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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제이(以夷制夷)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뜻으로, 한 세력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을 제어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전한의 조조(晁錯)가 올린 상소의 “以蠻夷攻蠻夷”와 《후한서(後漢書)》의 “以夷伐夷”에서 비롯한 말로, 네 글자 ‘以夷制夷’는 주로 청대 문헌에서 쓰였다.

직접 싸우지 않고 적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어 힘을 빼는 계책을 말한다. 원래는 중원 왕조가 주변 민족을 다루는 방식을 가리켰으나, 지금은 외교뿐 아니라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세력을 맞붙여 이득을 보는 일을 두루 이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같은 뜻의 말로 ‘이이공이(以夷攻夷)’를 올렸다.[1][2]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以夷制夷를 “외족이나 외국 사이의 모순을 이용해 서로 충돌하게 하여 힘을 깎은 뒤 통제하거나 치는 것”으로 풀이하고, ‘以夷伐夷’, ‘以夷治夷’라고도 한다고 적었다. 둘째 뜻으로 “다른 나라의 장점을 배워 그 나라를 누르는 것”도 들었는데, 이는 뒤에 말할 청나라 위원(魏源)의 “師夷長技以制夷”와 관련된 쓰임이다.[3] 일본어에서도 ‘以夷制夷(いいせいい)’라 하며, 훈독해 ‘夷を以て夷を制す’라고도 한다.[4] 일본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은 뜻을 “다른 나라의 힘을 이용해 또 다른 나라의 힘을 누른다”에서 더 넓혀 “남의 힘을 빌려 자기 이익을 얻는다”로도 풀이하며, 1940년 기쿠치 간(菊池寬)의 《이천육백년사초(二千六百年史抄)》를 용례로 든다.[5]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以 이 써, ~로써 ~을 가지고, ~을 이용하여
夷 이 오랑캐, 평평하다 이민족, 바깥 세력
制 제 억누르다, 마르다 누르다, 제어하다
夷 이 오랑캐 이민족, 바깥 세력

‘夷’는 본래 중국 동쪽의 이민족을 가리키던 말이지만, 이 성어에서는 중원 바깥의 여러 민족을 두루 이른다. 일본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은 ‘夷’가 옛날 중국에서 왕의 교화가 미치지 않는 민족을 낮추어 부른 말이라고 풀이한다.[6]

조조의 “以蠻夷攻蠻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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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뿌리는 전한 문제(文帝) 때 조조가 올린 이른바 〈언병사소(言兵事疏)〉에 있다. 조조는 흉노를 막는 방책을 논하면서 나라의 크기와 강약에 따라 싸우는 방식이 다르다고 했다.[7]

臣又聞小大異形,彊弱異勢,險易異備。夫卑身以事彊,小國之形也;合小以攻大,敵國之形也;以蠻夷攻蠻夷,中國之形也。

[7]

“신이 또 듣건대, 작은 나라와 큰 나라는 형세가 다르고,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는 기세가 다르며, 험한 곳과 평탄한 곳은 대비가 다르다고 합니다. 몸을 낮추어 강한 나라를 섬기는 것은 작은 나라의 형세이고, 작은 나라들이 힘을 합쳐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맞먹는 나라의 형세이며,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은 중국의 형세입니다.”

조조는 이어 흉노와 중국의 장기(長技)를 비교한 뒤, 귀순한 호(胡)와 의거(義渠) 등 만이(蠻夷)의 무리 수천 명이 먹는 것과 장기가 흉노와 같으니 그들에게 좋은 갑옷과 활을 주고 변경의 기병을 더해 쓰자고 제안했다.[7]

《후한서》의 “以夷伐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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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夷’ 한 글자로 줄인 형태는 《후한서》에 나온다. 장화(章和) 2년(88), 흉노가 남북으로 갈라져 다투자 남선우가 함께 북흉노를 치자고 청했고, 경병(耿秉)은 “이제 다행히 하늘이 주신 기회를 만나 북쪽 오랑캐가 갈라져 다투니,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은 나라의 이익이므로 들어주어야 합니다(今幸遭天授,北虜分爭,以夷伐夷,國家之利,宜可聽許)”라고 아뢰었다.[8]

같은 해 서쪽 변경에서는 반대의 이야기가 있었다. 호강교위 장우(張紆)가 강족(羌族)의 우두머리 미오(迷吾) 등을 꾀어 죽이자 강족이 크게 노해 원수를 갚으려 했고, 조정은 등훈(鄧訓)을 새 호강교위로 보냈다. 미오의 아들 미당(迷唐)이 등훈을 바로 치지 못하고 먼저 변경 안에 살던 소월지(小月氏)의 호족(胡族)을 위협하자, 등훈은 이들을 지켜 싸우지 못하게 했다.[9]

議者,咸以羌胡相攻,縣官之利,以夷伐夷,不宜禁護。訓曰:『不然。今張紆失信,眾羌大動,經常屯兵,不下二萬,轉運之費,空竭府帑,涼州吏人,命縣絲髮。原諸胡所以難得意者,皆恩信不厚耳。今因其迫急,以德懷之,庶能有用。』

[9]

“논의하는 이들은 모두 강족과 호족이 서로 치는 것은 조정에 이로우니,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게 해야지 막아서 지켜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등훈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지금 장우가 신의를 잃어 강족 무리가 크게 들고일어났으니, 늘 주둔시키는 군사가 2만이 넘고 실어 나르는 비용으로 관청 창고가 텅 비었으며, 양주(涼州)의 관리와 백성은 목숨이 머리카락 한 올에 매달린 처지이다. 여러 호족의 마음을 얻기 어려웠던 것은 모두 은혜와 신의가 두텁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급박한 처지에 놓인 것을 틈타 덕으로 품으면 쓸모가 있을 것이다.’”

등훈은 성문과 자기 거처의 문을 열어 호족의 처자를 모두 안으로 들이고 군사로 지켰다. 강족은 약탈할 것이 없어 물러갔고, 황중(湟中)의 호족들은 “한나라는 늘 우리끼리 싸우게 하려 했는데, 이제 등 사군(使君)은 은혜와 신의로 대해 주었다”며 기뻐 따랐다고 한다.[9] 이 이야기에서 ‘以夷伐夷’는 조정 신하들의 주장이고, 등훈은 오히려 그것을 물리치고 은덕으로 품는 쪽을 택했다. 이 성어의 출전으로 흔히 이 대목을 들지만, 이야기의 결론은 이이제이와 반대이다.

나무위키 등에는 이 대목의 ‘縣官之利’를 “고을 관리에게 유리하다”로 옮긴 번역이 보이는데, 한나라 때 ‘縣官’은 천자나 조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나라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은 “縣官은 천자를 이른다(縣官謂天子也)”고 풀이했다.[10]

당·송대의 ‘以夷攻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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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이옹(李邕)은 〈좌우림대장군 장공 신도비(左羽林大將軍臧公神道碑)〉에서 장공이 간첩을 풀고 이웃 부족에게 큰 상을 걸어 적을 고립시킨 일을 두고 “이른바 무력으로 무력을 물리치고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 것이니, 가의(賈誼)의 계책과 조조의 방책이라도 이보다 낫지 않다(所謂以武辟武,以夷攻夷,雖賈誼計然,晁錯策得,無以尚也)”고 했다. 당대에 이미 ‘以夷攻夷’가 조조의 방책과 짝지어 이해되었음을 보여 준다.[11] 당 태종과 이정(李靖)의 문답 형식으로 된 병법서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에도 당 태종이 “옛사람이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이 중국의 형세’라 했다(古人云:以蠻夷攻蠻夷,中國之勢也)”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12]

북송 때 왕안석(王安石)은 〈한림시독학사 매공 신도비(翰林侍讀學士知許州軍州事梅公神道碑)〉에서, 매순(梅詢)이 이계천(李繼遷)의 공격으로 영주(靈州)가 위급할 때 티베트계 부족장 반라지(潘羅支)를 움직이자고 청한 일을 “병법에서 이른바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것(兵法所謂,以夷攻夷)”이라고 적었다.[13] 같은 일을 구양수(歐陽修)는 매순의 묘지명에서 “이것이 이른바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것(是謂以蠻夷攻蠻夷)”이라고 썼다.[14]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도 이 성어의 중국 출전으로 왕안석의 이 신도비를 든다.[4]

청대의 ‘以夷制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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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制’를 쓴 네 글자 형태는 청대 문헌에서 널리 보인다. 청나라 왕삼(汪森)이 광서 지방의 글을 모아 엮은 《월서문재(粤西文載)》에는 산간 소수민족을 달래어 정착시켜 두었다가 변란이 생기면 그들을 불러 길잡이로 쓰면 “오랑캐로 오랑캐를 누르니 힘이 배로 덜 든다(以夷制夷,省力自倍)”는 대목이 있다.[15] 청나라 도광(道光) 연간의 실록에는 신장의 회부(回部) 문제를 다루는 상유에서 ‘以夷制夷’가 거듭 나오고,[16] 아편 문제로 영국과 맞서던 임칙서(林則徐)는 영국과의 무역만 끊으면 다른 나라들이 기뻐할 것이니 “바로 오랑캐로 오랑캐를 누를 수 있다(正可以夷制夷)”고 상소했다.[17]

위원(魏源)은 《해국도지(海國圖志)》 서문에서 이 책을 지은 까닭을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기 위해, 오랑캐로 오랑캐와 화친하기 위해, 오랑캐의 뛰어난 기술을 배워 오랑캐를 누르기 위해(爲以夷攻夷而作,爲以夷款夷而作,爲師夷長技以制夷而作)”라고 밝혔다.[18] 《성어전》이 든 둘째 뜻은 이 구절과 통한다.[3]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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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네 글자 ‘以夷制夷’보다 조조의 원래 문장인 ‘以蠻夷攻蠻夷’를 인용하는 일이 많았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以夷制夷’는 검색되지 않고, ‘以蠻夷攻蠻夷’는 8건 보인다.[19]

  • 1436년 세종은 외적을 막는 방책을 4품 이상 관원에게 물었는데, 그 가운데 전라도 등지의 염간(鹽干)과 사냥에 익숙한 신백정(新白丁)은 말 타기와 걷기에 능하고 날래니 이들을 쓰는 것이 “이른바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것(所謂以蠻夷攻蠻夷也)”이라는 의견이 있었다.[20]
  • 1456년 세조는 명나라가 조선에는 야인과 사귀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입조한 야인에게는 선물을 후하게 주는 것을 두고 “옛사람이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이 중국의 형세’라 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중국의 꾀(古人云,以蠻夷攻蠻夷,中國之勢,此卽今日中國之謀也)”라며, 조선이 중국의 술책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21] 세조가 말한 ‘中國之勢’는 《한서》의 ‘中國之形’이 아니라 《이위공문대》의 표현과 같다.[7][12]
  • 1601년 선조는 체찰사 이덕형(李德馨)에게 일본 쪽에서 온 글을 두고 답하면서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은 중국의 이익(以蠻夷攻蠻夷,中國之利也)”이라 하고 좋은 계책이 있으면 아뢰라고 했다.[22]
  • 《승정원일기》에는 1638년 주강에서 명나라가 왜를 끌어들여 청을 치려 한다는 소문을 논하며 “비록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지만 형세상 안 될 일(雖曰以夷攻夷,勢有不可矣)”이라고 한 말이 있다.[23] 송시열(宋時烈)도 민지숙(閔持叔)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은 본래 중국의 이익(以夷攻夷。自是中國之利)”이라고 썼다.[24]
  • 두 경쟁사를 서로 견제하게 만들어 납품 단가를 낮추려는 이이제이 전략이었다.
  • 한 보안 업체의 탐지 결과로 다른 업체 제품의 오탐을 검증하게 하는 식의 이이제이가 늘 통하는 것은 아니다. 두 제품이 같은 엔진을 쓰면 둘 다 같은 것을 놓친다.
  • 강대국들 사이에서 이이제이를 꾀하다가 오히려 모두에게 휘둘리는 경우도 많다.
  • 루쉰(魯迅)은 1933년 《신보(申報)》 〈자유담(自由談)〉에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잡문을 실었다. 중국 사람들이 국제연맹에 하소연하자 일본 신문이 이를 중국이 조상에게 물려받은 ‘이이제이’의 수법이라고 비웃었는데, 루쉰은 오히려 열강이 중국인을 시켜 중국인을 누르는 ‘이화제화(以華制華)’를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글은 잡문집 《위자유서(偽自由書)》에 실렸다.[25]
  • 1934년 4월 17일 일본 외무성 정보부장 아모 에이지(天羽英二)는 기자들에게 중국이 ‘이이제이’ 정책으로 다른 나라를 끌어들여 일본을 배척하면 일본은 이를 배격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비공식 담화를 발표했다. 이른바 ‘아모 성명(天羽聲明)’이다.[26]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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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이공이(以夷攻夷): 같은 뜻.[1]
  • 이이벌이(以夷伐夷), 이이치이(以夷治夷): 같은 뜻의 중국어 표현. 《성어전》은 以夷治夷의 용례로 《명사(明史)》 권166 〈장우전(張祐傳)〉의 “以夷治夷,可不煩兵而下”를 든다.[27]
  • 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임. 남의 손을 빌려 해를 끼침.[28]
  •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사귀고 가까운 나라를 침.
  • 어부지리(漁父之利): 둘이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이익을 봄.
  1.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이이제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4%EC%9D%B4%EC%A0%9C%EC%9D%B4, 확인날짜=2026-09-28.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이이공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4%EC%9D%B4%EA%B3%B5%EC%9D%B4, 확인날짜=2026-09-28.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以夷制夷”,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720, 확인날짜=2026-09-28.
  4. ↑ 4.0 4.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夷を以て夷を制す”,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A4%B7%E3%82%92%E4%BB%A5%E3%81%A6%E5%A4%B7%E3%82%92%E5%88%B6%E3%81%99, 확인날짜=2026-09-28.
  5. ↑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以夷制夷”,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B%A5%E5%A4%B7%E5%88%B6%E5%A4%B7, 확인날짜=2026-09-28.
  6. ↑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以夷制夷”,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B%A5%E5%A4%B7%E5%88%B6%E5%A4%B7, 확인날짜=2026-09-28.
  7. ↑ 7.0 7.1 7.2 7.3 《한서(漢書)》 권49 〈원앙·조조전(爰盎晁錯傳)〉.
  8. ↑ 《후한서(後漢書)》 권89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9. ↑ 9.0 9.1 9.2 《후한서(後漢書)》 권16 〈등구열전(鄧寇列傳)〉 등훈(鄧訓).
  10. ↑ 사마천, 《사기(史記)》 권57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사마정 색은(索隱).
  11. ↑ 이옹(李邕), 〈좌우림대장군 장공 신도비(左羽林大將軍臧公神道碑)〉, 《이북해집(李北海集)》 권5.
  12. ↑ 12.0 12.1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13. ↑ 왕안석(王安石), 〈한림시독학사지허주군주사매공신도비(翰林侍讀學士知許州軍州事梅公神道碑)〉, 《임천선생문집(臨川先生文集)》 권88.
  14. ↑ 구양수(歐陽修), 〈한림시독학사급사중매공묘지명(翰林侍讀學士給事中梅公墓誌銘)〉.
  15. ↑ 왕삼(汪森) 편, 《월서문재(粤西文載)》 권61.
  16. ↑ 《청선종실록(清宣宗實錄)》 권90·권198.
  17. ↑ 《청사고(清史稿)》 권369 〈임칙서전(林則徐傳)〉.
  18. ↑ 위원(魏源), 《해국도지(海國圖志)》 〈원서(原敘)〉.
  1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以夷制夷”·“以蠻夷攻蠻夷”,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2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73권, 세종 18년 윤6월 19일 계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806119_002, 확인날짜=2026-09-28.
  2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 3권, 세조 2년 2월 18일 정사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ga_10202018_001, 확인날짜=2026-09-28.
  2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38권, 선조 34년 6월 12일 무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406012_002, 확인날짜=2026-09-28.
  23.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인조 16년 3월 7일 경오, https://sjw.history.go.kr/id/SJW-A16030070-01500, 확인날짜=2026-09-28.
  24. ↑ 송시열(宋時烈), 〈답민지숙(答閔持叔)〉 경술 정월 12일, 《송자대전(宋子大全)》,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25. ↑ 루쉰(魯迅), 〈「以夷制夷」〉, 《위자유서(偽自由書)》, 1933.
  26. ↑ 참고: 시안우전대학 마르크스주의학원, “1934年4月17日 日本发表侵华宣言——天羽声明”, https://mayuan.xupt.edu.cn/info/1410/3132.htm, 확인날짜=2026-09-28.
  27.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以夷治夷”,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0023, 확인날짜=2026-09-28.
  28.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借刀殺人”,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48,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