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일거양득(一擧兩得)은 한 가지 일을 하여 두 가지 이익을 얻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양득(兩得)’, ‘일거이득(一擧二得)’이라고도 한다.[1]

한 번의 행동이나 한 가지 정책으로 두 가지 좋은 결과를 함께 얻을 때 쓴다. 뜻이 같은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영어 속담을 옮긴 근대의 말인 데 비해, 일거양득은 중국 고대 문헌부터 쓰인 오래된 말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에 영어 ‘kill two birds with one stone’을 처음 옮길 때 이 ‘一挙両得’을 쓰기도 했다.[2]

중국어에서도 같은 글자로 ‘一舉兩得(yī jǔ liǎng dé)’이라고 한다.[3] 일본어에서는 ‘一挙両得(いっきょりょうとく)’이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풍자 잡지 《마루마루친분(団団珍聞)》 693호(1889)를 들고 출전 문헌으로 《진서》 〈속석전〉을 적는다.[4]

《전국책》: 두 호랑이를 한 번에

편집 원본 편집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이 말의 근원을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2〉의 진진(陳軫) 이야기에서 찾는다.[3] 초나라가 제나라와 관계를 끊자 제나라가 초나라를 치려 했다. 초왕의 사신으로 진(秦)나라에 간 진진에게 진왕은 제·초 싸움에 끼어들어야 할지 물었다. 진진은 관여(管與)의 이야기로 답했다.

有兩虎諍人而鬥者,管莊子將刺之,管與止之曰:「虎者,戾蟲;人者,甘餌也。今兩虎諍人而鬥,小者必死,大者必傷。子待傷虎而刺之,則是一舉而兼兩虎也。無刺一虎之勞,而有刺兩虎之名。」

“호랑이 두 마리가 사람을 두고 다투며 싸우는데, 관장자(管莊子)가 찌르려 하자 관여가 말렸다. ‘호랑이는 사나운 짐승이고 사람은 맛있는 먹이입니다. 지금 두 호랑이가 사람을 두고 싸우니 작은 놈은 반드시 죽고 큰 놈은 반드시 다칠 것입니다. 다친 호랑이를 기다렸다가 찌르면 한 번에 두 호랑이를 겸하게 됩니다. 한 마리를 찌르는 수고도 없이 두 마리를 찌른 이름을 얻는 것입니다.’” 진진은 제·초가 싸우면 반드시 한쪽이 질 것이니, 그때 군사를 내어 구하면 제나라를 구한 이로움만 얻고 초나라를 친 해로움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5] 여기서 ‘한 번의 움직임(一舉)’으로 두 가지를 얻는다는 생각이 나온다.

같은 이야기가 《사기》 권70 〈장의열전(張儀列傳)〉의 진진 대목에는 조금 다르게 실려 있다. 여기서는 제·초가 아니라 한(韓)·위(魏)가 해를 넘겨 싸우는 상황이고, 호랑이를 찌르려는 사람은 변장자(卞莊子), 말린 사람은 여관의 심부름꾼(館豎子)이다. 두 호랑이가 소를 먹다가 다투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이니, 다친 놈을 찌르면 “한 번에 반드시 두 호랑이를 잡은 이름을 얻는다(一舉必有雙虎之名)”고 했고, 과연 변장자는 “한 번에 두 호랑이를 잡은 공(一舉果有雙虎之功)”을 세웠다. 진 혜왕은 이 말을 따라 한·위를 구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크게 이겼다.[6]

《성어전》은 같은 《전국책》 〈진책 1〉에서 사마착(司馬錯)이 촉(蜀)을 치자고 주장하며 “우리가 한 번 움직이면 이름과 실리가 함께 따라온다(我一舉而名實兩附)”고 한 대목도 전거로 든다.[3]

네 글자 형태

편집 원본 편집

‘한 번 움직여 두 가지를 얻는다’는 표현이 문장 속에 그대로 나오는 이른 예는 후한의 《동관한기(東觀漢記)》 〈경엄전(耿弇傳)〉이다. 광무제의 장수 경엄은 서안(西安)을 치겠다고 소문을 낸 뒤 실제로는 임치(臨淄)를 쳐서 하루 만에 빼앗으며 이렇게 말했다.[3]

吾得臨淄,即西安孤,必復亡矣,所謂一舉而兩得者也。

“내가 임치를 얻으면 서안은 고립되어 반드시 망할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한 번 움직여 둘을 얻는 것이다.”[3]

오늘날의 네 글자 ‘一舉兩得’은 서진(西晉)의 학자 속석(束晳)이 농업을 넓히는 방책을 올린 글에 보이며, 《진서(晉書)》 권51 〈속석전(束晳傳)〉에 실려 있다. 속석은 옛날 위나라 때 양평·돈구 지역으로 옮겨 살게 한 세 군의 백성이 이제 5~6천 호로 불어나 땅이 좁아졌으니, 이들을 서쪽 변방으로 돌려보내고 10년 동안 부역을 면해 주자고 건의했다.[7]

又昔魏氏徙三郡人在陽平頓丘界,今者繁盛,合五六千家。二郡田地逼狹,謂可徙還西州,以充邊土,賜其十年之復,以慰重遷之情。一舉兩得,外實內寬,增廣窮人之業,以辟西郊之田,此又農事之大益也。

“한 번 움직여 둘을 얻으니, 밖으로는 변경을 채우고 안으로는 여유가 생긴다. 가난한 사람의 생업을 넓히고 서쪽 들의 밭을 개간하게 되니, 이 또한 농사에 큰 이익이다.”[7] 일본의 사전들이 출전으로 드는 것이 이 대목이다.[4]

‘한 번(一舉)’에 무엇을 얻느냐에 따라 여러 변형이 생겼다. 《성어전》은 다음을 같은 계열의 말로 든다.[3]

  • 일거양전(一舉兩全): 《삼국지》 〈위서·곽회전〉의 “이것이 한 번 움직여 둘을 온전히 하는 계책이다(此一舉而兩全之策也)”.
  • 일거양리(一舉兩利): 북송 소순(蘇洵)의 〈형론·의법(衡論·議法)〉의 “一舉而兩利”.
  • 일거양편(一舉兩便): 청 이여진(李汝珍)의 《경화연(鏡花緣)》 제42회.

한국 문헌의 용례

편집 원본 편집

《조선왕조실록》에는 원문 기준으로 ‘一擧兩得’이 15건 보인다.[8] 이른 예로 중종 38년(1543) 사간원은 평안·함경도 변방을 채우는 사민(徙民) 정책을 두고, 무고한 백성을 억지로 옮기지 말고 부모를 죽이는 등 윤리를 해친 죄인부터 먼저 보내면 “악을 징계하고 변방을 채우니 일거양득(懲惡實邊,一擧兩得)”이라고 아뢰었다.[9] 속석이 백성을 옮겨 변경을 채우자며 쓴 말이 1,200여 년 뒤 조선에서 다시 사민 정책을 두고 쓰인 셈이다. 김육(金堉)은 한양의 개천 준설을 건의하며 “재해를 구하고 환난을 막으니 일거양득”이라고 했다.[10]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一 일 하나 한 번
擧 거 들다, 행하다 움직임, 행동
兩 양(량) 둘 두 가지
得 득 얻다 이익을 얻음
  • 오래된 서버를 정리하자 운영비도 줄고 공격 표면도 줄어 일거양득이었다.
  • 사내 해커톤으로 보안 취약점도 찾고 신입 개발자 교육도 하니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었다.
  • 출근길에 영어 방송을 들으면 지루함도 덜고 공부도 되니 일거양득이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일석이조(一石二鳥):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음. 근대에 영어 속담을 옮긴 말.[2]
  • 일전쌍조(一箭雙鵰):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뜨림. 《성어전》은 일거양득이 두 가지 이익을 얻는 데, 일전쌍조는 두 목표를 이루는 데 무게가 있다고 구분한다.[3]
  • 사반공배(事半功倍): 들인 노력은 적고 얻은 공은 큼.[3]
  • 어부지리(漁父之利): 둘이 다투는 사이에 제삼자가 이익을 봄. 《전국책》의 관여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남의 싸움을 이용해 이득을 본다는 발상이 닮았다.
  • 반대 의미: 일무소득(一無所得), 사배공반(事倍功半), 도로무공(徒勞無功), 고차실피(顧此失彼).[3]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거양득”,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A%B1%B0%EC%96%91%EB%93%9D,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속담을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一石二鳥”,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0%E7%9F%B3%E4%BA%8C%E9%B3%A5, 확인날짜=2026-09-27.
  3. ↑ 3.0 3.1 3.2 3.3 3.4 3.5 3.6 3.7 3.8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一舉兩得”,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423,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一挙両得”,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0%E6%8C%99%E4%B8%A1%E5%BE%97, 확인날짜=2026-09-27.
  5. ↑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2〉.
  6. ↑ 사마천, 《사기》 권70 〈장의열전(張儀列傳)〉.
  7. ↑ 7.0 7.1 방현령 등, 《진서(晉書)》 권51 〈속석전(束晳傳)〉.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一擧兩得”, https://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 확인날짜=2026-09-27.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00권, 중종 38년 1월 2일 정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3801002_002, 확인날짜=2026-09-27.
  10. ↑ 김육, 〈성중구거수치계(城中溝渠修治啓)〉, 《잠곡유고(潛谷遺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