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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立春大吉)은 입춘을 맞아 길운을 바라며 벽이나 문짝 따위에 써 붙이는 글귀이다. ‘입춘을 맞아 크게 길하다’는 뜻이다.[1]

입춘(立春)은 이십사절기의 첫째로, 양력 2월 4일 무렵이다. 예부터 이날 대문이나 기둥, 대들보에 좋은 글귀를 써 붙여 한 해의 복을 빌고 나쁜 기운을 막았는데, 이런 글을 입춘서(立春書)·입춘방(立春榜)·입춘축(立春祝)이라고 한다.[2] 입춘대길은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글귀로, 흔히 ‘건양다경(建陽多慶)’과 짝을 지어 대문 양쪽에 ‘八’ 자 모양으로 붙인다. 건양다경은 ‘볕이 서니 경사가 많으리라’는 뜻이다.

같은 글귀를 쓰는 풍속이 일본에도 있다. 다만 일본에서는 주로 선종 사찰과 그 신도 집 문에 붙이는 부적의 문구로 쓰인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立 립(입) 서다 (계절이) 시작되다
春 춘 봄 봄
大 대 크다 크게
吉 길 길하다 길하다, 복되다

입춘에 글을 써 붙이는 풍속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는 입춘 조에서 대궐에는 춘첩자(春帖子)를 붙이고 벼슬아치와 백성의 집, 시전에서는 모두 춘련(春聯)을 붙여 복을 비는데 이를 ‘춘축(春祝)’이라 한다고 적은 뒤, 남조 양나라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입춘날 문에 ‘의춘(宜春)’ 두 글자를 붙인다”고 한 것이 춘련의 시초라고 설명했다. 이어 민가에서 흔히 쓰는 대련을 늘어놓는데, 그 가운데 입춘대길과 건양다경이 한 쌍으로 나온다.

閭巷柱楣通用對聯 壽如山 富如海 去千灾 來百福 立春大吉 建陽多慶 堯之日月 舜之乾坤 愛君希道泰 憂國願年豊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4]

“민가의 기둥과 문미에 두루 쓰는 대련은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거천재(去千灾) 내백복(來百福)’, ‘입춘대길 건양다경’, ‘요지일월(堯之日月) 순지건곤(舜之乾坤)’, ‘애군희도태(愛君希道泰) 우국원년풍(憂國願年豊)’,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대영(子孫萬代榮)’ 따위이다.” 이보다 앞선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도 입춘 조에 “여항과 시정에서 두루 쓰는 대련(閭巷市井通用對聯)”으로 같은 글귀들이 실려 있다.[5] 궁중에서는 문신들이 지어 올린 시를 춘첩자로 붙였고, 민가에서는 이런 정해진 글귀를 썼다.[6]

임진왜란 중의 입춘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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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서 입춘대길은 한 번 나온다. 임진왜란 중이던 선조 26년(1593) 12월, 피란에서 돌아와 행궁에 머물던 조정에서 승정원이 이렇게 아뢰었다.

今日是立春,而時未事定,春帖子不爲製進矣,精書立春大吉四字,帖於行宮內外宜當。

[7]

“오늘이 입춘인데 시국이 아직 안정되지 않아 춘첩자를 지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입춘대길 네 글자를 정성껏 써서 행궁 안팎에 붙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선조는 “할 만하면 하라”고 답했다. 전쟁 통이라 문신들이 시를 지어 올리는 격식을 차리지 못하자, 민가에서 쓰던 네 글자로 대신한 것이다.

조선 후기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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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인들의 시에도 입춘대길이 자주 나온다. 어유봉(魚有鳳)은 정미년(1727) 춘첩시에서 “입춘대길이면 더 보탤 글자가 없고, 천하태평이 참으로 좋은 말이다(立春大吉無餘字。天下太平眞好辭)”라고 했고, 조면호(趙冕鎬)는 지난해 아우를 위해 입춘대길 네 글자를 예서로 써 준 일을 떠올리는 시를 남겼다.[8][9]

잘못 알려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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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춘대길은 숙종 때 허목(許穆)이, 건양다경은 송시열(宋時烈)이 지었다는 이야기가 언론 칼럼 등에 자주 보인다.[10] 그러나 입춘대길은 허목(1595년생)이 태어나기 전인 1593년의 실록에 이미 행궁에 붙인 글귀로 나오므로, 허목이 지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 ‘건양(建陽)’이 1896년 고종이 쓴 연호이므로 건양다경은 그때 생긴 말이라는 주장도 있다.[11] 그러나 건양 연호보다 앞선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1849)에 이미 입춘대길과 짝을 이룬 대련으로 실려 있다. 여기서 ‘건양’은 ‘볕(陽)이 선다’는 뜻이다.
  • 입춘 아침, 할아버지는 붓을 들어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써 붙이셨다.
  • 사무실 출입문에 입춘대길을 붙이고 올해는 큰 장애 없이 지나가기를 빌었다.
  • 영조는 신하들과 대화하면서 무언가가 빠진 것을 두고 ‘입춘대길에서 글자가 빠진 격’이라는 말을 썼다. 1751년에는 의궤에 있는 소개(素蓋)·소선(素扇)이 이번 행사에서 빠진 것을 “입춘대길에서 세 글자가 빠진 셈(可謂立春大吉落三字也)”이라 했고, 1772년에는 경연에서 참찬관에게 묻지 않고 마친 일을 “입춘대길에서 한 글자 빠진 것과 꼭 같다(正類立春大吉落一字矣)”고 했다.[12]
  • 정조 17년(1793) 12월에는 네 살이던 원자(뒷날의 순조)가 과거 답안을 채점하는 자리에 앉아 한 장에 점을 찍고, 종이 뒷면에 입춘대길 네 글자와 ‘태평(太平)’ 두 글자를 써서 신하들이 기뻐했다는 기록이 있다.[13]
  •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어릴 때 써 붙인 입춘첩을 보고 박제가(朴齊家)나 채제공(蔡濟恭)이 그 재주를 알아보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14]
  • 일본 조동종(曹洞宗) 사찰에서는 입춘날 ‘立春大吉’이라 쓴 종이 부적을 문기둥 오른쪽에 붙인다. 네 글자가 모두 좌우 대칭이어서, 문으로 들어온 귀신이 돌아보았을 때 안쪽에서도 같은 글자가 보여 아직 들어오지 않은 줄 알고 되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부적은 도겐(道元)이 지었다고 하는 법어 〈입춘대길문(立春大吉文)〉에서 왔다고 하며, 왼쪽 기둥에는 불조심 부적인 ‘진방화촉(鎮防火燭)’을 함께 붙이는 경우가 많다.[15] 《일본국어대사전》도 이 부적을 도겐이 전했다고 하며, 첫 용례로 1814년의 센류(川柳) 모음 《야나기다루(柳多留)》를 든다.[3]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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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양다경(建陽多慶): 입춘대길과 짝을 이루는 입춘 글귀.
  • 국태민안(國泰民安):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함. 《동국세시기》가 입춘 대련으로 함께 든다.
  •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는 집에 온갖 복이 온다.
  • 만사형통(萬事亨通): 모든 일이 뜻한 바대로 잘됨.
  •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입춘대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85%EC%B6%98%EB%8C%80%EA%B8%B8, 확인날짜=2026-10-03.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입춘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85%EC%B6%98%EC%84%9C, 확인날짜=2026-10-03.
  3. ↑ 3.0 3.1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立春大吉”,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AB%8B%E6%98%A5%E5%A4%A7%E5%90%89, 확인날짜=2026-10-03.
  4. ↑ 홍석모,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정월(正月)〉 ‘입춘(立春)’.
  5. ↑ 유득공, 《경도잡지(京都雜誌)》 권2 〈세시(歲時)〉 ‘입춘(立春)’.
  6.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춘첩”,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6%98%EC%B2%A9, 확인날짜=2026-10-03.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46권, 선조 26년 12월 16일 을축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612016_006, 확인날짜=2026-10-03.
  8.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어유봉, 《기원집(杞園集)》 권6 〈춘첩(春帖) 정미(丁未)〉,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67A_0060_010_0320, 확인날짜=2026-10-03.
  9.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조면호, 《옥수집(玉垂集)》,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1204A_0060_040_0540, 확인날짜=2026-10-03.
  10. ↑ 참고: 유한준, “봄이 오는 길목 ‘입춘대길 건양다경’의 진실”, 오산일보, 2025-02-05, https://www.osanilbo.com/35423, 확인날짜=2026-10-03.
  11. ↑ 참고: 조헌국, “[기고] 입춘서 ‘건양다경’ 쓰지 말아야”, 경남일보, 2023-01-19, https://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0018, 확인날짜=2026-10-03.
  12. ↑ 《승정원일기》 영조 27년 11월; 영조 48년 5월.
  13. ↑ 《승정원일기》 정조 17년 12월.
  14. ↑ 노재준, “추사체의 완성, 김정희”, 디지털예산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yesan.grandculture.net/yesan/toc/GC06601531, 확인날짜=2026-10-03.
  15. ↑ 참고: 曹洞宗関東管区教化センター, 〈立春〉(라디오 법화 원고, 2015년 2월 첫째 주 방송), https://soto-kanto.net/wp-content/uploads/2021/pdf/radio/270201.pdf,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