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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지교(金石之交)는 쇠나 돌처럼 굳고 변함없는 사귐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 ‘금석지계(金石之契)’라고도 한다.[1][2]

금석지교는 세월이 흐르거나 형편이 바뀌어도 깨지지 않는 굳은 우정이나 맹약을 가리킨다. 쇠(金)와 돌(石)은 예부터 단단하고 오래가는 것의 대표였다. 벗 사이뿐 아니라 군주와 신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굳은 약속에도 쓰였다. 중국어에서는 ‘金石交’, ‘金石之交’, ‘金石至交’로 쓰고,[3][4] 일본어에서는 ‘金石の交わり(きんせきのまじわり)’라고 한다.

《한서(漢書)》 권34 〈한신전(韓信傳)〉에 나오는 말이다.[5] 초한 전쟁 막바지, 한신(韓信)이 제나라를 평정하고 초나라 장수 용저(龍且)까지 꺾자, 두려워진 항우는 무섭(武涉)을 보내 한신에게 유방을 배반하고 천하를 셋으로 나누자고 설득했다.

今足下雖自以爲與漢王爲金石交,然終爲漢王所禽矣。足下所以得須臾至今者,以項王在。項王即亡,次取足下。

“지금 그대는 스스로 한왕(유방)과 쇠나 돌 같은 사귐을 맺었다고 여기겠지만, 끝내는 한왕에게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그대가 지금까지 잠시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항왕이 있기 때문이니, 항왕이 망하면 다음은 그대 차례다.”

한신은 이를 거절하며 이렇게 답했다. “항왕을 섬길 때 내 벼슬은 낭중에 지나지 않았고, 말을 해도 들어 주지 않았고 계책을 내도 쓰지 않았다. 한왕은 나에게 상장군의 인수를 주고, 자기 옷을 벗어 입혀 주고 자기 음식을 밀어 먹여 주었으며(解衣衣我,推食食我), 내 말을 듣고 계책을 써 주었다. 나를 깊이 믿어 주는 사람을 배반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한신은 유방을 배반하지 않았지만, 항우가 죽은 뒤 유방에게 병권을 빼앗기고 결국 제거되었다. 무섭의 말처럼 ‘금석 같은 사귐’이라 믿었던 관계가 이익이 다하자 무너진 것이다. 이 결말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금석지교라는 말은 이처럼 역설적인 장면에서 처음 나왔지만, 뒤에는 ‘굳은 우정’이라는 좋은 뜻으로 주로 쓰이게 되었다.

  • 삼국 위나라 완적(阮籍)은 〈영회시(詠懷詩)〉에서 “어찌하여 금석 같던 사귐이, 하루아침에 다시 이별의 슬픔이 되었나(如何金石交,一旦更離傷)”라고 읊었다.[3]
  • 송나라 소옹(邵雍)의 〈파수음(把手吟)〉에는 “금석의 사귐은 죽어도 썩지 않으나, 시정의 사귐은 절로 오래가기 어렵다(金石之交,死且不朽。市井之交,自難長久)”는 구절이 있다.[6]
  • 《조선왕조실록》 세종 20년(1438) 기사에서 사헌부는 관리들이 기생을 첩으로 삼는 풍조를 금하자고 청하며, 그 폐단으로 “대대로 향화(香火)의 신의와 금석지교를 닦아 온 사이라도 서로 시기하고 몰래 해치는 일이 생긴다(雖世修香火之信、金石之交,相猜陰中者有之)”고 아뢰었다.[7] 세종은 이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조선 문집에서는 두 사람의 굳은 우정을 기리는 행장·묘지명·제문에 이 말이 자주 쓰였다. 예를 들어 벽진 이씨(碧珍李氏) 가문의 문헌들은 고려 태조가 손수 쓴 글로 시조 이총언(李悤言)과 ‘금석지교’를 약속했다고 적는다.[8] 이 이야기의 근거가 된 《고려사》 〈이총언 열전〉에는 태조가 “손수 쓴 편지를 보내 금석 같은 믿음을 보이며 ‘자손에 이르기까지 이 마음은 변치 않겠다’고 했다(且致手札,示以金石之信曰:至于子孫,此心不改)”고 적혀 있다.[9] 원래 기록의 표현은 ‘금석지신(金石之信)’이고, 후대 문헌이 이를 ‘금석지교’로 옮겨 적은 것이다.
  • 일본: 《일본국어대사전》은 무로마치 시대 중기의 《문명본 절용집(文明本節用集)》에 ‘金石の交わり’가 실려 있다고 적는다.[10]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金 금 쇠, 금 쇠붙이처럼 단단함
石 석 돌 돌처럼 변치 않음
之 지 ~의 앞말이 뒷말을 꾸미게 함
交 교 사귀다 사귐, 교분
  • 두 창업자는 회사가 여러 번 위기를 겪는 동안에도 금석지교를 지켜 왔다.
  •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20년째 함께 관리해 온 두 메인테이너의 관계는 금석지교라 할 만하다.
  • 어려울 때 곁을 지킨 친구와는 금석지교를 맺게 된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금석지계(金石之契): 같은 뜻의 말.
  • 금란지교(金蘭之交): 쇠를 끊을 만큼 굳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
  • 단금지교(斷金之交): 쇠라도 자를 만큼 강한 교분.
  •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의 사귐처럼 돈독한 우정.
  • 문경지교(刎頸之交):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사이.
  • 반대 의미: 시도지교(市道之交): 이익만을 위한 사귐.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금석지교”,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8%88%EC%84%9D%EC%A7%80%EA%B5%90, 확인날짜=2026-09-26.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금석지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8%88%EC%84%9D%EC%A7%80%EA%B3%84,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金石交”,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8846, 확인날짜=2026-09-26.
  4.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金石至交”,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2922, 확인날짜=2026-09-26.
  5. ↑ 반고(班固), 《한서》 권34 〈한신전〉.
  6. ↑ 소옹(邵雍),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권17 〈파수음(把手吟)〉.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 11월 23일 계묘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2011023_001, 확인날짜=2026-09-26.
  8. ↑ 권만(權萬), 《강좌집(江左集)》 권9 〈제릉참봉익암이공행장(齊陵參奉益菴李公行狀)〉.
  9. ↑ 《고려사(高麗史)》 권92 〈열전(列傳) 5·이총언(李悤言)〉.
  10.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金石の交わり”,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87%91%E7%9F%B3%E3%81%AE%E4%BA%A4%E3%82%8F%E3%82%8A,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