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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포악발(吐哺握髮)은 먹던 것을 뱉고 감던 머리를 거머쥔다는 뜻으로, 민심을 살피고 정무를 돌보느라 잠시도 편안할 틈이 없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중국 주(周)나라의 주공(周公)이 밥을 먹거나 머리를 감다가도 손님이 찾아오면 먹던 것을 뱉고 머리카락을 쥔 채 나가 맞이했다는 데서 유래한다.[1] ‘악발토포(握髮吐哺)’, ‘토포착발(吐哺捉髮)’, 줄여서 ‘토악(吐握)’이라고도 한다.[1]

윗사람이 인재를 얻으려고 애쓰는 모습, 곧 어진 선비를 기다리게 하지 않고 곧바로 맞이하는 정성을 나타낼 때 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정무에 쉴 틈이 없다는 쪽으로 풀이하지만,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어진 이를 구하는 마음이 간절함”으로,[2] 《일본국어대사전》은 “정무를 맡은 사람이 남의 의견을 중히 여기고 정치에 마음을 쓰는 것, 또 뛰어난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함”으로 풀이한다.[3] 두 풀이 모두 주공의 같은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사기》 〈노주공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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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무왕(武王)이 죽은 뒤 주공은 어린 성왕(成王)을 도와 섭정하면서, 자기 아들 백금(伯禽)을 대신 노(魯)나라에 봉해 보냈다. 이때 주공은 백금에게 이렇게 일렀다.[4]

我文王之子,武王之弟,成王之叔父,我於天下亦不賤矣。然我一沐三捉髮,一飯三吐哺,起以待士,猶恐失天下之賢人。子之魯,慎無以國驕人。

[4]

“나는 문왕의 아들이요 무왕의 아우이며 성왕의 숙부이니, 천하에서 결코 낮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한 번 머리를 감는 동안 세 번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한 번 밥을 먹는 동안 세 번 먹던 것을 뱉고 일어나 선비를 맞이하면서도, 오히려 천하의 어진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너는 노나라에 가거든 나라를 가졌다고 남에게 교만하게 굴지 않도록 삼가라.”

《사기》에는 ‘머리카락을 쥔다’가 ‘捉髮(착발)’로 되어 있다. ‘握髮(악발)’이라는 글자는 《한시외전(韓詩外傳)》 권3과 한나라 유향(劉向)의 《설원(說苑)》 권10 등 같은 이야기를 실은 다른 책에 보인다.[3][5] 표준국어대사전이 ‘토포착발’을 함께 싣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가 속의 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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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의 이 모습은 한나라 이후 시에서 어진 이를 구하는 군주·재상의 상징으로 자주 읊어졌다.

  • 조조(曹操)는 〈단가행(短歌行)〉을 “산은 높음을 싫어하지 않고 바다는 깊음을 싫어하지 않는다. 주공이 먹던 것을 뱉으니 천하가 마음을 돌렸다(山不厭高,海不厭深。周公吐哺,天下歸心)”로 맺었다.[6] 《성어전》은 이 구절에서 ‘주공토포(周公吐哺)’라는 말을 싣는다.[7]
  • 고악부 〈군자행(君子行)〉에는 “주공은 초가집 선비에게도 몸을 낮추어, 먹던 것을 뱉느라 밥을 다 먹지 못하고, 한 번 머리 감는 동안 세 번 머리카락을 쥐었으니, 후세가 성현이라 일컫는다(周公下白屋,吐哺不及餐。一沐三握髮,後世稱聖賢)”는 구절이 있다.[8]

《성어전》은 네 글자 ‘吐哺握髮’의 용례로 남송 육유(陸游)의 〈사비추밀계(謝費樞密啓)〉를 든다.[2]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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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이색(李穡)의 시에도 보이며,[9] 조선에서는 재상의 도리나 임금의 인재 등용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되었다.

  • 성종 15년(1484) 대구의 생원 서감원(徐坎元)은 봉사(封事)에서 “주공이 재상이 되어 어진 이를 만나기에 급급하여 머리를 쥐고 먹던 것을 뱉으며 기다렸다”며, 지금의 재상에게 과연 주공의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10]
  • 중종 8년(1513) 경연에서 시강관 윤은보(尹殷輔)는 헌종(憲宗)이 재상이 사저에서 손님을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을 잘못이라 하며 “주공은 선비에게 몸을 낮추어 토포악발하기에 이르렀으니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다.[11]
  • 선조 26년(1593) 명나라 총병 척금(戚金)은 선조를 만난 자리에서, 명나라 장수 두 사람이 왔는데 대접도 접견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국왕께서는 나라가 쇠잔한 이때 마땅히 토포악발하고 와신상담하셔야 한다”고 따졌다. 선조는 밤늦게 들어온 두 장수를 미처 만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며 담당자를 이미 처벌했다고 답했다.[12]

일본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握髪吐哺’의 첫 용례로 도쿠가와 미쓰쿠니(德川光圀)의 《상산문집(常山文集)》(1718)을 든다.[1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吐 토 토하다, 뱉다 (먹던 것을) 뱉다
哺 포 먹이다, 입 안의 음식 입에 문 음식
握 악 쥐다 움켜쥐다
髮 발 터럭, 머리카락 (감던) 머리카락
  • 새 연구소장은 토포악발의 자세로 전국의 젊은 연구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영입했다.
  • 인재가 떠난 뒤에야 붙잡으려 하지 말고, 평소에 토포악발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 중종 39년(1544) 성균관 생원 신백령(辛百齡) 등은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청하는 상소에서 “토포악발한 주공이 어찌 우리를 속였겠는가. 겸손하고 공손하게 선비를 대한다고 해서 반드시 왕망과 같은 것은 아니다(吐哺握髮,周公豈欺我哉!謙恭下士,未必王莽爲然也)”라고 했다. 선비를 두루 사귄 조광조를 역심을 품은 자로 몰았던 무고를 반박한 것이다.[14]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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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발토포(握髮吐哺), 토포착발(吐哺捉髮), 토악(吐握): 같은 뜻이다.[1]
  • 주공토포(周公吐哺): 어진 이를 구하는 마음이 간절함.
  • 삼고초려(三顧草廬): 인재를 맞이하려고 참을성 있게 정성을 다함.
  • 예현하사(禮賢下士): 어진 이를 예로 대하고 선비에게 몸을 낮춤.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토포악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6%A0%ED%8F%AC%EC%95%85%EB%B0%9C, 확인날짜=2026-09-26.
  2.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吐哺握髮”,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195,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吐哺握髪”,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90%90%E5%93%BA%E6%8F%A1%E9%AB%AA, 확인날짜=2026-09-26.
  4. ↑ 4.0 4.1 사마천, 《사기》 권33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5. ↑ 유향, 《설원(說苑)》 권10 〈경신(敬愼)〉.
  6. ↑ 조조, 〈단가행(短歌行)〉 제1수. 진(晉)나라 악부에서 연주한 가사에는 ‘海’가 ‘水’로 되어 있다.
  7.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周公吐哺”,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2933, 확인날짜=2026-09-26.
  8. ↑ 〈군자행(君子行)〉, 곽무천(郭茂倩) 엮음, 《악부시집(樂府詩集)》 권32.
  9.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색, 《목은시고(牧隱詩藁)》 권20,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20A_0270_010_0290, 확인날짜=2026-09-26.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69권, 성종 15년 8월 2일 병진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508002_002, 확인날짜=2026-09-26.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8권, 중종 8년 9월 15일 경진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0809015_001, 확인날짜=2026-09-26.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44권, 선조 26년 11월 30일 경진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611030_006, 확인날짜=2026-09-26.
  13.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握髪吐哺”,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8F%A1%E9%AB%AA%E5%90%90%E5%93%BA, 확인날짜=2026-09-26.
  14.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03권, 중종 39년 5월 29일 병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3905029_002,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