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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골난망(刻骨難忘)은 남에게 입은 은혜가 뼈에 새길 만큼 커서 잊히지 않는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1]

큰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고마움을 나타낼 때 “이 은혜는 각골난망입니다”처럼 쓴다. 뜻이 가까운 말로 죽어서 백골이 되어도 잊지 않겠다는 백골난망(白骨難忘), 죽어서도 은혜를 갚는다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이 있다. 오늘날에는 거의 은혜에 대해서만 쓰지만, 옛 문헌에서는 원한을 뼈에 새긴다는 뜻으로 쓴 예도 있다(아래 ‘한국 문헌의 용례’).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뼈에 새긴다(刻骨)’는 비유에 ‘잊기 어렵다(難忘)’를 붙인 말이다. 인터넷 등에는 각골난망이 《춘추좌씨전》의 결초보은 고사에서 나왔다고 소개하는 글이 보이지만,[2] 《좌전》 선공(宣公) 15년의 해당 대목에는 ‘刻骨’도 ‘難忘’도 나오지 않는다.[3] 두 말은 뜻이 통해 함께 소개될 뿐이다.

‘뼈에 새긴다’는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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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나 가르침을 뼈와 마음에 새긴다는 표현은 중국 고전에 일찍부터 보인다. 당나라 이백(李白)은 〈상안주이장사서(上安州李長史書)〉에서 자신의 무례를 너그러이 용서해 준 데 대해 “마음과 뼈에 새겨 물러나 제 허물을 생각한다(銘刻心骨,退思狂愆)”고 했고,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은 이 구절을 ‘각골명심(刻骨銘心)’의 말뿌리로 든다.[4]

‘刻骨難忘’ 네 글자는 남송 때 엮은 문장 선집 《오백가파방대전문수(五百家播芳大全文粹)》 권39에 실린 송나라 사람의 사은(謝恩) 글에 “은혜를 입고도 갚지 못하니 뼈에 새겨 잊기 어렵다(銜恩莫報,刻骨難忘)”라고 보인다.[5] 명청 시대에는 희곡 《수유기(繡襦記)》, 소설 《시공안(施公案)》 등에서 도움을 받은 인물이 “刻骨難忘”이라며 감사하는 장면이 흔하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는 ‘刻骨難忘’이 표제어로 없고, 같은 뜻의 말로 ‘각골명심(刻骨銘心)’과 ‘몰치난망(沒齒難忘)’을 싣는다.[4][6]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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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刻骨難忘’이 명종·선조·광해군 대에 한 번씩 나온다(광해군일기는 중초본과 정초본에 중복 수록, 2026-09-27 검색 기준).

  • 명종 1년(1546) 문정왕후(文定王后)는 을사사화 뒤 위사공신(衛社功臣)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중종의 옷을 내리며 “종사가 위태로울 때 경들이 나라를 위해 몸을 잊고 간적을 없애 종사를 다시 편안하게 했으니 …… 경들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뼈에 새겨 잊기 어렵다(予嘉卿忠誠,刻骨難忘)”고 했다. 사관은 이 기사에 “바른 사람을 간사하다 하고 간사한 사람을 충성스럽다 하니 당시의 일을 알 만하다”는 논평을 달았다.[7]
  • 선조 30년(1597) 주문사 정기원(鄭期遠)의 서장에 따르면, 조선 사신들은 정유재란을 맞아 다시 조선에 오게 된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에게 “노야의 공은 뼈에 새겨 잊기 어려워 평양에 노야의 생사당까지 세웠다(老爺之功,刻骨難忘,至設老爺生祠於平壤矣)”고 말했다.[8]
  • 광해군 12년(1620) 형조 판서 한찬남(韓纘男)은 자신을 공격한 전라 감사 유색(柳穡)을 두고 “그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뼈에 새겨 잊지 못할 원한을 품는가(何與焉而有刻骨難忘之怨乎)”라고 했다. 은혜가 아니라 원한에 쓴 예이다.[9]

문집에서는 제문에 자주 보인다. 송준길(宋浚吉)은 스승이자 장인인 정경세(鄭經世)의 제문에서, 스승이 병중에 뒷일과 남긴 글, 어린 손자의 교육을 부탁하던 당부를 “간곡히 남기신 당부가 뼈에 새겨져 잊히지 않는다(丁寧囑遺。刻骨難忘)”고 적었다.[10]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刻 각 새기다 새기다
骨 골 뼈 뼈(마음 깊은 곳)
難 난 어렵다 ~하기 어렵다
忘 망 잊다 잊다
  • 서비스가 전부 멈췄던 새벽에 달려와 복구를 도와준 협력사 엔지니어들의 수고는 각골난망입니다.
  • 어려울 때 학비를 대 주신 은사님의 은혜는 각골난망이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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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골난망(白骨難忘): 죽어서 백골이 되어도 잊을 수 없음.
  • 결초보은(結草報恩): 죽은 뒤에라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
  • 각골명심(刻骨銘心): 뼈에 새기고 마음에 새김. 마음속 깊이 새겨 잊지 않음.[11]
  • 명심불망(銘心不忘): 마음에 새겨 오래 잊지 않음.
  • 난망지은(難忘之恩): 잊을 수 없는 은혜.
  • 반대 의미: 배은망덕(背恩忘德):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함.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각골난망”,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0%81%EA%B3%A8%EB%82%9C%EB%A7%9D, 확인날짜=2026-09-27.
  2. ↑ 참고: “각골난망 뜻과 유래, 그리고 유사표현과 반대말”, 솔리미 블로그, https://blog.solleemi.com/%EA%B0%81%EA%B3%A8%EB%82%9C%EB%A7%9D-%EB%9C%BB%EA%B3%BC-%EC%9C%A0%EB%9E%98-%EA%B7%B8%EB%A6%AC%EA%B3%A0-%EC%9C%A0%EC%82%AC%ED%91%9C%ED%98%84%EA%B3%BC-%EB%B0%98%EB%8C%80%EB%A7%90/, 확인날짜=2026-09-27.
  3.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15년.
  4. ↑ 4.0 4.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刻骨銘心”,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41, 확인날짜=2026-09-27.
  5. ↑ 위제현(魏齊賢)·섭분(葉棻) 편, 《오백가파방대전문수(五百家播芳大全文粹)》 권39.
  6.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沒齒難忘”,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780, 확인날짜=2026-09-27.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3권, 명종 1년 2월 28일 을묘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ma_10102028_002, 확인날짜=2026-09-27.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86권, 선조 30년 3월 25일 을묘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003025_005, 확인날짜=2026-09-27.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중초본] 54권, 광해 12년 11월 23일 병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oa_11211023_001, 확인날짜=2026-09-27.
  10.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송준길, 《동춘당집(同春堂集)》 〈제우복정선생문(祭愚伏鄭先生文)〉,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66A_0170_010_0020, 확인날짜=2026-09-27.
  1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각골명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0%81%EA%B3%A8%EB%AA%85%EC%8B%AC,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