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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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지세(騎虎之勢)는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형세라는 뜻으로, 이미 시작한 일을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은 내리는 순간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므로, 두렵더라도 끝까지 타고 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일이 이미 커질 대로 커져서 물러서면 도리어 화를 입게 되므로 끝을 볼 때까지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를 가리킨다. 일본어 사전들도 “虎に乗った者が途中で降りると虎に食われてしまうので降りられない”는 비유로 풀이한다.[2]
같은 한자를 쓰지만 쓰임은 나라마다 조금 다르다. 중국어에서는 ‘기호난하(騎虎難下, 호랑이를 탔으니 내리기 어렵다)’를 주로 쓰고,[3] 일본어에서는 ‘騎虎の勢い(きこのいきおい)’라고 한다.[2] 일본어의 ‘騎虎の勢い’는 “騎虎の勢いで三崎は窓際の高木局長の方に寄っていった(기호지세로 미사키는 창가의 다카기 국장 쪽으로 다가갔다)”처럼 ‘기세가 올라 멈출 수 없음’의 뜻으로도 쓰인다.[2]
이 말의 가장 이른 형태는 동진(東晉) 때 소준(蘇峻)의 난(327~329)을 다룬 기록에 나온다. 반란군이 도성 건강을 점령하자 온교(溫嶠)는 도간(陶侃)을 맹주로 추대해 함께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싸움이 거듭 불리하고 군량이 떨어지자 도간은 성을 내며 자기 근거지인 형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4] 온교는 이렇게 그를 설득했다.
남조 송 하법성(何法盛)의 《진중흥서(晉中興書)》를 인용한 북송 《태평어람(太平御覽)》 권462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5]
天子幽逼,社稷危殆,四海臣子,肝腦塗地,嶠等與公致命之秋。事若克濟,則臣主同休;如其不然,身雖灰滅,足以謝責于先帝。今之事勢,義無旋踵,騎虎之勢,可得下乎。公若違衆獨反,衆心必沮;沮衆以敗事,義旗將回指于公矣。
“천자께서 핍박을 받으시고 사직이 위태로우며, 천하의 신하들이 간과 뇌를 땅에 쏟고 있으니, 저와 공이 목숨을 바칠 때입니다. 일이 이루어지면 임금과 신하가 함께 복을 누리고, 그렇지 않으면 몸이 재가 되더라도 선제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형세는 의리상 발길을 돌릴 수 없으니, 호랑이를 탄 형세에서 내릴 수 있겠습니까? 공께서 무리를 버리고 홀로 돌아가시면 사람들의 마음이 꺾일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꺾어 일을 그르치면 의병의 깃발이 도리어 공을 향할 것입니다.” 도간은 대답하지 못하고 떠나지 않았다.[5]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이 대목을 중국어 ‘騎虎難下’의 전거로 든다.[3] 일본의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도 ‘騎虎の勢い’의 유래로 《태평어람》이 인용한 《진중흥서》의 이 이야기를 든다.[2]
당나라 때 편찬된 《진서(晉書)》 권67 〈온교전(溫嶠傳)〉에도 같은 말이 나오는데, 핵심 구절의 글자가 다르다.[4]
今之事勢,義無旋踵,騎猛獸,安可中下哉!
“지금의 형세는 의리상 발길을 돌릴 수 없으니, 사나운 짐승을 탔는데 어찌 중간에 내릴 수 있겠습니까!” 《진중흥서》의 ‘虎’가 ‘猛獸’로 바뀌어 있다.
일본의 《디지털 대사천》과 《일본국어대사전》이 출전으로 드는 것은 《수서(隋書)》 권36 〈후비열전(后妃列傳)·문헌독고황후(文獻獨孤皇后)〉이다.[2] 북주의 선제(宣帝)가 죽자, 외척이던 수국공 양견(楊堅, 뒤의 수 문제)은 궁중에 들어가 정사를 총괄했다. 이때 그의 부인 독고씨가 사람을 보내 이렇게 일렀다.[6]
大事已然,騎獸之勢,必不得下,勉之!
“큰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짐승을 탄 형세라 결코 내릴 수 없습니다. 힘쓰십시오!” 양견은 이듬해(581) 북주 정제(靜帝)에게서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세웠고, 독고씨를 황후로 세웠다.[6] 《북사(北史)》 권14 〈후비열전〉에도 같은 말이 실려 있는데, 독고씨가 보낸 사람을 이원통(李圓通)이라고 밝혀 적었다.[7]
《수서》 원문은 ‘騎虎之勢’가 아니라 ‘騎獸之勢(짐승을 탄 형세)’이다. 《진서》의 ‘猛獸’, 《수서》와 《북사》의 ‘獸’는 모두 당나라 초에 편찬된 역사서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당 고조 이연(李淵)의 할아버지 이호(李虎)의 이름을 피해 ‘虎’ 자를 바꾸어 쓰는 피휘(避諱) 때문으로 설명된다.[8] 피휘와 무관한 남조 송의 《진중흥서》에는 ‘騎虎之勢’로 남아 있으므로, 네 글자 형태는 《수서》보다 약 200년 앞선 기록에서 이미 확인된다.
- 騎虎難下: 중국어에서 주로 쓰는 형태. 《성어전》은 《명사(明史)》 〈하사진전(何士晉傳)〉의 “騎虎難下”, 청 조익(趙翼)의 《이십이사차기(廿二史劄記)》 등을 용례로 들고, 비슷한 말로 ‘進退兩難’, ‘進退維谷’을, 반대말로 ‘來去自如(오가기를 마음대로 함)’를 든다.[3]
- 勢成騎虎: 형세가 호랑이를 탄 꼴이 되었다는 말. 명나라 도륭(屠隆)의 희곡 《담화기(曇花記)》에 “당초 이익을 탐하여 형세가 호랑이를 탄 꼴이 되어, 그저 앞으로만 나아갔다(當初利比貪狼,勢成騎虎,也只管向前做去了)”라는 대사가 있다.[9]
- 명청 소설에서는 “이것은 기호지세라 내릴 수 없다(此騎虎之勢,不可下矣)”(《동유기(東遊記)》 제55회), “지금 기호지세라 마음대로 할 수 없다(這如今是個騎虎之勢,不得自由了)”(《삼보태감서양기(三寶太監西洋記)》 제66회)처럼 대사로 흔히 쓰였다.
- 태종 18년(1418) 태종은 세자(세종)에게 왕위를 넘기겠다고 밝히면서, 반대하는 대언들에게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이제 그것으로 족하다(十八年騎虎,亦已足矣)”고 했다.[10] 임금 자리를 내릴 수 없는 호랑이 등에 빗댄 것이다. 태종은 선위한 뒤에도 상왕으로서 병권을 쥐고 있었다.
- 중종 17년(1522) 대사헌 김극성(金克成)은 육진의 군졸이 날로 흩어지는 반면 성 주변에 여진인이 수천씩 모여 사는 형편을 두고 “식자들은 이를 기호지세에 견준다(有識者,比之騎虎之勢)”고 아뢰었다.[11]
- 송시열(宋時烈)의 《송자대전(宋子大全)》 수차(隨箚)에는 자기 시에 쓴 ‘騎虎’의 전거로 독고부인이 양견에게 “大事已然,騎虎之勢,必不得……”이라고 한 이야기를 풀이해 두었다. 《수서》 원문의 ‘騎獸’가 아니라 ‘騎虎’로 옮겨 적은 것이 눈에 띈다.[12]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騎 | 기 | 말을 타다 | (호랑이를) 타다 |
| 虎 | 호 | 범, 호랑이 | 호랑이 |
| 之 | 지 | ~의 | 앞말이 뒷말을 꾸미게 함 |
| 勢 | 세 | 형세, 기세 | 형편, 처지 |
- 이미 절반 넘게 마이그레이션한 상태라 되돌리는 비용이 더 커져, 팀은 기호지세로 신규 플랫폼 전환을 밀어붙였다.
-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뒤에는 기호지세가 되어 중간에 사업을 접기 어려웠다.
- 소송이 여기까지 온 이상 기호지세이니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없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기호지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8%B0%ED%98%B8%EC%A7%80%EC%84%B8,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2.2 2.3 2.4 2.5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騎虎の勢い”,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A8%8E%E8%99%8E%E3%81%AE%E5%8B%A2%E3%81%84,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3.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騎虎難下”,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0, 확인날짜=2026-09-27.
- ↑ 4.0 4.1 《진서(晉書)》 권67 〈온교전(溫嶠傳)〉.
- ↑ 5.0 5.1 《태평어람(太平御覽)》 권462 〈인사부(人事部)·유세(游說)〉 인용 하법성(何法盛), 《진중흥서(晉中興書)》.
- ↑ 6.0 6.1 《수서(隋書)》 권36 〈후비열전(后妃列傳)·문헌독고황후(文獻獨孤皇后)〉.
- ↑ 《북사(北史)》 권14 〈후비열전(后妃列傳)·수 문헌황후(隋文獻皇后)〉.
- ↑ 참고: “騎虎の勢い”, 漢文の窓(kanbun.info), https://kanbun.info/koji/kikonoi.html, 확인날짜=2026-09-27.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勢成騎虎”,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546,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36권, 태종 18년 8월 8일 을유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1808008_002,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45권, 중종 17년 7월 18일 임술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1707018_002,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송시열, 《송자대전(宋子大全)》 수차(隨箚) 권1,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67A_2550_010_0040, 확인날짜=2026-09-27.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騎虎之勢”,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852,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