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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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개탁(擧世皆濁)은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뜻으로, 지위가 높든 낮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바르지 않음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전국 시대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었다고 전하는 〈어부사(漁父辭)〉에서 굴원이 “온 세상이 다 흐린데 나 홀로 맑다(擧世皆濁我獨淸)”고 한 말에서 앞 네 글자를 딴 것이다. 세상 전체가 부패하거나 혼탁해서 바른 사람이 설 자리가 없는 상황, 또는 그런 세태 속에서도 홀로 지조를 지키려는 사람의 처지를 말할 때 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2] 2012년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고르면서 널리 알려졌다.[1]
‘擧’는 ‘들 거’로, 여기서는 ‘온, 모든’의 뜻이다. 중국 판본에서는 같은 뜻의 이체자 ‘舉’로 적는 경우가 많다.
〈어부사〉는 《초사(楚辭)》에 실린 글로, 쫓겨난 굴원이 강가를 거닐다가 어부를 만나 문답하는 내용이다. 후한의 왕일(王逸)은 《초사장구》에서 굴원이 지은 글이라고 보았고, 송나라 주석에는 실제 문답이 아니라 문답을 빌려 뜻을 붙인 글이라는 견해도 함께 실려 있다.[3]
屈原既放,游於江潭,行吟澤畔,顏色憔悴,形容枯槁。漁父見而問之曰:「子非三閭大夫與?何故至於斯?」屈原曰:「舉世皆濁我獨清,衆人皆醉我獨醒,是以見放。」
“굴원이 쫓겨나 강가에서 노닐며 못가를 거닐며 읊조리니, 낯빛은 초췌하고 몸은 바짝 말라 있었다. 어부가 보고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셨소?’ 굴원이 말했다. ‘온 세상이 다 흐린데 나 홀로 맑고, 뭇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쫓겨났다오.’”[3]
어부는 이에 “세상 사람이 다 흐리다면 어찌 그 진흙을 휘저어 물결을 일으키지 않고(世人皆濁,何不淈其泥而揚其波)”라며 세상과 어울려 살라고 권하지만, 굴원은 깨끗한 몸에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없다며 거절한다. 어부는 웃으며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清兮,可以濯吾纓;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라고 노래하며 떠난다.[3] 그래서 거세개탁은 중인개취(衆人皆醉), 독야청청과 함께 혼탁한 세상에서 홀로 지조를 지키는 사람의 고독을 나타내는 말로 쓰여 왔다.
같은 문답은 사마천의 《사기》 〈굴원·가생 열전〉에도 실려 있는데, 이쪽은 “擧世混濁而我獨清”으로 ‘皆濁’이 아니라 ‘混濁’이다.[4] 송나라 홍흥조의 《초사보주》도 “《사기》에는 ‘擧世混濁而我獨清’으로 되어 있다”고 주를 달았다.[3]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사기》의 글자를 따라 ‘擧世混濁’을 표제어로 싣고 “세상이 어지러워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음”으로 풀이한다.[5] 거세개탁의 네 글자는 《사기》가 아니라 《초사》 〈어부사〉의 글자이다. 사자성어 목록류에서 출전을 《사기》 굴원열전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사기》 원문에는 ‘擧世混濁’으로 되어 있다.
조선 문인들도 이 구절을 자주 인용했다.
- 허균(許筠)은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서 “온 세상이 다 흐린데 그대 한 사람이 어찌 맑게 할 수 있겠는가(擧世皆濁。君一人安能揚之)”라며 세상과 맞서지 말라고 타일렀다.[6] 〈어부사〉에서 어부가 굴원에게 한 충고를 그대로 뒤집어 쓴 셈이다.
- 1686년(숙종 12) 경연에서는 《주역》 예괘(豫卦)를 강론하며 “옛사람이 말한 ‘온 세상이 다 흐린데 나 홀로 맑다’는 것(古人所謂擧世皆濁而唯我獨淸)”을 홀로 지조를 지키는 군자의 예로 들었다.[7]
- 영조는 1734년 신하 오원(吳瑗)을 두고 “‘온 세상이 다 흐린데 나 홀로 맑다’는 것을 내가 본래 오원에게 바랐다(擧世皆濁我獨淸,予本望之瑗矣)”고 말했다.[8]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擧世皆濁’이 보이지 않고, 짝을 이루는 ‘擧世皆醉’가 정조의 말로 한 번 나온다(1792).[9]
- 업계 전체가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는 거세개탁의 상황에서 홀로 원칙을 지키는 기업은 손해를 보기 쉽다.
- 부정부패가 만연한 거세개탁의 시대에도 끝까지 청렴을 지킨 관리들이 있었다.
- 거세개탁을 핑계로 자신의 잘못까지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 ↑ 1.0 1.1 1.2 정성민,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거세개탁’”, 대학저널, 2012-12-24, https://dhnews.co.kr/news/view/179511884198223, 확인날짜=2026-10-11.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우리말샘 검색, “거세개탁”,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1%B0%EC%84%B8%EA%B0%9C%ED%83%81 ·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A%B1%B0%EC%84%B8%EA%B0%9C%ED%83%81, 확인날짜=2026-10-11.
- ↑ 3.0 3.1 3.2 3.3 왕일(王逸) 장구, 홍흥조(洪興祖) 보주, 《초사보주(楚辭補註)》 권7 〈어부장구(漁父章句)〉.
- ↑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권84 〈굴원·가생 열전(屈原賈生列傳)〉.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舉世混濁”,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3711, 확인날짜=2026-10-11.
- ↑ 허균(許筠), 〈답장질서(答長姪書)〉,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92A_0110_010_0050, 확인날짜=2026-10-11.
- ↑ 승정원일기, 숙종 12년 9월 26일 정미 17번째 기사, https://sjw.history.go.kr/id/SJW-D12090260-01700, 확인날짜=2026-10-11.
- ↑ 승정원일기, 영조 10년 2월 4일 경술 26번째 기사, https://sjw.history.go.kr/id/SJW-F10020040-02600, 확인날짜=2026-10-1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34권, 정조 16년 2월 30일 기사(己巳)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1602030_001, 확인날짜=2026-10-11.
- ↑ 정기홍, “[씨줄날줄] 擧世皆濁”, 서울신문, 2012-12-24, https://seoul.co.kr/news/editOpinion/2012/12/24/20121224031003, 확인날짜=2026-10-11.
- ↑ 양만리(楊萬里), 〈매화부(梅花賦)〉, 《성재집(誠齋集)》 권44.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眾醉獨醒”,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3171,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