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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준미주(金樽美酒)는 금 술동이에 담긴 맛있는 술이라는 뜻으로, 《춘향전》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이 지은 시 “금준미주는 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의 첫머리이다. 호화로운 잔치의 술과 음식이 실은 백성에게서 짜낸 피와 기름이라는 뜻으로, 탐관오리의 착취와 사치를 꾸짖는 말로 인용된다.[1]

네 글자만 떼어 쓰면 글자 그대로 ‘좋은 술’을 뜻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언제나 뒤의 “천인혈(千人血)”과 함께 《춘향전》 어사출두 장면의 시를 가리키는 말로 쓴다. 공직자의 부패나 혈세로 치르는 호화 행사를 비판하는 신문 칼럼과 연설에서 자주 인용된다.[2]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는 ‘금준미주’가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다만 앞의 두 글자 ‘금준(金樽)’은 ‘금으로 만든 술통’이라는 뜻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金 금 쇠, 금 금으로 만든, 화려한
樽 준 술통, 술동이 술동이
美 미 아름답다 맛이 좋다
酒 주 술 술

‘樽’은 ‘罇’, ‘尊’으로도 쓴다. 정도전(鄭道傳)의 만시에는 “金尊美酒春長滿”으로 되어 있다.[4]

《춘향전》의 어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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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에서 거지 행색으로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들어간 이몽룡은 운자를 받아 다음 시를 지어 주고 나가며, 이어 어사출두가 벌어진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형태는 다음과 같다.[5]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금 술동이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도다.”

이른 판본: 만화본 〈춘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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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하는 춘향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이른 것으로 알려진 유진한(柳振漢)의 〈가사춘향가이백구(歌詞春香歌二百句)〉, 곧 ‘만화본 춘향가’에도 이 장면이 있다. 1753년 호남을 유람하며 판소리를 듣고 이듬해 지은 이 칠언 한시는 어사가 “한 연의 새 시에 깊은 뜻을 감추었다(一聯新詩藏奧旨)”고 하고 그 시를 이렇게 옮겼다.[6]

千人有淚燭燃蠟 萬姓無膏樽泛蟻

“천 사람의 눈물로 초가 타오르고, 만백성의 기름이 말라 술동이에 거품이 뜬다.” 촛불과 백성의 눈물, 술동이와 만백성의 기름을 잇는 발상이 오늘날의 어사 시와 같다. 18세기 중엽에 이미 이 시가 춘향 이야기의 일부였음을 보여 준다.

이 시는 《춘향전》을 위해 처음 지어진 것이 아니다. 같은 발상과 구절이 《춘향전》보다 앞선 조선과 명나라 문헌에 여러 형태로 나온다.

16세기 조선: “앞사람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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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宋純)이 1560년에 지은 김약묵(金若默, 1500~1558)의 묘갈명에 따르면, 김약묵은 한산군수로 있던 1550~1555년 무렵 “앞사람의 ‘燭淚落時民淚落’ 시(前人燭淚落時民淚落之詩)”를 써서 자리 곁에 붙여 두고, 사신이나 큰 손님을 맞을 때가 아니면 술자리를 벌이지 않았다.[7] 같은 책의 행장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8] 적어도 셋째 구는 16세기 중엽에 이미 ‘전해 오는 시’로 관리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던 셈이다.

1622년 명나라 장수 조도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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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남(趙慶男)의 《속잡록(續雜錄)》은 광해군 14년(1622) 명나라 장수 조도사(趙都司)가 서울에 와서 지은 시라며 다음 구절을 싣고, “광해군 때 정사가 어지럽고 백성이 곤궁함을 가리킨 것”이라고 덧붙였다.[9]

淸香旨酒千人血 細切珍羞萬姓膏
燭淚落時人淚落 歌聲高處怨聲高

“맑은 향 나는 맛있는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잘게 썬 진귀한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농 떨어질 때 사람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도다.”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도 이를 옮겨 실었는데, 셋째 구를 “燭淚落時民淚落”으로 적었다.[10] 18세기 윤기(尹愭)는 관찰사의 사치를 비판하면서 “옛사람이 감사를 기롱한 시(昔人有譏監司之詩)”라며 뒤의 두 구를 인용했다.[1]

명나라의 「학정요(虐政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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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소화집(笑話集)인 《해온편(解慍編)》과 풍몽룡(馮夢龍)이 엮은 것으로 알려진 《광소부(廣笑府)》 권2에는 ‘학정요(虐政謠)’라는 제목으로, 형주(荊州) 수령의 탐학에 백성이 원망하며 지은 노래가 실려 있다.[11]

食祿乘軒着錦袍,豈知民瘼半分毫。滿斟美酒千家血,細切肥羊萬姓膏。燭淚淋漓冤淚滴,歌聲嘹喨怨聲高。羣羊付與豺狼牧,辜負朝廷用爾曹。

“녹을 먹고 수레 타며 비단옷 걸치고서, 백성의 아픔은 털끝만큼도 모르는구나. 가득 따른 좋은 술은 천 집의 피요, 잘게 썬 살진 양고기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농이 뚝뚝 흐르니 원통한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드높으니 원망 소리 높도다. 양 떼를 승냥이와 이리에게 맡겼으니, 너희를 쓴 조정의 뜻을 저버렸구나.”

가운데 네 구가 《속잡록》의 시, 《춘향전》의 시와 짝을 이룬다. 조선에 전한 시가 이 노래를 줄여 다듬은 것인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것인지는 문헌만으로 가리기 어렵다. 다만 1550년대 조선에서 이미 ‘앞사람의 시’로 불렸고 명나라에서는 민요로 전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조선과 명에 두루 퍼진 풍자시였다고 볼 수 있다. 청나라에 들어서도 가경제(嘉慶帝)가 백련교의 난 때 신하들을 꾸짖으며 지었다는 “玉杯飮盡千家血,銀燭燒殘百姓膏”가 《청패류초(淸稗類鈔)》에 전한다.[12]

이몽룡의 모델과 시의 작자를 둘러싼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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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출신의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이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며 이 시도 그가 호남 암행어사로 출두했을 때 지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성이성의 부친 성안의(成安義)가 남원부사를 지냈고 성이성이 호남 암행어사를 지냈다는 사실과 함께, 4대손 성섭(成涉)의 기록이 근거로 거론된다.[13] 그러나 위에서 보듯 이 시의 셋째 구는 성이성이 태어나기 전인 16세기 중엽에 이미 ‘앞사람의 시’로 불렸고, 1622년에는 명나라 장수의 시로 기록되었다. 성이성의 기록은 그가 이미 널리 알려진 풍자시를 읊었다는 정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모델설 자체도 기록에 근거한 추정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 있다.[13]

이백의 〈행로난〉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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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두 구의 짝 ‘金樽美酒 / 玉盤佳肴’는 이백(李白)의 〈행로난(行路難)〉 첫 구 “金樽淸酒斗十千,玉盤珍羞直萬錢(금 술동이의 맑은 술은 한 말에 만 전, 옥쟁반의 진귀한 안주는 만 전어치)”와 짜임새가 같다. 남송 사승조(史繩祖)의 《학재점필(學齋佔畢)》과 조선 신경준(申景濬)의 〈시중필례(詩中筆例)〉는 이백의 이 구절을 “金樽美酒斗十千”으로 인용하고 있어, ‘금준미주’는 이백 시를 통해 익숙한 표현이었다.[14] 고려 말 이색(李穡)의 〈강동가(江東歌)〉, 조선 전기 성현(成俔)의 〈양춘가(陽春歌)〉에도 ‘金樽美酒’가 잔치의 흥을 돋우는 말로 나온다.[15] 본래 화려한 잔치를 그리던 말이 어사 시에서 백성의 피와 맞세워지면서 풍자의 말이 된 것이다.

  • 금준미주는 천인혈이라더니, 적자에 허덕이는 공기업이 임원 연수를 해외 리조트에서 열었다는 소식에 비판이 쏟아졌다.
  • 보안 예산은 깎으면서 기념행사에는 아낌없이 쓰는 것을 보니, 금준미주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 그는 축사 대신 금준미주 시 한 구절을 읊어 참석한 공직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 영화·드라마의 춘향전 각색에서도 이 시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이광수의 소설 《개척자》에도 연극 춘향전의 어사출두 장면에서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인고(萬人膏)라”가 지나가는 대목이 있다.[16]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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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렴주구(苛斂誅求):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재물을 억지로 빼앗음. 어사 시가 꾸짖는 바로 그 행태.
  • 탐관오리(貪官汚吏): 탐욕이 많고 부정을 일삼는 관리. 변학도 같은 인물.
  • 주지육림(酒池肉林): 술로 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룸. 호화로운 술잔치.
  •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1. ↑ 1.0 1.1 윤기(尹愭), 〈가금(家禁)〉, 《무명자집(無名子集)》, 한국고전번역원 역주 [주-D048],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BT_0576A_0120_010_0110, 확인날짜=2026-10-11.
  2. ↑ 참고: 조현건, “제93회 남원 춘향제에 즈음하여”, 전북일보, 2023년 5월 21일, https://www.jjan.kr/article/20230516580222, 확인날짜=2026-10-11.
  3.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금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8%88%EC%A4%80, 확인날짜=2026-10-11.
  4. ↑ 정도전(鄭道傳), 〈만이밀직창로(挽李密直彰路)〉, 《삼봉집(三峯集)》,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BT_0024A_0050_030_0150, 확인날짜=2026-10-11.
  5. ↑ 참고: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 문학의 메카, 전북] ⑨ 춘향전, 최고의 고전소설 비결…한국적 한(恨)의 ‘삭임’ 미학”, 전북일보, 2019년 9월 18일, https://www.jjan.kr/article/20190918689722, 확인날짜=2026-10-11.
  6. ↑ 유진한(柳振漢), 〈가사춘향가이백구(歌詞春香歌二百句)〉, 《만화집(晩華集)》.
  7. ↑ 송순(宋純), 〈유명조선국통훈대부양주목사성재김공묘갈명(有明朝鮮國通訓大夫楊州牧使誠齋金公墓碣銘)〉, 《면앙집(俛仰集)》 권4,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132A_0060_020_0020, 확인날짜=2026-10-11.
  8. ↑ 송순(宋純), 〈양주목사동주진병마절제사성재김공행장(楊州牧使同州鎭兵馬節制使誠齋金公行狀)〉, 《면앙집(俛仰集)》 권4,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132A_0060_030_0010, 확인날짜=2026-10-11.
  9. ↑ 조경남(趙慶男), 《속잡록(續雜錄)》 임술년(1622),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BT_1333A_0020_000_0010, 확인날짜=2026-10-11.
  10. ↑ 이긍익(李肯翊),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광해조 고사본말〉 ‘광해군의 난정(亂政)’,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BT_1300A_0220_010_0130, 확인날짜=2026-10-11.
  11. ↑ 《광소부(廣笑府)》 권2 〈관잠(官箴)〉 ‘학정요(虐政謠)’; 《해온편(解慍編)》 ‘학정요’.
  12. ↑ 서가(徐珂), 《청패류초(淸稗類鈔)》.
  13. ↑ 13.0 13.1 참고: 손원천, “춘향의 남자 흔적 따라가 보니… 그들 사랑은 새드엔딩이었네”, 서울신문, 2019년 10월 4일, https://m.seoul.co.kr/news/2019/10/04/20191004033001, 확인날짜=2026-10-11.
  14. ↑ 사승조(史繩祖), 《학재점필(學齋佔畢)》 권2; 신경준(申景濬), 〈시중필례(詩中筆例)〉, 《여암유고(旅菴遺稿)》,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BT_0536A_0090_010_0030, 확인날짜=2026-10-11.
  15. ↑ 이색(李穡), 〈강동가(江東歌)〉, 《목은집(牧隱集)》; 성현(成俔), 〈양춘가(陽春歌)〉, 《허백당집(虛白堂集)》,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11.
  16. ↑ 이광수, 《개척자》, 1917~1918년 《매일신보》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