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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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난망(白骨難忘)은 죽어서 백골이 되어도 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남에게 큰 은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을 나타내는 한자성어이다.[1]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한문 전적 전문 검색에서 ‘白骨難忘’은 조선 문헌에서만 확인되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에도 올라 있지 않다. 한국에서 만들어 쓴 말로 보인다. 중국어에서는 같은 뜻으로 ‘몰치난망(沒齒難忘)’, ‘결초함환(結草銜環)’ 등을 쓴다.[2]
이른 예로 정구(鄭逑)가 광해군 9년(1617, 정사년)에 올리려고 지은 상소 초고가 있다. 나라에 전에 없던 큰 변고가 생겼다며 쓴 이 글에서 정구는 “신이 목숨을 보전한 것은 털끝 하나도 임금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하면서 “하물며 신은 아침저녁으로 땅에 들어갈 몸으로서 백골이 되어도 잊기 어려운 은혜를 입었으니(况臣以朝夕入地之身。負白骨難忘之恩)” 죽음을 앞둔 사람의 바른말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3]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승정원일기》 인조 20년(1642) 12월 18일 접대소 낭청(接待所郎廳)이 아뢴 내용에는 흥미로운 예가 있다. 병자호란 때인 정축년(1637)에 청나라 사람 박씨(博氏)에게 사로잡혔다 풀려난 도감 외랑 지종영(池宗瀛)이, 풀려날 때 그 은혜에 감사한다며 써 준 증서가 문제가 되었다. 증서에는 “노야가 제 목숨을 구해 주셨으니 그 은혜는 백골이 되어도 잊기 어렵습니다(其恩白骨難忘)”라며, 뒷날 칙사가 올 때 집을 팔아서라도 은 50냥을 바치겠고 은혜를 잊고 바치지 않으면 하늘의 벌을 받겠다고 적혀 있었다. 박씨는 뒤에 칙사 일행으로 조선에 와서 주머니에서 이 증서를 꺼내 보였다.[4]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白 | 백 | 희다 | 희다 |
| 骨 | 골 | 뼈 | 뼈. ‘백골’은 죽은 뒤 남은 뼈 |
| 難 | 난 | 어렵다 | ~하기 어렵다 |
| 忘 | 망 | 잊다 | 잊다 |
- 폐업 직전에 투자를 결정해 주신 대표님의 은혜는 백골난망입니다.
- 밤을 새워 우리 팀의 유출 사고 대응을 도와준 보안 업체에 백골난망의 마음으로 감사 편지를 보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백골난망”,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B1%EA%B3%A8%EB%82%9C%EB%A7%9D, 확인날짜=2026-09-27.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沒齒難忘”,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780,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정구, 《한강집(寒岡集)》 〈정사의상소(丁巳擬上疏)〉,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27A_0030_010_0080, 확인날짜=2026-09-27.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인조 20년 12월 18일.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난망지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2%9C%EB%A7%9D%EC%A7%80%EC%9D%8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