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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臥薪嘗膽)은 불편한 섶에 몸을 눕히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거나 마음먹은 일을 이루기 위해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오늘날에는 복수뿐 아니라 실패나 패배를 딛고 재기를 준비하는 모든 노력에 두루 쓴다. 운동 경기에서 진 팀이 다음 대회를 벼르거나, 떨어진 수험생이 다시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을 가리켜 “와신상담 끝에”라고 하는 식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말이 《사기》와 《십팔사략》 등에 나오는 이야기로, 오왕 부차(夫差)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잤고, 그에게 진 월왕 구천(句踐)이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한 데서 유래한다고 설명한다.[1] 다만 아래에서 보듯 《사기》에는 쓸개 이야기만 있고 섶에 누운 이야기는 없다. 줄여서 ‘상담(嘗膽)’이라고도 한다.[2]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쓴다. 일본어에서는 ‘臥薪嘗胆(がしんしょうたん)’이라 한다.[3]

《사기》의 쓸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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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시대 말기 오왕 합려(闔廬)가 월나라를 치다 다쳐 죽자, 아들 부차가 왕위에 올라 복수를 다짐했다. 《좌전(左傳)》 정공 14년(기원전 496년) 조에는 부차가 사람을 뜰에 세워 두고 드나들 때마다 “부차야, 월왕이 네 아비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夫差,而忘越王之殺而父乎)”라고 외치게 하자 “예, 감히 잊지 않겠습니다(唯,不敢忘)”라고 답했으며, 3년 만에 월나라에 보복했다고 적혀 있다.[4] 부차에게 크게 진 월왕 구천은 회계산(會稽山)에서 항복을 청해 겨우 살아남았다.

《사기》 권41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는 구천이 풀려나 돌아온 뒤의 모습을 이렇게 적는다.[5]

吳既赦越,越王句踐反國,乃苦身焦思,置膽於坐,坐臥即仰膽,飲食亦嘗膽也。曰:「女忘會稽之恥邪?」身自耕作,夫人自織,食不加肉,衣不重采,折節下賢人,厚遇賓客,振貧弔死,與百姓同其勞。

“오나라가 월나라를 용서하자 월왕 구천은 나라로 돌아와 몸을 괴롭히고 애를 태우며, 앉는 자리에 쓸개를 놓아두고 앉으나 누우나 쓸개를 올려다보고, 먹고 마실 때도 쓸개를 맛보았다. 그러면서 ‘너는 회계의 치욕을 잊었느냐’고 했다. 몸소 밭을 갈고 부인은 손수 길쌈을 했으며, 밥상에 고기를 더하지 않고 옷에 여러 빛깔을 겹치지 않았다. 몸을 낮추어 어진 이에게 머리를 숙이고, 손님을 후하게 대접했으며, 가난한 이를 구하고 죽은 이를 조문하며 백성과 수고를 함께했다.”

구천은 나라 안의 정사를 대부 문종(文種)에게 맡기고 범려(范蠡)를 인질로 오나라에 보냈다가 돌려받는 등 몸을 낮추며 힘을 길렀다. 그사이 오왕 부차는 월나라를 경계하라는 오자서(伍子胥)의 간언을 물리치고 그에게 칼을 내려 자결하게 했다. 그 뒤 월나라는 오나라를 쳐서 3년 동안 에워싼 끝에 부차를 고소산(姑蘇山)에 몰아넣었다. 부차는 항복을 청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내가 자서를 볼 낯이 없다(吾無面以見子胥也)”며 얼굴을 가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5] 《사기》의 이 대목에는 ‘쓸개를 맛본다(嘗膽)’는 말은 있지만 ‘섶에 눕는다(臥薪)’는 말은 없다. 후한 무렵의 《오월춘추(吳越春秋)》 〈구천귀국외전(勾踐歸國外傳)〉은 구천이 “졸리면 여뀌로 눈을 찌르고, 발이 시리면 물에 담갔으며, 겨울에는 얼음을 끌어안고 여름에는 불을 쥐었고, 문에 쓸개를 매달아 드나들 때마다 맛보았다(目臥,則攻之以蓼;足寒,則漬之以水。冬常抱冰,夏還握火。愁心苦誌,懸膽於戶,出入嘗之)”고 더 자세히 전하지만, 여기에도 섶에 누운 이야기는 없다.[6]

‘섶에 눕기’는 어디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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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臥薪’과 ‘嘗膽’을 붙여 쓴 이른 예로는 북송 소식(蘇軾)의 〈의손권답조조서(擬孫權答曹操書)〉에 나오는 “제가 유명을 받든 뒤로 섶에 눕고 쓸개를 맛보았다(僕受遺以來,臥薪嘗膽)”가 꼽힌다. 손권(孫權)이 조조에게 보내는 답장을 가상으로 지은 글이다.[7] 《일본국어대사전》도 네 글자 형태는 소식의 글에 보이지만 ‘섶에 누웠다’는 고사 자체는 《십팔사략(十八史略)》 이전의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고 적는다.[3]

원나라 증선지(曾先之)가 엮은 《십팔사략》은 섶에 누운 사람을 부차로, 쓸개를 맛본 사람을 구천으로 나누어 적었다.

夫差志復讎,朝夕臥薪中,出入使人呼曰:「夫差,而忘越人之殺而父邪?」

“부차는 복수에 뜻을 두고 아침저녁으로 섶 가운데 누웠으며, 드나들 때마다 사람을 시켜 ‘부차야, 월나라 사람이 네 아비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고 외치게 했다.”[8] 이어서 풀려난 구천이 쓸개를 매달아 두고 맛보며 회계의 치욕을 되새겼다고 적는다. 《좌전》의 ‘뜰에 사람을 세워 외치게 한’ 이야기에 섶에 누운 이야기가 덧붙은 셈이다. 이런 결합은 《십팔사략》보다 앞선다. 남송 여조겸(呂祖謙)의 《춘추좌씨전설(春秋左氏傳說)》 권20은 부차가 사람을 뜰에 세워 “부차야, 월왕이 네 아비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고 외치게 한 일을 논하면서, 부차의 복수심이 굳었던 때를 “좌신상담하던 때(坐薪嘗膽之時)”라고 불렀다.[9] 한국과 일본의 사전이 ‘부차의 와신, 구천의 상담’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 《십팔사략》을 따른 것이다.[1][3]

한편 중국에서는 두 가지 행동을 모두 구천의 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송사(宋史)》 〈조필원전(趙必愿傳)〉에 “반드시 구천이 섶에 눕고 쓸개를 맛본 것처럼 해야 한다(必如勾踐之臥薪嘗膽)”는 구절이 있고,[7]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이 성어를 “월왕 구천이 섶 위에 눕고 수시로 쓸개를 맛보며 치욕을 잊지 않으려 했다”로 풀이한다.[7]

무슨 쓸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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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그저 ‘膽(쓸개)’이라고만 할 뿐 어떤 짐승의 쓸개인지 밝히지 않는다. 《성어전》은 이 ‘膽’을 흔히 동물의 쓸개로 풀지만 쓴맛이 나는 담초(膽草)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적는다.[7] ‘곰의 쓸개’였다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고 일본의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도 “쓴 곰의 쓸개(熊の肝)”라고 쓰지만,[3] 《사기》·《오월춘추》·《십팔사략》 어디에도 곰이라는 말은 없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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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臥薪嘗膽’이 85건 나온다. 가장 이른 것은 세종 13년(1431) 10월 30일 기사로, 강무(講武) 때 임금의 복식을 논하면서 황희(黃喜) 등이 송나라 효종이 금나라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고 갑옷을 입고 강무한 일을 “곧 와신상담하던 때(卽臥薪嘗膽之日也)”라고 했다.[10] 이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임진왜란 이후의 《선조실록》이다. 성혼(成渾)도 임진년(1592) 12월 행재소에 올린 글에서 임금에게 “거친 옷과 음식으로 와신상담하며 스스로를 꾸짖으라(惡衣菲食。臥薪嘗膽。痛自克責)”고 청했다.[11]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臥 와 눕다 누워 자다
薪 신 섶, 땔나무 거친 섶(땔나무) 더미
嘗 상 맛보다, 일찍이 맛보다
膽 담 쓸개, 담력 쓴 쓸개
  • 지난해 대규모 침해 사고를 겪은 회사는 와신상담 끝에 보안 인증을 받고 재기에 성공했다.
  • 결승에서 아깝게 진 팀은 와신상담하며 4년 뒤를 준비했다.
  • 두 번 낙방한 그는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다시 책을 폈다.
  • 일본에서는 1895년 청일 전쟁 뒤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 간섭으로 랴오둥반도를 돌려주게 되자 ‘와신상담’이 여론의 구호로 크게 유행했다. 《일본국어대사전》은 이 무렵의 용례인 다구치 우키치(田口卯吉)의 《상업사가(商業史歌)》(1901)를 첫 용례로 든다.[3]
  • 《성어전》은 ‘상담와신(嘗膽臥薪)’, ‘좌신상담(坐薪嘗膽)’, ‘좌신현담(坐薪懸膽)’ 같은 변이형도 싣고 있다. 북송 부필(富弼)은 〈사추밀부사(辭樞密副使)〉에서 “좌신상담하며 경계를 잊지 말라(坐薪嘗膽,不忘戒備)”고 썼다.[7]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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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담(嘗膽):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와신상담과 같은 뜻.
  • 절치부심(切齒腐心): 몹시 분하여 이를 갈고 속을 썩임.
  • 회계지치(會稽之恥): 회계산에서 당한 치욕이라는 뜻으로, 전쟁에 패한 치욕을 이름. 구천의 고사에서 나왔다.[12]
  • 발분도강(發奮圖強): 분발하여 강해지기를 꾀함.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7]
  • 반대 의미: 구차투생(苟且偸生), 취생몽사(醉生夢死).[7]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와신상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9%80%EC%8B%A0%EC%83%81%EB%8B%B4, 확인날짜=2026-09-26.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상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3%81%EB%8B%B4,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3.2 3.3 3.4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臥薪嘗胆”,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7%A5%E8%96%AA%E5%98%97%E8%83%86, 확인날짜=2026-09-26.
  4. ↑ 《좌전(左傳)》 정공(定公) 14년.
  5. ↑ 5.0 5.1 사마천, 《사기》 권41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6. ↑ 《오월춘추(吳越春秋)》 〈구천귀국외전(勾踐歸國外傳)〉.
  7. ↑ 7.0 7.1 7.2 7.3 7.4 7.5 7.6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臥薪嘗膽”,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98, 확인날짜=2026-09-26.
  8. ↑ 증선지(曾先之), 《십팔사략(十八史略)》 권1 〈춘추전국·오(吳)〉.
  9. ↑ 여조겸(呂祖謙), 《춘추좌씨전설(春秋左氏傳說)》 권20.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4권, 세종 13년 10월 30일 신유 8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310030_008, 확인날짜=2026-09-26.
  11.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성혼(成渾), 《우계집(牛溪集)》 권3 〈행조 상편의시무(行朝上便宜時務) 임진십이월〉,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98A_0030_010_0310, 확인날짜=2026-09-26.
  1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회계지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A%8C%EA%B3%84%EC%A7%80%EC%B9%98,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