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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惻隱之心)은 남의 불행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이르는 한자성어로, 맹자(孟子)가 말한 사단(四端)의 하나이다.[1] 인의예지(仁義禮智) 가운데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본다.[1]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남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고 마음 아파하는 감정을 말한다. 맹자는 이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성선설의 근거로 삼았다. 오늘날에는 “측은지심이 들다”, “측은지심에 호소하다”처럼 동정심이나 연민을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줄여서 측심(惻心)이라고도 한다.[1]

같은 사단에 속하는 말로 의(義)의 실마리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예(禮)의 실마리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의 실마리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있다.[2] 중국어(cè yǐn zhī xīn)에서도 같은 형태로 쓰고, 일본어에서는 ‘소쿠인노코코로(惻隠の心)’라고 하며 ‘惻隠の情’이라고도 한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惻 측 슬퍼하다 마음 아파하다
隱 은 숨다, 가엾어하다 가엾게 여기다
之 지 ~의 ~하는
心 심 마음 마음

‘惻隱’ 두 글자가 함께 ‘가엾게 여겨 마음 아파함’을 뜻한다. 隱은 흔히 ‘숨다’로 읽지만 여기서는 ‘아파하다, 가엾어하다’의 뜻이다. 주희(朱熹)는 《맹자집주》에서 “측은 아파함이 절실한 것이고, 은은 아픔이 깊은 것(惻,傷之切也。隱,痛之深也)”이라고 풀었다.[4]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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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다고 하며,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의 예를 들었다.[5]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皆有怵惕惻隱之心;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非所以要譽於鄉黨朋友也,非惡其聲而然也。由是觀之,無惻隱之心,非人也。無羞惡之心,非人也。無辭讓之心,非人也。無是非之心,非人也。惻隱之心,仁之端也;羞惡之心,義之端也;辭讓之心,禮之端也;是非之心,智之端也。

[5]

“사람에게 모두 남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 까닭은 이렇다. 지금 어떤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측은한 마음이 든다. 그것은 아이의 부모와 사귀려 해서도 아니고, 마을 사람과 벗들에게 칭찬을 들으려 해서도 아니며, 아이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이로써 보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실마리이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실마리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실마리이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의 실마리이다.”

맹자가 강조한 것은 이 마음이 계산 없이 ‘갑자기(乍)’ 일어난다는 점이다.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 평판을 얻으려는 마음, 듣기 싫은 소리를 피하려는 마음을 하나씩 지워 나간 뒤에도 남는 것이 측은지심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이어서 사람에게 이 네 실마리가 있는 것은 팔다리가 있는 것과 같으니 이를 넓혀 채우면 천하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5]

〈고자 상(告子上)〉에서는 표현을 조금 바꾸어 “측은지심은 사람마다 다 있다(惻隱之心,人皆有之)”, “측은지심은 인이다(惻隱之心,仁也)”라고 했다.[6] 〈공손추 상〉에서는 인의 ‘실마리’, 〈고자 상〉에서는 인 자체로 말한 것이다.

《성어전》은 명나라 풍몽룡(馮夢龍)의 《경세통언(警世通言)》 권21 〈조태조천리송경낭(趙太祖千里送京娘)〉에서 송 태조 조광윤이 구해 준 여인에게 “그대를 구한 것은 실로 측은지심에서 나온 것이지 아름다운 얼굴을 탐해서가 아니다(實出惻隱之心,非貪美麗之貌)”라고 하는 대목을 용례로 든다.[7] 《성어전》은 ‘惻怛之心’이라는 형태도 함께 든다.[7]

한국에서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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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칠정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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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에서 측은지심을 비롯한 사단은 기쁨·노여움 같은 칠정(七情)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설(天命圖說)〉에 있던 “사단은 이에서 나오고 칠정은 기에서 나온다”는 말을 이황(李滉)이 고친 것을 두고 기대승(奇大升)이 반론을 펴면서, 두 사람은 약 8년 동안 편지로 논쟁했다. 기대승은 사단도 기와 떨어질 수 없고 칠정 가운데 포함된다고 보았다.[8]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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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惻隱之心이 36건 보인다.[9] 정치적 처분을 앞두고 임금의 측은지심을 말한 예가 많다. 1506년(중종 1) 중종이 연산군의 아들인 폐세자 이황(李𩔇) 등이 어리다며 처단을 미루자, 대신들은 “전하께서 측은지심으로 차마 결단하지 못하시지만 그 형세는 오래 둘 수 없다”며 사사를 청했고, 결국 이들은 죽임을 당했다.[10] 1677년(숙종 3) 우참찬 윤휴(尹鑴)는 어린아이와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매기는 폐단을 줄이자고 하면서, 임금이 측은지심을 보인 것을 두고 “성상께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행하시니(以不忍人之心,行不忍人之政)” 우리 동방이 거의 이상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했다.[11] 《맹자》 〈공손추 상〉의 구절을 그대로 빌린 말이다.

일본어의 ‘惻隠の心’도 《맹자》에서 온 말이다.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단편 〈치쿠세이(竹青)〉(1945)에서 “측은지심은 어떤 사람에게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는 대목을 용례로 든다.[3]

  • 길가에 쓰러진 노인을 보고 누구나 달려간 것은 측은지심 때문이다.
  • 피싱 범죄는 가족이 다쳤다는 거짓말로 측은지심을 자극해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 측은지심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마음을 제도로 넓혀야 정책이 된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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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인지심(不忍之心),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남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사단의 나머지 셋.
  •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이 우러나오는 네 가지 본성.
  • 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김.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측은지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8%A1%EC%9D%80%EC%A7%80%EC%8B%AC, 확인날짜=2026-10-03.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사단”,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2%AC%EB%8B%A8, 확인날짜=2026-10-03.
  3. ↑ 3.0 3.1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惻隠の心”,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83%BB%E9%9A%A0%E3%81%AE%E5%BF%83, 확인날짜=2026-10-03.
  4. ↑ 주희(朱熹), 《맹자집주(孟子集注)》 〈공손추 상(公孫丑上)〉.
  5. ↑ 5.0 5.1 5.2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
  6. ↑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
  7. ↑ 7.0 7.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惻隱之心”,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303, 확인날짜=2026-10-03.
  8. ↑ “천명도설(天命圖說)”,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5863, 확인날짜=2026-10-03; “고봉집(高峰集)”,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3607, 확인날짜=2026-10-03.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惻隱之心”,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9월 24일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0109024_003, 확인날짜=2026-10-03.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6권, 숙종 3년 12월 19일 신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0312019_001,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