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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멸괵(假道滅虢)은 길을 빌려 괵(虢)나라를 멸한다는 뜻으로, 다른 나라의 길을 잠시 빌려 쓰다가 나중에 그 나라까지 쳐서 없애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춘추 시대 진(晉)나라가 우(虞)나라에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마저 멸한 일에서 나왔다.

겉으로는 도움이나 통과만 청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상대까지 삼키려는 계략을 가리킨다. 또 눈앞의 작은 이익에 넘어가 남에게 길을 내주었다가 자기도 망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로도 쓴다. 같은 사건에서 궁지기(宮之奇)가 한 말이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한자로는 몇 가지 형태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假道滅虢으로 올리고,[1] 양나라 주흥사(周興嗣)의 《천자문(千字文)》과 명나라 소설 《삼국지연의》는 假途滅虢으로 썼으며,[2]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假途滅虢을 표제어로 삼는다.[3] 병법서 《삼십육계(三十六計)》의 제24계는 ‘假道伐虢(가도벌괵)’이다.[4]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假 가 거짓, 빌리다 빌리다
道 도 길 길
滅 멸 멸하다, 없애다 멸망시키다
虢 괵 나라 이름 괵나라

첫 번째 길 빌리기 (희공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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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나라의 남쪽에는 같은 희성(姬姓)의 작은 나라 우와 괵이 이웃해 있었다. 《춘추좌씨전》 희공 2년(기원전 658) 조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晉荀息請以屈產之乘,與垂棘之璧,假道於虞以伐虢。公曰:「是吾寶也。」對曰:「若得道於虞,猶外府也。」公曰:「宮之奇存焉。」對曰:「宮之奇之為人也,懦而不能強諫。且少長於君,君暱之。雖諫,將不聽。」乃使荀息假道於虞……虞公許之,且請先伐虢。宮之奇諫,不聽,遂起師。夏,晉里克、荀息帥師會虞師伐虢,滅下陽。

[5]

“진나라 순식(荀息)이 굴(屈) 땅에서 난 말과 수극(垂棘)에서 난 옥을 주고 우나라에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치자고 청했다. 헌공이 ‘이것은 나의 보배다’라고 하자, 순식은 ‘우나라에서 길을 얻기만 하면 바깥 창고에 넣어 두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헌공이 ‘궁지기가 있지 않은가’라고 하자, ‘궁지기는 사람됨이 나약해 굳세게 간하지 못하고, 또 어려서부터 임금 곁에서 자라 임금이 허물없이 여기니 간해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순식을 보내 우나라에 길을 빌리니…… 우공은 허락했을 뿐 아니라 먼저 괵을 치겠다고 청했다. 궁지기가 간했으나 듣지 않고 군사를 일으켰다. 여름에 진나라의 이극(里克)과 순식이 군사를 이끌고 우나라 군사와 함께 괵을 쳐서 하양(下陽)을 멸했다.”

같은 해 《좌전》은 “괵공이 상전(桑田)에서 융(戎)을 물리쳤다”고 적고, 진나라 점복관 복언(卜偃)이 “하양을 잃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또 공을 세웠으니, 이는 하늘이 그 거울을 빼앗고 병을 더한 것이다. 반드시 진나라를 얕보고 백성을 돌보지 않을 것이니 다섯 해를 넘기지 못한다”고 예언했다고 적는다.[5] 나무위키 등에는 이때 괵공이 견융(犬戎)에게 크게 졌다는 줄거리가 보이는데, 이는 명나라 소설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제25회의 각색이고, 《좌전》에서는 거꾸로 괵공이 융을 이겼다.[5][6]

두 번째 길 빌리기 (희공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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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공 5년(기원전 655) 진 헌공이 다시 우나라에 길을 빌리자(晉侯復假道於虞以伐虢), 궁지기는 “괵은 우의 바깥 울타리이니 괵이 망하면 우도 반드시 따라 망한다”며 순망치한의 속담을 들어 간했다. 우공은 듣지 않았고, 궁지기는 일족을 데리고 떠났다. 그해 12월 진나라는 괵을 멸했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에 머물다가 그대로 우나라를 습격해 멸하고 우공을 사로잡았다.[7] 가도멸괵이 ‘길을 빌려준 나라까지 없앤다’는 뜻이 된 것은 이 결말 때문이다.[1]

같은 이야기가 여러 책에 실려 있다. 《한비자(韓非子)》 〈십과(十過)〉는 작은 이익을 돌보다 큰 이익을 잃는 잘못(顧小利)의 예로, 《여씨춘추(呂氏春秋)》 〈권훈(權勳)〉은 “작은 이익은 큰 이익을 해친다(小利,大利之殘也)”는 교훈의 예로 들었다.[8][9]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은 순식이 “보배를 안 창고에서 꺼내 바깥 창고에 넣어 두고, 말을 안 마구간에서 꺼내 바깥 마구간에 매어 두는 것일 뿐”이라고 헌공을 설득한 말을 전한다.[10][11]

《천자문》에는 춘추 시대의 패업을 읊은 대목에 “길을 빌려 괵을 멸하고, 천토(踐土)에서 회맹했다(假途滅虢,踐土會盟)”는 구절이 있다.[2] 《삼국지연의》 제56회에서는 주유(周瑜)가 유비를 대신해 서천(西川)을 쳐 주겠다며 형주를 지나가다 형주를 빼앗으려 하자, 제갈량이 “이것은 ‘가도멸괵’의 계책”이라고 간파한다.[12][3]

《삼십육계》 제24계 〈가도벌괵〉은 “두 큰 세력 사이에 낀 작은 나라가 적의 위협을 받으면 우리는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세력을 넣는다(兩大之間,敵脅以從,我假以勢)”고 하고, 해설에서 《좌전》의 이 사건을 예로 든다.[4]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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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假道滅虢·假途滅虢이 한 건도 없지만,[13] ‘길을 빌린다(假道)’는 말은 임진왜란 직전에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1591년(선조 24) 조헌(趙憲)은 일본의 국서에 분개해 올린 상소에서 “수길(秀吉)이 길을 빌려 하늘을 쏘려는 악함(秀吉假道射天之惡)”을 들어 대비를 촉구했다.[14] 유집(柳楫)의 《백석유고(白石遺稿)》에 실린 책문에는 “섬 오랑캐가 북쪽 오랑캐를 치겠다며 길을 빌려 달라 하니, 어떤 이는 가도멸괵의 앞선 수레바퀴 자국을 거울삼아 엄한 말로 끊어야 한다고 한다(島夷聲言擊胡,來請假道。或以爲假道滅虢,前轍可鑑,莫若峻辭以絶)”는 구절이 있다.[15]

  • 협력사 계정으로 들어온 공격자가 그 권한을 발판 삼아 본사 시스템까지 장악했다. 공급망 공격은 가도멸괵의 현대판이다.
  • 합작을 핑계로 기술과 인력을 빼 간 뒤 시장을 통째로 가져간 것은 가도멸괵의 계략이었다.
  • 작은 이익에 길을 내주었다가 함께 망한 우나라처럼, 가도멸괵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 《곡량전》에 따르면 우나라를 멸한 뒤 순식이 옥을 들고 말을 끌고 와서 “옥은 그대로인데 말의 이가 더 자랐습니다(璧則猶是也,而馬齒加長矣)”라고 했다. 《공양전》에는 헌공이 “보배는 여전히 내 보배지만 내 말의 이는 벌써 자랐구나”라고 농담했다고 되어 있다. 몇 해 동안 남의 나라에 맡겨 둔 셈이 된 보물을 두고 한 말이다.[10][11]
  • 조선 후기 남유용(南有容)은 말을 의인화한 가전(假傳) 〈굴승전(屈乘傳)〉을 지으면서, 그 조상이 진 헌공 때 우나라에 볼모로 가서 “길을 빌려 괵을 멸하는(假道滅虢)” 공을 세워 굴(屈) 땅에 봉해졌다고 꾸몄다.[16]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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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서로 의지하는 한쪽이 망하면 다른 쪽도 위태로워짐. 같은 사건에서 나왔다.
  • 보거상의(輔車相依):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처럼 서로 의지함. 궁지기의 말에 나온다.
  •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음.
  • 원교근공(遠交近攻): 《삼십육계》에서 가도벌괵 바로 앞의 제23계.[4]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가도멸괵”,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0%80%EB%8F%84%EB%A9%B8%EA%B4%B5, 확인날짜=2026-09-28.
  2. ↑ 2.0 2.1 주흥사(周興嗣), 《천자문(千字文)》.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假途滅虢”,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6925, 확인날짜=2026-09-28.
  4. ↑ 4.0 4.1 4.2 《삼십육계(三十六計)》 〈혼전계(混戰計)〉 제24계.
  5. ↑ 5.0 5.1 5.2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년.
  6. ↑ 풍몽룡(馮夢龍) 개편,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제25회 〈지순식가도멸괵(智荀息假途滅虢)〉.
  7. ↑ 《춘추좌씨전》 희공 5년.
  8. ↑ 《한비자(韓非子)》 〈십과(十過)〉.
  9. ↑ 《여씨춘추(呂氏春秋)》 권15 〈신대람(慎大覽)·권훈(權勳)〉.
  10. ↑ 10.0 10.1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희공 2년.
  11. ↑ 11.0 11.1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희공 2년.
  12. ↑ 나관중(羅貫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56회.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假道滅虢”, “假途滅虢”,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14.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25권, 선조 24년 3월 1일 정유 7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b_12403001_007, 확인날짜=2026-09-28.
  15. ↑ 유집(柳楫), 《백석유고(白石遺稿)》 권6,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813A_0090_010_0160, 확인날짜=2026-09-28.
  16. ↑ 남유용(南有容), 〈굴승전(屈乘傳)〉, 《뇌연집(雷淵集)》 권27,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13A_0280_010_0150,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