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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망치한(脣亡齒寒)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서로 이해관계가 밀접한 사이에서 어느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5년 조에 나오는 속담에서 나왔다.

이웃한 나라나 동맹, 협력 관계에 있는 기업처럼 운명을 함께하는 사이에서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위태로워진다는 경고로 쓴다. 외교·안보 논의에서 특히 자주 인용되며, ‘입술’에 해당하는 쪽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동맹이나 원조를 주장할 때 쓰이곤 한다.

중국어에서는 ‘脣亡齒寒(chún wáng chǐ hán)’, 간체로 ‘唇亡齿寒’이라 하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脣’을 쓴다.[2] 일본어에서는 ‘唇亡びて歯寒し(くちびるほろびてはさむし)’라고 하며, ‘唇歯輔車(しんしほしゃ)’라는 말도 쓴다.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은 시바 료타로의 《나라 훔친 이야기(国盗り物語)》(1963~1966)에서 “고어에도 있습니다, 입술이 망하면 이가 시리다고”라는 대사를 용례로 든다.[3]

첫 번째 길 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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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남쪽에는 같은 희성(姬姓)의 작은 나라 우(虞)와 괵(虢)이 이웃해 있었다. 《춘추좌씨전》 희공 2년(기원전 658) 조에 따르면, 진나라 대부 순식(荀息)은 굴(屈) 땅에서 난 좋은 말과 수극(垂棘)에서 난 구슬을 우나라에 주고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치자고 헌공에게 청했다. 헌공이 “내 보배”라며 아까워하자 순식은 “우나라에서 길을 얻으면 바깥 창고에 잠시 옮겨 두는 것과 같다(猶外府也)”고 했다. 우나라 임금은 뇌물을 받고 길을 내주었을 뿐 아니라 먼저 괵나라를 치겠다고 나섰고, 그해 여름 진나라와 우나라 군대는 괵의 하양(下陽)을 멸했다.[4]

궁지기의 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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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공 5년(기원전 655) 진 헌공이 다시 우나라에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치려 하자, 우나라 대부 궁지기(宮之奇)가 간했다.[5]

晉侯復假道於虞以伐虢,宮之奇諫曰:「虢,虞之表也。虢亡,虞必從之。晉不可啟,寇不可翫。一之謂甚,其可再乎?諺所謂『輔車相依,脣亡齒寒』者,其虞虢之謂也!」

“괵은 우나라의 바깥 울타리입니다. 괵이 망하면 우도 반드시 뒤따릅니다. 진나라의 욕심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되고, 외적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한 번도 지나쳤는데 두 번이나 되겠습니까? 속담에 ‘광대뼈와 잇몸은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한 것은 바로 우와 괵을 두고 한 말입니다.”[5] ‘輔’는 광대뼈, ‘車’는 잇몸을 가리킨다는 풀이가 일반적이다.[2]

우나라 임금은 “진은 우리와 같은 종친인데 어찌 나를 해치겠느냐”, “내 제사가 풍성하고 정결하니 신이 나를 도울 것”이라며 듣지 않았다. 궁지기는 진 헌공이 같은 종족인 환숙(桓叔)·장백(莊伯)의 일족까지 죽였다는 것, “귀신은 사람을 가려 친하지 않고 오직 덕을 따른다”는 것을 들어 거듭 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일족을 이끌고 떠나며 “우나라는 올해 납제(臘祭)를 지내지 못할 것이다. 진나라는 다시 군사를 일으킬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5]

그해 8월 진 헌공은 괵의 도읍 상양(上陽)을 에워쌌고, 12월 초하루 병자일에 괵을 멸했다. 괵공 추(醜)는 주나라 서울로 달아났다. 진나라 군대는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에 머물다가 그대로 우나라를 습격해 멸하고, 우공과 대부 정백(井伯)을 사로잡았다. 《춘추》가 “진나라 사람이 우공을 잡았다”고만 적은 것은 우나라의 잘못을 꾸짖고, 쉽게 망했음을 말한 것이라고 《좌전》은 풀이한다.[5] 여기서 나온 말이 가도멸괵(假道滅虢), 곧 길을 빌려 괵을 멸한다는 성어이며, 《천자문》에도 “假途滅虢,踐土會盟” 구절로 들어 있다.[6]

다른 문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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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은 여러 책에 실려 있다.

  • 《춘추공양전》 희공 2년 조에서는 궁지기가 “기록에 이르기를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唇亡則齒寒)’고 했다”며 간한다. 공양전은 4년 뒤 진나라가 우나라까지 취하자 우공이 그 구슬을 안고 말을 끌고 나왔고, 순식이 헌공에게 “제 꾀가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헌공이 “보배는 여전히 내 보배이지만 내 말의 이빨이 벌써 자랐구나”라며 농담을 했다고 적는다.[7]
  • 《사기》 〈진세가(晉世家)〉는 궁지기의 말을 “우와 괵은 입술과 이의 관계이니,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립니다(虞之與虢,脣之與齒,脣亡則齒寒)”로 적고, 사로잡힌 대부를 “정백 백리해(井伯百里奚)”라고 하여 뒷날 진(秦)나라의 재상이 된 백리해와 같은 사람으로 본다.[8]
  • 《한비자》 〈십과(十過)〉와 《자치통감》 권1에는 전국 시대 초 지백(智伯)이 한·위를 거느리고 조나라 진양(晉陽)을 에워쌌을 때, 조나라의 장맹담(張孟談)이 한·위의 임금을 몰래 찾아가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고 들었습니다. 조나라가 망하면 다음은 두 분 차례”라고 설득해 지백을 거꾸로 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9]
  • 《좌전》 애공 8년 조에도 오나라가 노나라를 치려 할 때 자설(子洩)이 “노나라는 제나라와 진나라의 입술이니,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것은 임금께서도 아시는 바”라고 말한 대목이 있다.[2][10]

소설 속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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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등에 소개된 줄거리 가운데 진나라 장수 이극(里克)이 괵을 멸한 뒤 병을 핑계로 우나라 성 밖에 머물고, 헌공이 우공을 기산(箕山) 사냥에 끌어낸 사이 성안에 불이 나 우나라가 점령당했다는 대목은 《좌전》이나 《사기》에 없는 내용이다. 이는 명나라 소설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제25회 〈지순식가도멸괵(智荀息假途滅虢)〉의 줄거리이다.[11]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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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脣亡齒寒’이 19건, ‘脣亡則齒寒’이 2건 보인다.[12] 이른 예로 세종 9년(1427) 박초(朴礎)는 여진의 침입이 잦은 경원부를 용성(龍城)으로 물려 옮기자는 논의에 반대하며, 용성을 경계로 삼으면 경원이 도적의 소굴이 되어 “순망치한이 경계가 될 것(唇亡齒寒,足以爲戒)”이라고 했다.[13] 국경의 한 고을을 내주면 그 안쪽 고을이 곧 위태로워진다는, 이 성어의 원래 쓰임에 가까운 예이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脣(唇) 순 입술 입술, 곧 바깥에서 막아 주는 쪽
亡 망 망하다, 없어지다 없어지다
齒 치 이 이, 곧 안쪽에서 보호받는 쪽
寒 한 차다 시리다
  • 협력사 한 곳이 해킹당하자 그 회사와 망이 연결된 우리 시스템까지 위험해졌다. 공급망 보안에서 순망치한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 인근 상권이 무너지자 대형 마트의 매출도 따라 줄었으니 순망치한이라 할 만하다.
  • 두 나라는 순망치한의 관계라며 서로 군사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 1233년 몽골군에 쫓겨 채주(蔡州)로 피한 금나라 애종(哀宗)은 남송에 식량을 빌리러 가는 사신에게 “대원(大元)은 나라 사십을 멸하고 서하에 이르렀다. 서하가 망하자 우리에게 미쳤고, 우리가 망하면 반드시 송나라에 미칠 것이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脣亡齒寒,自然之理)”라는 뜻을 송나라에 전하게 했다. 송나라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듬해 금나라는 몽골과 남송의 협공으로 망했다.[14] 남송은 그로부터 약 45년 뒤 원나라에 멸망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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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거상의(輔車相依):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처럼 서로 돕고 의지함.[15] 표준국어대사전은 ‘輔’를 덧방나무, ‘車’를 바퀴로 푼다.
  • 순치상의(脣齒相依):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함. 《성어전》은 순망치한이 이해를 함께한다는 데, 순치상의는 서로 기댄다는 데 무게가 있다고 구분한다.[2]
  • 가도멸괵(假道滅虢): 길을 빌려 괵을 멸함. 같은 사건에서 나온 말.
  • 피지부존 모장안부(皮之不存,毛將安傅): 가죽이 없으면 털이 어디에 붙겠는가. 《좌전》 희공 14년.
  • 소훼난파(巢毁卵破): 둥지가 부서지면 알도 깨짐.[2]
  • 반대 의미: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 서로 전혀 상관없음.[2]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순망치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8%9C%EB%A7%9D%EC%B9%98%ED%95%9C,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脣亡齒寒”,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21, 확인날짜=2026-09-27.
  3. ↑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唇亡びて歯寒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94%87%E4%BA%A1%E3%81%B3%E3%81%A6%E6%AD%AF%E5%AF%92%E3%81%97, 확인날짜=2026-09-27.
  4.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년.
  5. ↑ 5.0 5.1 5.2 5.3 《춘추좌씨전》 희공 5년.
  6. ↑ 《천자문(千字文)》.
  7. ↑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희공 2년.
  8. ↑ 사마천, 《사기》 권39 〈진세가(晉世家)〉.
  9. ↑ 《한비자(韓非子)》 〈십과(十過)〉; 사마광,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
  10. ↑ 《춘추좌씨전》 애공(哀公) 8년.
  11. ↑ 풍몽룡(馮夢龍) 개편,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제25회.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脣亡齒寒”·“脣亡則齒寒”,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7.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 9월 29일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0909029_005, 확인날짜=2026-09-27.
  14. ↑ 《금사(金史)》 권18 〈애종본기(哀宗本紀) 하〉.
  15.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보거상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3%B4%EA%B1%B0%EC%83%81%EC%9D%98,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