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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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지지(靑雲之志)는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뜻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우리말로 풀어 ‘청운의 뜻’, ‘청운의 꿈’이라고도 한다.[2] 당나라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 구절로 널리 알려졌다.
‘청운(靑雲)’은 푸른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으로,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한다.[2] 청운지지는 그런 높은 곳에 오르겠다는 뜻, 곧 입신출세하려는 큰 포부를 말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관용구 ‘청운의 꿈’을 “입신출세하려는 꿈”, ‘청운의 뜻’을 “입신출세하려는 큰 희망”으로 풀이한다.[2]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다”처럼 젊은이가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는 장면에 흔히 쓴다.
일본어에서도 ‘青雲の志(せいうんのこころざし)’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①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뜻, 입신출세하려는 희망 외에 ② 속세를 벗어나려는 뜻이라는 풀이를 함께 싣는다.[3] 두 뜻은 아래와 같이 역사적 뿌리가 모두 있다.
이 말을 널리 알린 것은 초당(初唐)의 시인 왕발이 홍주(洪州, 지금의 난창)의 등왕각 연회에서 지었다는 〈등왕각서〉이다. 왕발은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썼다.
嗟乎!時運不齊,命塗多舛。馮唐易老,李廣難封。屈賈誼於長沙,非無聖主;竄梁鴻於海曲,豈乏明時?所賴君子安貧,達人知命。老當益壯,寧移白首之心?窮且益堅,不墜青雲之志。
“아, 시운은 고르지 않고 운명의 길은 어긋남이 많다. 풍당(馮唐)은 쉽게 늙었고 이광(李廣)은 끝내 제후에 봉해지지 못했다. 가의(賈誼)가 장사로 쫓겨난 것은 어진 임금이 없어서가 아니었고, 양홍(梁鴻)이 바닷가로 숨은 것은 밝은 시대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믿을 것은 군자가 가난을 편안히 여기고 통달한 사람이 천명을 안다는 것뿐이다. 늙을수록 더욱 굳세야 하니 어찌 흰머리가 되었다고 마음을 바꾸겠으며, 궁할수록 더욱 굳건해야 하니 청운의 뜻을 떨어뜨리지 않으리라.”
‘老當益壯’과 ‘窮且益堅’은 후한의 마원(馬援)이 “대장부가 뜻을 품으면 궁할수록 더욱 굳세고 늙을수록 더욱 씩씩해야 한다(丈夫爲志,窮當益堅,老當益壯)”고 한 말을 빌린 것이다.[5] 《일본국어대사전》과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도 이 구절을 청운지지의 유래로 든다.[3]
일본 나라의 쇼소인(正倉院)에는 707년(게이운 4년)의 기년이 있는 필사본 《왕발시서(王勃詩序)》가 전하는데, 여기에 실린 〈등왕각서〉는 이 대목이 “窮當益堅,不墜青雲之望”으로 되어 있다. 도사카 아키히로(道坂昭廣)는 중국에 전하는 판본들이 ‘青雲之志’로 적은 것과 달리 쇼소인본은 ‘青雲之望’이라고 지적하고, 쇼소인본의 ‘窮當益堅’이 《후한서》 마원전의 원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며 중국 판본은 앞 구의 ‘老當益壯’과 ‘當’ 자가 겹치지 않도록 ‘且’로 바꾼 것일 수 있다고 보았다. 다만 ‘望’과 ‘志’는 양쪽 모두 쓰임새가 있어 어느 쪽이 틀렸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6]
‘청운’이 벼슬을 가리키게 된 것은 비교적 뒤의 일이다. 사마천은 《사기》 〈백이열전(伯夷列傳)〉 끝에서 “시골 사람이 행실을 닦아 이름을 세우려 해도 청운의 선비에 붙지 않으면 어찌 후세에 이름을 남기겠는가(閭巷之人,欲砥行立名者,非附青雲之士,惡能施于後世哉)”라고 했다.[7] 명나라의 양신(楊愼)은 이 ‘청운의 선비’를 “말을 세워 후세에 전한 성현, 곧 공자”로 보고, “청운에 붙은 이는 백이와 안연이다. 후세에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청운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다(後世謂登仕路為青雲,謬矣)”라고 비판했다.[8]
실제로 이른 시기의 ‘청운지지’는 세속을 벗어나려는 고고한 뜻을 가리키기도 했다. 남조의 도사 도홍경(陶弘景)의 전기인 〈화양은거선생본기록(華陽隱居先生本起錄)〉에는, 서른여섯이 되도록 봉조청(奉朝請)이라는 낮은 벼슬에 머물던 도홍경이 이듬해 5월 표를 올려 벼슬을 내놓고 산림에 은거하기를 청하자 “청운의 뜻이 이때부터 비롯되었다(求托巖林,青雲之志,於斯始矣)”고 적었다.[9] 《일본국어대사전》의 두 번째 뜻 ‘속세에서 벗어나려는 뜻’은 이 쓰임과 통한다.[3]
당나라에서는 두 쓰임이 함께 보인다. 장구령(張九齡)은 〈조경견백발(照鏡見白髮)〉에서 “지난날 청운의 뜻을 품었건만, 헛되이 흰머리의 나이가 되었구나. 누가 알랴, 밝은 거울 속에서 모습과 그림자가 서로를 가여워할 줄을(宿昔青雲志,蹉跎白髮年。誰知明鏡裏,形影自相憐)”이라고 읊어 이루지 못한 출세의 꿈을 탄식했다.[10]
조선 문집에서는 주로 과거와 벼슬을 향한 포부라는 뜻으로 썼다. 정약용(丁若鏞)은 유배지에서 아들 정학유(丁學游)에게 준 가계(家誡)에서, 아침 볕을 먼저 받는 곳에 저녁 그늘이 먼저 오고 일찍 핀 꽃이 빨리 지듯 세상일은 쉼 없이 바뀐다고 하면서 “세상에 뜻을 둔 사람은 한때의 재앙 때문에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늘 가을 매가 하늘로 솟구치는 기상이 있어, 천지를 작게 보고 우주를 손바닥처럼 가볍게 여겨야 한다(不宜以一時菑害。遂沮靑雲之志。男子漢胸中。常有一副秋隼騰霄之氣。眼小乾坤。掌輕宇宙)”고 당부했다.[11]
- 그는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와 작은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 서른 번 넘게 떨어졌지만 그는 청운지지를 꺾지 않고 정보보안기사 시험에 다시 도전했다.
- 노년의 학자는 젊은 날의 청운지지를 회고하며 웃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청운지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2%AD%EC%9A%B4%EC%A7%80%EC%A7%80, 확인날짜=2026-09-28.
- ↑ 2.0 2.1 2.2 2.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청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2%AD%EC%9A%B4, 확인날짜=2026-09-28.
- ↑ 3.0 3.1 3.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青雲の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9D%92%E9%9B%B2%E3%81%AE%E5%BF%97, 확인날짜=2026-09-28.
- ↑ 왕발(王勃), 〈추일등홍부등왕각전별서(秋日登洪府滕王閣餞別序)〉(등왕각서). 《문원영화(文苑英華)》 권718, 《왕자안집(王子安集)》 권5.
- ↑ 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
- ↑ 도사카 아키히로(道坂昭廣), 〈關於王勃〈滕王閣序〉的幾個問題──並論正倉院《王勃詩序》和《王勃集注》的文字差異〉, 《청화중문학보(清華中文學報)》 제6기, 2011, 115~132쪽.
- ↑ 사마천, 《사기(史記)》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
- ↑ 양신(楊愼), 《단연총록(丹鉛總錄)》 권13.
- ↑ 도익(陶翊), 〈화양은거선생본기록(華陽隱居先生本起錄)〉, 《운급칠첨(雲笈七籤)》 권107.
- ↑ 장구령(張九齡), 〈조경견백발(照鏡見白髮)〉, 《곡강집(曲江集)》 권5에는 〈조경견백발연구(照鏡見白髮聯句)〉로 실려 있다.
- ↑ 정약용(丁若鏞), 〈신학유가계(贐學游家誡)〉,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1집 권18,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97A_0180_020_0080, 확인날짜=2026-09-28.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青雲直上”,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8363,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