣之一片丹心,終願爲聖上,效一分裨補)”이라고 했다.[10]
- 그는 이십 년 동안 한 오픈 소스 프로젝트만 일편단심으로 관리해 왔다.
- 임 향한 일편단심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 그 선수는 여러 구단의 제안을 뿌리치고 고향 팀에 일편단심을 지켰다.
- 대한민국 〈애국가〉 3절은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이다.[11]
- 조용필의 3집(1981)에 실린 〈일편단심 민들레야〉는 한국전쟁 때 남편이 북으로 끌려간 뒤 평생 남편을 기다린 이주현 할머니가 쓴 글이 노랫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 남송의 문천상(文天祥)이 원나라에 붙잡혀 지은 〈과영정양(過零丁洋)〉의 “예부터 사람이 나서 누군들 죽지 않으랴, 붉은 마음 남겨 역사를 비추리라(人生自古誰無死,留取丹心照汗青)”에도 丹心이 충절의 뜻으로 쓰였다. 판본에 따라 丹心 자리가 聲名(이름)으로 된 것도 있다.[1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편단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D%8E%B8%EB%8B%A8%EC%8B%AC, 확인날짜=2026-09-30.
-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一片丹心”,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3475, 확인날짜=2026-09-30.
- ↑ 관휴(貫休), 〈하우상왕사군(賀雨上王使君)〉 2수 중 제1수, 《선월집(禪月集)》 권24; 《전당시(全唐詩)》 권837.
- ↑ 소식(蘇軾), 〈과령기자유(過嶺寄子由)〉 3수 중 제2수, 《동파전집(東坡全集)》.
- ↑ 육유(陸游), 〈금착도행(金錯刀行)〉.
- ↑ 이색(李穡), 《목은고(牧隱藁)》 〈행색(行色)〉.
- ↑ 이존오(李存吾), 《석탄집(石灘集)》 〈방환종편후기제존사(放還從便後寄弟存斯)〉.
- ↑ 심광세(沈光世), 《휴옹집(休翁集)》 권3 〈해동악부(海東樂府)〉;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319A_0040_010_036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 4월 3일 갑진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704003_001,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3권, 영조 1년 1월 12일 신해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0101012_002, 확인날짜=2026-09-30.
- ↑ 행정안전부, “우리나라 국가상징: 애국가”, https://www.mois.go.kr/chd/sub/a05/story/screen.do, 확인날짜=2026-09-30.
- ↑ “‘서프라이즈’ 조용필 ‘일편단심 민들레야’, 가사에 담긴 사연은”, 부산일보, 2017-05-14,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70514000029, 확인날짜=2026-09-30.
- ↑ 문천상(文天祥), 〈과영정양(過零丁洋)〉, 《문산선생문집(文山先生文集)》 권14 〈지남후록(指南後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