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은 지금과 옛날의 차이가 너무 심하여 생기는 느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지금(今)과 옛날(昔)을 견주어 드는 느낌(感)’이라는 글자 뜻 그대로 굳은 말이다.

오래전에 가 보았던 곳을 다시 찾았을 때,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세상이 크게 달라진 것을 실감할 때처럼 지금의 모습을 예전과 견주며 감회에 젖는 마음을 가리킨다.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다”, “금석지감이 든다”처럼 쓴다. 뜻이 비슷한 격세지감(隔世之感)은 짧은 동안에 딴 세상처럼 몰라보게 바뀌었다는 ‘변화의 크기’에 무게가 있고,[2] 금석지감은 지난날을 돌아보는 ‘감회’에 무게가 있다. 한자 金石(쇠와 돌)과 소리가 같아 금석지교(金石之交)와 혼동하기 쉬우나, 금석지감의 금석은 ‘今昔’이다.

중국어에서도 ‘今昔之感(jīn xī zhī gǎn)’이라고 하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눈앞의 현재 모습에서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으로, 주로 세상일에 대한 감개를 나타낸다”고 풀이한다.[3] 일본어에서는 ‘今昔の感(こんじゃくのかん)’이라 하고, “今昔の感に堪えない(금석지감을 이기지 못하다)”처럼 쓴다.[4]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今 금 이제, 지금 지금
昔 석 옛, 예전 옛날
之 지 가다, ~의 ~의
感 감 느끼다 느낌, 감회

특정 고사가 딸린 말은 아니다. 《성어전》은 용례로 청나라 소설 《기로등(歧路燈)》 제14회의 “오늘 벽초헌에서 술을 마시니 옛 벗들이 모두 있는데 담효로(譚孝老)만 이미 고인이 되었으니, 금석지감에 처량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今日碧草軒飲酒,諸舊好俱在,譚孝老已作古人,今昔之感,淒愴莫狀)”를 든다.[3] 그보다 앞서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사인(詞人) 소형정(邵亨貞)의 사집 《의술사선(蟻術詞選)》에는, 조유문(曹幼文)이 삼십여 년 전 세 노인이 등불 밤에 지은 옛 원고를 보여 주며 화답을 청하자 “손꼽아 보니 삼십여 년, 세 노인은 신선이 되어 떠난 지 오래라 금석지감이 든다”고 적은 사의 머리말이 있다.[5]

일본어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첫 용례로 미야자키 고쇼시(宮崎湖処子)의 소설 《귀성(帰省)》(1890)의 “돌아갈 생각이 한번 정해지자 저절로 금석지감에 잠겼다(帰思一たび定まれば、坐ろに今昔の感に沈みぬ)”를 들고,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두 사람의 아내(二人女房)》(1891~1892)에서는 ‘今昔(こんせき)の感’으로 읽은 예를 든다.[4]

한국 문헌의 용례

편집 원본 편집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 今昔之感은 21건 검색되며,[6] 조선 중기 이후 서문·묘지명·편지에 주로 쓰였다. 정경세(鄭經世)는 〈유월봉시집서(柳月蓬詩集序)〉에서 “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굽어보고 우러러보며 드는 금석지감을 잊을 수 없어(顧其俛仰今昔之感,有不能忘于懷者)” 서문을 쓴다고 했고,[7] 송준길(宋浚吉)도 한 묘지명에서 “그 사람이 아니지만 부앙금석(俯仰今昔)의 느낌에 사양할 수 없어” 글을 짓는다고 썼다.[8] 이덕수(李德壽)의 묘지명에는 “옛 집을 지날 때마다 부앙금석의 느낌을 이기지 못한다(每過公大灘舊居,輒不勝俯仰今昔之感)”는 구절이 있다.[9] 이처럼 조선 문인들은 이 말을 흔히 ‘부앙(俯仰·俛仰)’과 함께 ‘俯仰今昔之感’의 꼴로 썼다.[6]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보이지 않는다.[10]

  • 20년 전 전산실에서 테이프로 백업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클라우드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지금은 금석지감이 든다.
  • 졸업 30년 만에 모교를 찾으니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었다.
  • 흑백 사진 속 고향 마을과 지금의 신도시를 나란히 놓고 보니 금석지감이 절로 인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격세지감(隔世之感): 오래지 않은 동안에 몰라보게 변하여 아주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
  • 천지개벽(天地開闢): 세상이 뒤바뀔 만한 큰 변화.
  • 혼동 주의: 금석지교(金石之交): 쇠나 돌처럼 굳고 변함없는 사귐. 소리가 같지만 한자와 뜻이 다르다.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금석지감”,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8%88%EC%84%9D%EC%A7%80%EA%B0%90, 확인날짜=2026-09-28.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격세지감”,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2%A9%EC%84%B8%EC%A7%80%EA%B0%90, 확인날짜=2026-09-28.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今昔之感”,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348, 확인날짜=2026-09-28.
  4. ↑ 4.0 4.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 “今昔の感”,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B%8A%E6%98%94%E3%81%AE%E6%84%9F, 확인날짜=2026-09-28.
  5. ↑ 소형정(邵亨貞), 《의술사선(蟻術詞選)》, 〈전조(前調)〉 머리말.
  6. ↑ 6.0 6.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고전원문 검색 “今昔之感”,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8.
  7. ↑ 정경세(鄭經世), 〈유월봉시집서(柳月蓬詩集序)〉, 《우복별집(愚伏別集)》 권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79A_0210_080_0010, 확인날짜=2026-09-28.
  8. ↑ 송준길(宋浚吉), 〈금성현령남공묘지명(金城縣令南公墓誌銘)〉, 《동춘당집(同春堂集)》 권18,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66A_0180_020_0030, 확인날짜=2026-09-28.
  9. ↑ 이덕수(李德壽), 〈외구통덕랑강공묘지명(外舅通德郞姜公墓誌銘)〉, 《서당사재(西堂私載)》 권10,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71A_0100_010_0030, 확인날짜=2026-09-28.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今昔之感”,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