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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부침주(破釜沈舟)는 솥을 깨뜨려 다시 밥을 짓지 않고 배를 가라앉혀 강을 건너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죽을 각오로 싸움에 나서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같은 뜻의 ‘파부침선(破釜沈船)’이 올라 있다.[2] 진나라 말 항우(項羽)가 거록(鉅鹿)의 싸움에 나서며 병사들의 돌아갈 길을 끊은 데서 나온 말이다.

파부침주는 스스로 물러설 길을 끊어 버리고 끝장을 볼 때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나타낸다. 시험, 창업, 재기처럼 퇴로를 버리고 모든 것을 거는 결심을 말할 때 쓴다. 비슷한 말인 배수지진(背水之陣)과 자주 함께 인용된다.

중국어에서는 ‘破釜沉舟(pò fǔ chén zhōu)’라고 적으며, 현대 중국어에서 매우 흔히 쓰는 성어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이 말을 “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혀 스스로 물러설 길을 없앰으로써 전쟁의 승리를 구하는 것”으로 풀고, 뒤에는 퇴로를 끊고서라도 최선의 성과를 얻으려 애쓰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3] ‘沈’과 ‘沉’은 같은 글자로, 한국에서는 흔히 ‘沈’으로 적는다.

항우의 거록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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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史記)》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온다.[4] 진(秦)나라 장수 장한(章邯)이 조(趙)나라를 쳐서 거록을 에워싸자, 초(楚)나라 회왕은 송의(宋義)와 항우를 보내 조나라를 구하게 했다. 송의가 군대를 멈추고 나아가지 않자 항우는 송의를 죽이고 군권을 잡았다. 항우는 먼저 당양군(當陽君)과 포장군(蒲將軍)에게 2만 명을 주어 강을 건너게 했으나 싸움이 신통치 않았고, 조나라 장수 진여(陳餘)가 다시 구원병을 청했다.

項羽乃悉引兵渡河,皆沈船,破釜甑,燒廬舍,持三日糧,以示士卒必死,無一還心。於是至則圍王離,與秦軍遇,九戰,絕其甬道,大破之,殺蘇角,虜王離。

“항우는 이에 군사를 모두 이끌고 강을 건넌 뒤,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사르고 사흘 치 식량만 지니게 하여, 병사들에게 반드시 죽을 각오로 싸울 뿐 한 사람도 돌아갈 마음이 없음을 보였다. 그리하여 이르자마자 왕리(王離)를 에워싸고 진나라 군과 맞서 아홉 번 싸워 그 보급로를 끊고 크게 깨뜨려 소각(蘇角)을 죽이고 왕리를 사로잡았다.”

이 싸움에서 거록을 구하러 온 제후의 군대는 열 개가 넘는 성채를 쌓고도 감히 군사를 내지 못한 채 “모두 성채 위에서 구경만 했고(諸將皆從壁上觀)”, 초나라 병사는 “한 사람이 열 사람을 당해 내지 않는 이가 없었다(無不一以當十)”. 싸움이 끝난 뒤 항우가 제후의 장수들을 불러들이자 그들은 모두 무릎걸음으로 나아가며 감히 올려다보지 못했고, 이로써 항우는 제후의 상장군이 되었다.[4]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한다는 ‘작벽상관(作壁上觀)’과 ‘이일당십(以一當十)’도 같은 대목에서 나온 말이다.

같은 《사기》의 권89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은 이 싸움을 조금 다르게 적는다. 항우가 여러 번 장한의 보급로(甬道)를 끊어 왕리의 군대가 먹을 것이 떨어지자 군사를 모두 이끌고 강을 건너 장한을 깨뜨렸고, 장한이 군대를 물린 뒤에야 “제후의 군대가 감히 거록을 에워싼 진나라 군을 쳐서 마침내 왕리를 사로잡았다(諸侯軍乃敢擊圍鉅鹿秦軍,遂虜王離)”는 것이다. 이 열전도 “끝내 거록을 지켜 낸 것은 초나라의 힘이었다(卒存鉅鹿者,楚力也)”고 덧붙인다.[5]

《사기》 원문은 ‘沈船’, ‘破釜甑’이므로 ‘파부침선’이 원문에 더 가깝고, ‘파부침주’는 뒤에 굳어진 형태이다. 《성어전》은 명나라 이청(李清)의 《삼원필기(三垣筆記)》, 사가법(史可法)의 〈청출사토적소(請出師討賊疏)〉, 《아녀영웅전(兒女英雄傳)》 제30회를 서증으로 들고, ‘침주파부(沈舟破釜)’라는 형태도 소개한다.[3]

더 오래된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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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불사르고 솥을 깨뜨린다는 비유는 항우보다 앞선 《손자병법》 〈구지(九地)〉에도 보인다. 장수가 병사들을 적지 깊숙이 이끌고 들어가서는 “배를 불사르고 솥을 깨뜨려, 양 떼를 몰듯이 몰고 가고 몰고 와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한다(焚舟破釜,若驅羣羊,驅而往,驅而來,莫知所之)”는 것이다. 송나라 장예(張預)는 이 대목 앞의 주석에서 “항우가 강을 건너 배를 가라앉힌 것과 같은 부류”라고 풀었다.[6] 병서 《백전기략(百戰奇略)》 〈사전(死戰)〉도 병사들이 머뭇거릴 때는 “배를 불사르고 솥을 깨뜨려 살려는 생각을 끊어야 반드시 이긴다(焚舟破釜,絕去其生慮,則必勝)”고 하고 “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必死則生)”를 인용한 뒤 항우의 거록 싸움을 예로 든다.[7]

《춘추좌씨전》 문공 3년에는 진(秦)나라 목공이 진(晉)나라를 치면서 “황하를 건넌 뒤 배를 불살랐다(濟河焚舟)”는 기록이 있다.[8] 《성어전》은 이 ‘제하분주(濟河焚舟)’를 파부침주의 가까운 말로 든다.[3]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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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濟河焚舟’, ‘破釜甑 燒廬舍’를 결단의 비유로 즐겨 썼다. 전쟁뿐 아니라 논쟁, 공부, 절제처럼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는 일에 빗댄 것이 눈에 띈다.

  • 이황(李滉)은 사단칠정 논쟁 중 기대승(奇大升)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화의와 싸움을 함께 쓰려는 태도로는 이길 수 없다며 “공을 위해 계책을 내자면 황하를 건너 배를 불사르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태우고, 사흘 식량만 지녀 병사들에게 돌아갈 마음이 없음을 보여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9]
  • 정경세(鄭經世)는 병으로 술을 끊게 된 지인에게 “누룩과 술잔 같은 것은 하나도 집에 두지 말고, 솥과 시루를 깨고 막사를 불태우며 강을 건너 배를 불사르는 용단(如破釜甑燒廬舍濟河焚舟底勇決)을 내라”고 당부했다.[10]
  • 유몽인(柳夢寅)은 과거 공부를 하는 젊은이에게 “배를 불사르는 거사(濟河焚舟之擧)가 있으면 단번에 부끄러움을 씻을 수 있다”고 격려했다.[11]
  • 《선조수정실록》에는 임진왜란 전해인 1591년, 일본에 있던 명나라 사람 허의후(許儀後)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출병 계획을 명나라에 알린 글이 실려 있다. 여기에 히데요시가 “여러 나라의 군사가 조선 해안에 이르면 배를 불사르고 솥을 깨뜨리라(焚舟破釜)”고 명령했다는 대목이 있다.[12]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破 파 깨뜨리다 깨뜨리다
釜 부 가마솥 밥 짓는 솥
沈 침 가라앉다, 잠기다 가라앉히다
舟 주 배 강을 건너온 배
  • 그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파부침주의 각오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 구형 시스템의 데이터 센터 계약을 먼저 해지한 것은 클라우드 전환을 되돌리지 않겠다는 파부침주의 결단이었다.
  •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파부침주하는 심정으로 시험을 준비했다.

배수지진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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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말 모두 돌아갈 길을 스스로 끊는다는 점에서 통한다. 《성어전》은 ‘파부침주’는 돌아서지 않고 끝을 보겠다는 결심에, ‘배수일전(背水一戰)’은 절박한 처지에서 온 힘을 다해 싸운다는 데 무게가 있다고 구분한다.[3] 또한 배수진은 한신이 계략의 일부로 강을 등진 진을 친 것이고, 파부침주는 항우가 자기 군대의 퇴로와 물자를 직접 없애 버린 것이라는 점도 다르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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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부침선(破釜沈船): 같은 뜻. 《사기》 원문에 더 가까운 형태.
  • 배수지진(背水之陣): 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는 뜻으로, 물러설 곳 없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
  • 제하분주(濟河焚舟): 강을 건넌 뒤 배를 불태움.
  • 필사즉생(必死則生):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
  • 건곤일척(乾坤一擲): 운명을 걸고 단판에 승패를 겨룸.
  • 고주일척(孤注一擲), 배성차일(背城借一):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
  • 영어의 ‘burn one's boats’, ‘burn one's bridges’도 퇴로를 스스로 끊는다는 뜻이다.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넌 일에서 나온 ‘cross the Rubicon(루비콘강을 건너다)’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는 뜻으로 쓴다.
  • 반대 의미: 《성어전》은 ‘급류용퇴(急流勇退)’, ‘퇴피삼사(退避三舍)’를 반의어로 든다.[3]
  1.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파부침주”,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D%8C%8C%EB%B6%80%EC%B9%A8%EC%A3%BC, 확인날짜=2026-09-26.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파부침선”,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8C%8C%EB%B6%80%EC%B9%A8%EC%84%A0,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3.2 3.3 3.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破釜沉舟”,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18, 확인날짜=2026-09-26.
  4. ↑ 4.0 4.1 사마천, 《사기》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5. ↑ 사마천, 《사기》 권89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6. ↑ 《십일가주손자(十一家注孫子)》 〈구지(九地)〉.
  7. ↑ 《백전기략(百戰奇略)》 권6 〈사전(死戰)〉.
  8.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3년.
  9.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황, 《퇴계집》 권16 〈답기명언 논사단칠정 제2서(答奇明彦論四端七情第二書)〉,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44A_0160_010_0050, 확인날짜=2026-09-26.
  10.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정경세, 《우복집》 권11 〈답이사확·사회(答李士廓,士會)〉,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79A_0110_010_0390, 확인날짜=2026-09-26.
  11.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유몽인, 《어우집》 권5 〈여정수재 택뢰 서(與鄭秀才澤雷書)〉,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65A_0060_030_0030, 확인날짜=2026-09-26.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25권, 선조 24년 5월 1일 을축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b_12405001_002,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