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은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한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중국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외교 정책으로, 《사기》 〈범저채택열전〉에 나오는 말이다.[1]

멀리 있는 세력과는 손을 잡아 적어도 방해하지 않게 만들고, 그 사이에 가까이 있는 상대부터 하나씩 차지해 나가는 전략을 가리킨다. 국가 간 외교뿐 아니라 기업 경쟁이나 정치 연합을 설명할 때도 비유로 쓴다. 병법 서른여섯 가지를 정리한 《삼십육계(三十六計)》에서는 ‘혼전계(混戰計)’의 제23계로 들어 있다. 여기서는 “형세에 막혀 있을 때는 이익은 가까운 데서 취하고 해는 먼 데로 떼어 놓는다(形禁勢格,利從近取,害以遠隔)”고 풀고, 해설에서 “먼 나라는 칠 수 없으니 이익으로 맺고, 가까운 나라와 사귀면 도리어 겨드랑이 밑에서 변이 생긴다(遠不可攻,而可以利相結;近者交之,反使變生肘腋)”며 범저의 계책을 “지리의 정해진 법칙”이라고 평한다.[2]

중국어에서도 같은 글자로 ‘遠交近攻(yuǎn jiāo jìn gōng)’이라고 한다.[3] 일본어에서는 ‘遠交近攻(えんこうきんこう)’이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무로마치 시대 중기의 사전 《문명본 절용집(文明本節用集)》을 든다.[4]

위(魏)나라 사람 범저(范雎)는 억울하게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바꾸고 진나라로 달아났다. 그 무렵 진 소왕(昭王, 소양왕)은 즉위한 지 오래되었지만 어머니 선태후(宣太后)와 외삼촌 양후(穰侯) 위염(魏冄)이 권력을 쥐고 있었다. 범저는 소왕을 만나 먼저 나라 밖의 일부터 말하며, 양후가 한·위를 건너뛰어 멀리 제나라의 강(綱)·수(壽)를 치려는 것은 잘못된 계책이라고 했다.[5]

夫穰侯越韓、魏而攻齊綱壽,非計也。少出師則不足以傷齊,多出師則害於秦。……且昔齊湣王南攻楚,破軍殺將,再辟地千里,而齊尺寸之地無得焉者,豈不欲得地哉,形勢不能有也。……攻齊所以大破者,以其伐楚而肥韓、魏也。此所謂借賊兵而齎盜糧者也。王不如遠交而近攻,得寸則王之寸也,得尺亦王之尺也。今釋此而遠攻,不亦繆乎!

“양후가 한·위를 건너뛰어 제나라의 강·수를 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군사를 적게 내면 제나라를 해치기에 모자라고, 많이 내면 진나라에 해가 됩니다. …… 옛날 제 민왕은 남쪽으로 초나라를 쳐서 군대를 깨뜨리고 장수를 죽이며 두 번이나 천 리 땅을 넓혔지만, 제나라는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했습니다. 땅을 얻고 싶지 않았겠습니까마는 형세가 그 땅을 가질 수 없게 했던 것입니다. …… 제나라가 크게 패한 까닭은 초나라를 쳐서 한·위만 살찌웠기 때문이니, 이것이 이른바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대 준다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먼 나라와 사귀고 가까운 나라를 치는 것만 못합니다. 한 치를 얻으면 왕의 한 치가 되고, 한 자를 얻으면 왕의 한 자가 됩니다. 지금 이것을 버리고 멀리 치시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5]

범저는 이어 한·위는 천하의 중심이니 이들을 가까이 두어 초·조를 위협하고, 초·조가 붙으면 제나라가 두려워 스스로 진나라를 섬길 것이며, 그러면 한·위는 사로잡을 수 있다고 했다. 소왕은 범저를 객경(客卿)으로 삼아 군사를 맡기고, 그 계책대로 위나라를 쳐서 회(懷)를 빼앗고, 2년 뒤에는 형구(邢丘)를 빼앗았다.[5]

같은 헌책은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3〉에도 실려 있는데, 제 민왕 대신 “제나라 사람(齊人)”이라 하는 등 글자가 조금 다르다. 핵심 구절은 “王不如遠交而近攻,得寸則王之寸,得尺則王之尺也”이다.[6] 《성어전》은 이 구절을 “得寸則王得寸,得尺亦王之尺也”로 인용했는데,[3] 《전국책》에는 “得寸則王之寸”으로 되어 있고 《사기》에는 “得寸則王之寸也,得尺亦王之尺也”로 되어 있어 두 책의 글자가 섞인 것으로 보인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과 일본의 《일본대백과전서》도 《전국책》과 《사기》를 함께 출전으로 든다.[3][4]

범저가 말한 요점은 ‘먼 나라와의 동맹’보다 ‘가까운 나라부터 치라’는 쪽에 있다. 멀리 떨어진 나라를 이겨 봐야 그 땅을 지킬 수 없어 결국 가운데 있는 나라들만 이롭게 하니, 이웃부터 쳐서 한 치 한 자씩 확실하게 진나라 땅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먼 나라와 사귀는 것은 그동안 그들이 끼어들지 않게 하려는 수단이었다. 《일본대백과전서》도 범저가 이웃 나라를 넘어 먼 나라를 치는 진나라의 대외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보고, 먼 나라와 좋게 지내며 이웃을 치자고 설득한 것으로 설명한다. 소양왕은 이를 따라 제·연·초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한·위·조를 쳤고, 뒤에 시황제가 한·위·조를 먼저 멸한 뒤 초·연·제를 멸해 천하를 통일했다.[4]

원나라 오사도(吳師道)는 남송 포표(鮑彪)가 주석한 《전국책》에 보주(補注)를 달며 “원교근공은 진나라가 끝내 이 방법으로 제후를 깨뜨리고 천하를 아울렀다(遠交近攻,秦卒用此術破諸侯,并天下)”고 평했다.[6] 네 글자로 붙여 쓴 이른 예로는 북송 정이(程頤)·정호(程顥)의 어록 《이정유서(二程遺書)》 권7의 “병법의 원교근공은 이 도리를 잘 살펴 행해야 한다(兵法遠交近攻,須是審行此道)”가 있다.[7]

《성어전》은 원교근공의 후대 용례로 “《수호전(水滸傳)》 제7회”의 “요나라에 바치던 폐백을 금나라에 돌리고 앉아서 연운의 옛 땅을 되찾는 것이 원교근공의 계책에 딱 맞는다(莫若以納遼之幣歸之於金,坐復燕雲故土,正合遠交近攻之計)”를 든다.[3] 그러나 이 구절은 《수호전》이 아니라 명말청초 진침(陳忱)이 지은 속작 《수호후전(水滸後傳)》 제7회에서 조양사(趙良嗣)가 한 말이다.[8]

《사기》의 판본에 따라 범저의 이름이 ‘范雎(범저)’ 또는 ‘范睢(범수)’로 달리 적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편명을 〈범저채택전(范雎蔡澤傳)〉으로 적고,[1] 일본 사전들도 ‘范雎(はんしょ)’로 읽는다.[4] 한국어 자료에서는 ‘범수’로 적는 경우도 많다.

한국 문헌의 용례

편집 원본 편집

《조선왕조실록》에는 원문 기준으로 ‘遠交近攻’이 7건 보인다.[9]

  • 세종 15년(1433) 파저강(婆猪江) 야인 정벌을 논의할 때, 세종이 서쪽과 동쪽의 야인을 한꺼번에 치는 것이 어떠냐고 묻자 황보인(皇甫仁)·유맹문(柳孟聞)은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하고, 또 원교근공은 공격하여 빼앗는 좋은 계책”이라며 서쪽을 먼저 친 뒤 형세를 보자고 했다.[10]
  • 광해군 때 후금을 논한 글에는 “진나라가 원교근공하여 40년 동안 제나라에 군사를 더하지 않은 것도 형세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며, 후금이 조선을 크게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 대목이 있다.[11]
  • 문집에서는 이제현(李齊賢)이 고려 무신 김취려(金就礪)의 행군기에서 그가 “먼 나라와 사귀고 가까운 적을 쳐서(遠交近攻)” 나라의 기틀을 안정시켰다고 썼고,[12] 이이(李珥)는 〈천도인사책(天道人事策)〉에서 진나라가 원교근공하여 형세를 얻었다며 “진나라가 여섯 나라를 멸한 것이 아니라 여섯 나라가 스스로 멸한 것”이라고 논했다.[1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遠 원 멀다 먼 나라
交 교 사귀다 친교를 맺음
近 근 가깝다 가까운 나라
攻 공 치다 공격함
  • 그 회사는 해외 대형 업체와는 기술 제휴를 맺고 국내 경쟁사들의 시장을 하나씩 잠식하는 원교근공 전략을 폈다.
  • 지역의 맞수를 견제하려고 먼 강대국과 동맹을 맺는 것은 전형적인 원교근공이다.
  • 보안 조직을 키울 때도 원교근공처럼 가까운 부서의 협조부터 확실히 얻고, 멀리 있는 조직과는 우호적인 관계만 유지하며 차근차근 영역을 넓히는 편이 낫다.
  • 송시열(宋時烈)은 제자들에게, 주자가 학생들에게 책을 정밀하게 읽으라고 가르칠 때 늘 범저의 “한 치를 얻으면 왕의 한 치요, 한 자를 얻으면 왕의 한 자”라는 말에 빗대었다고 했다. 진나라가 원교근공으로 천하를 얻었듯이, 독서도 넓고 잡되게 욕심내지 말고 작은 데서 큰 데로, 가까운 데서 먼 데로 끊임없이 쌓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14]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합종연횡(合從連衡): 전국 시대 소진의 합종책과 장의의 연횡책. 원교근공과 함께 전국 시대 외교술을 대표하는 말.[4]
  • 가도벌괵(假道伐虢):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침. 《삼십육계》에서 원교근공 다음의 제24계.
  •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함.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원교근공”,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B%90%EA%B5%90%EA%B7%BC%EA%B3%B5, 확인날짜=2026-09-27.
  2. ↑ 《삼십육계(三十六計)》 제4투(套) 〈혼전계(混戰計)〉 제23계 ‘원교근공’.
  3. ↑ 3.0 3.1 3.2 3.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遠交近攻”,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108,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4.2 4.3 4.4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개정신판 세계대백과사전(改訂新版 世界大百科事典)》, “遠交近攻”,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81%A0%E4%BA%A4%E8%BF%91%E6%94%BB, 확인날짜=2026-09-27.
  5. ↑ 5.0 5.1 5.2 사마천, 《사기》 권79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6. ↑ 6.0 6.1 《전국책》 〈진책(秦策) 3〉.
  7. ↑ 정호·정이, 《이정유서(二程遺書)》 권7.
  8. ↑ 진침(陳忱), 《수호후전(水滸後傳)》 제7회.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遠交近攻”, https://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 확인날짜=2026-09-27.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9권, 세종 15년 2월 27일 신해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502027_005, 확인날짜=2026-09-27.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광해 11년 12월 22일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ob_11112022_003, 확인날짜=2026-09-27.
  12. ↑ 이제현, 〈김공행군기(金公行軍記)〉, 《익재난고(益齋亂藁)》.
  13. ↑ 이이, 〈천도인사책(天道人事策)〉, 《율곡전서(栗谷全書)》.
  14. ↑ 최신(崔愼), 〈최신록(崔愼錄) 상〉, 송시열, 《송자대전(宋子大全)》 부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