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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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개벽(天地開闢)은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열려 세상이 시작됨을 뜻하는 한자성어로, 자연이나 사회에 큰 변혁이 일어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1] 원래 하나의 혼돈이었던 하늘과 땅이 나뉘면서 세상이 생겼다는 중국 고대의 우주관에서 나온 말이다.[2]
본래는 세상의 맨 처음을 가리키는 말이어서 “천지개벽 이래 처음 있는 일”처럼 아주 오래된 시간의 기준으로 쓴다. 한국어에서는 여기서 나아가 “천지개벽할 일”, “천지개벽을 했다”처럼 세상이 뒤집힐 만큼 큰 변화를 가리키는 뜻으로 많이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두 번째 뜻을 따로 올리고, 동사 ‘천지개벽하다’도 두 뜻으로 싣는다.[1] 같은 말로 ‘천개지벽(天開地闢)’, ‘천지부판’이 있다.[2][3]
일본어에서도 ‘天地開闢(てんちかいびゃく)’이라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세계의 처음, 천지가 열리기 시작함”으로 풀이한다.[4] 현대 중국어에서는 순서가 다른 ‘開天闢地(kāi tiān pì dì)’가 성어로 더 흔하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開天闢地를 표제어로 올려 “천지가 처음 열림. 신화에서 천지는 반고(盤古)가 갈랐다고 한다”와 “전에 없던 일”의 두 뜻으로 풀이한다.[5]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혼돈이 갈라져 하늘과 땅이 생겼다는 중국 고대의 우주관을 담은 말이다.[2] 후한의 왕부(王符)가 지은 《잠부론(潛夫論)》 〈복렬(卜列)〉은 “천지가 열리자 신과 백성이 있었다(天地開闢有神民)”로 시작한다. 판본에 따라 ‘開辟’으로도 적는다.[6]
널리 알려진 것은 삼국시대 오나라 서정(徐整)의 《삼오역기(三五曆紀)》에 나오는 반고 신화이다. 이 책은 전하지 않고, 당나라 때 엮은 유서 《예문유취(藝文類聚)》 권1 등에 인용된 글이 남아 있다.
天地混沌如雞子,盤古生其中。萬八千歲,天地開闢,陽清為天,陰濁為地。盤古在其中,一日九變,神於天,聖於地。天日高一丈,地日厚一丈,盤古日長一丈。如此萬八千歲,天數極高,地數極深,盤古極長。
“천지가 달걀처럼 뒤섞여 있었는데 반고가 그 안에서 태어났다. 1만 8천 년이 지나 천지가 열리니, 맑고 가벼운 양의 기운은 하늘이 되고 탁하고 무거운 음의 기운은 땅이 되었다. 반고는 그 사이에서 하루에 아홉 번 변하여 하늘에서는 신령스럽고 땅에서는 성스러웠다. 하늘은 날마다 한 길씩 높아지고 땅은 날마다 한 길씩 두터워졌으며, 반고도 날마다 한 길씩 자랐다. 이렇게 1만 8천 년이 지나자 하늘은 끝없이 높아지고 땅은 끝없이 깊어졌으며 반고도 끝없이 커졌다.”
송나라 고승(高承)의 《사물기원(事物紀原)》 권1에도 천지개벽 항목이 있어 같은 이야기를 싣고 있다.[8]
일본에서는 712년 오노 야스마로(太安萬侶)가 쓴 《고사기(古事記)》 서문에 이미 “대체로 기록한 것은 천지개벽에서 시작하여 오하리다(小治田) 조정에 이른다(大抵所記者,自天地開闢始,以訖于小治田御世)”는 한문 구절이 있다.[9]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日本書紀)》도 “옛날 천지가 나뉘지 않고 음양이 갈라지지 않아 달걀처럼 뒤섞여 있었다(古天地未剖,陰陽不分,渾沌如雞子)”로 시작하는데, 《삼오역기》의 “天地混沌如雞子”와 같은 비유이다.[10]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1185년의 신도(神道) 문헌 《천조좌이세이소황태신궁어진좌차제기(天照座伊勢二所皇太神宮御鎮座次第記)》를 들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두자춘(杜子春)〉(1920)에도 “천지개벽 옛날부터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는 대사가 나온다.[4]
고려 말 이곡(李穀)은 원나라 대도(大都)의 곡적산(穀積山)에 새로 지은 나한 석실의 기문에서 “천지가 열린 지 몇천만 년 만에 석가가 태어났고, 석가가 죽은 지 지금 또 수천 년이 지났으나 세계는 그대로이다(夫自天地開闢,幾千萬年而釋氏生,釋氏沒今且數千年,而世界自若也)”라고 썼다.[13]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天地開闢이 4건 보이며, 모두 ‘천지개벽 이래 없던 일’이라는 강조의 뜻이다.[14] 1598년(선조 31) 선조는 명나라 주사(主事) 정응태(丁應泰)가 “천지개벽 이래로 중국이 조선을 위해 오늘처럼 구원해 준 적은 없었다”고 올린 상소를 두고 “이 말이 더욱 헤아릴 수 없다”고 했고,[15] 1894년(고종 31) 대사령 교문은 김옥균(金玉均)을 “천지개벽 이후에 아마 없었을” 역적이라 했다.[16]
- 스마트폰이 나온 뒤 사람들의 생활은 천지개벽이라 할 만큼 달라졌다.
- 데이터센터를 모두 클라우드로 옮기면서 운영 방식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었다.
- 그런 일은 천지개벽 이래 처음 듣는다.
- 1438년(세종 20) 우의정 허조(許稠)는 대마도주가 송환을 청한 왜인들을 돌려보내자고 주장하면서, 일본은 군신 상하가 없다는 의견을 반박해 “일본 황제는 천지가 개벽한 이래로 혁명한 적이 없다(日本皇帝,自天地開闢以來,未有革命之時)”고 말했다.[17]
- 김정국(金正國)의 《사재척언(思齋摭言)》에는 두꺼비·토끼·여우가 떡 하나를 두고 다툰 우화가 실려 있다. 나이 많은 이가 먼저 먹자고 하자 토끼는 “천지가 열릴 때 태어났다”, 여우는 “천지가 열리기 전에 태어났다”고 했다. 두꺼비가 울면서 “맏아들은 천지가 열리기 전에 죽고 둘째는 개벽할 때 죽었는데, 두 분은 아직 살아 계시니 내 아이들은 어찌 그리 일찍 죽었는가” 하자, 토끼와 여우가 떡을 바치고 물러나 사죄했다고 한다.[18]
- ↑ 1.0 1.1 1.2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천지개벽”,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C%B2%9C%EC%A7%80%EA%B0%9C%EB%B2%BD, 확인날짜=2026-09-28.
- ↑ 2.0 2.1 2.2 2.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천지개벽”,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2%9C%EC%A7%80%EA%B0%9C%EB%B2%BD, 확인날짜=2026-09-28.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천개지벽”,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2%9C%EA%B0%9C%EC%A7%80%EB%B2%BD, 확인날짜=2026-09-28.
- ↑ 4.0 4.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天地開闢”,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A4%A9%E5%9C%B0%E9%96%8B%E9%97%A2, 확인날짜=2026-09-28.
- ↑ 5.0 5.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開天闢地”,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058, 확인날짜=2026-09-28.
- ↑ 왕부(王符), 《잠부론(潛夫論)》 권6 〈복렬(卜列)〉.
- ↑ 구양순(歐陽詢) 등 편, 《예문유취(藝文類聚)》 권1 〈천부(天部) 상〉, 서정(徐整) 《삼오역기(三五曆紀)》 인용.
- ↑ 고승(高承), 《사물기원(事物紀原)》 권1.
- ↑ 오노 야스마로(太安萬侶), 〈고사기서(古事記序)〉, 《고사기(古事記)》.
- ↑ 도네리 친왕(舍人親王) 등 편, 《일본서기(日本書紀)》 권1 〈신대 상(神代上)〉.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후천개벽”,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B%84%EC%B2%9C%EA%B0%9C%EB%B2%BD, 확인날짜=2026-09-28.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개벽”,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0%9C%EB%B2%BD, 확인날짜=2026-09-28.
- ↑ 이곡(李穀), 〈대도곡적산신작나한석실기(大都穀積山新作羅漢石室記)〉, 《가정집(稼亭集)》 권4,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014A_0050_010_0040,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天地開闢”,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01권, 선조 31년 6월 23일 병자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106023_002,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31권, 고종 31년 4월 27일 계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za_13104027_001,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81권, 세종 20년 6월 10일 임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2006010_001, 확인날짜=2026-09-28.
- ↑ 김정국(金正國), 《사재척언(思齋摭言)》, 《사재집(思齋集)》 권4,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17A_0040_010_0010,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