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분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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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분서주(東奔西走)는 동쪽으로 뛰고 서쪽으로 뛴다는 뜻으로, 사방으로 이리저리 몹시 바쁘게 돌아다님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동서분주(東西奔走)’, ‘동주서분(東走西奔)’, ‘동치서주(東馳西走)’라고도 한다.[1]
‘奔’과 ‘走’는 모두 ‘달리다’라는 뜻이다. 한곳에 머무를 틈도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을 그린 말로, 어떤 일을 이루려고 바쁘게 애쓰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말할 때도, 갈 곳을 몰라 허둥대는 모습을 말할 때도 쓴다.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도 같은 형태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이곳저곳을 뛰어다님,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사방으로 활동함”으로 풀고 ‘동분서포(東奔西跑)’, ‘동포서전(東跑西顛)’을 같은 말로 든다.[2] 일본어로는 ‘とうほんせいそう’라고 읽는다.[3]
나무위키 등에는 이 말이 ‘혼비백산(魂飛魄散)’과 비슷하다고 소개되기도 하지만, 혼비백산은 몹시 놀라 넋을 잃는다는 뜻이어서 바쁘게 돌아다닌다는 동분서주와는 뜻이 다르다.[4]
확인되는 이른 용례 가운데 하나는 952년에 편찬된 선종 사서 《조당집(祖堂集)》에 있다. 권17의 〈통효(通曉)〉 조는 신라 굴산사(崛山寺)를 연 통효대사 범일(梵日)의 전기인데, 당나라에 유학하던 범일이 무종(武宗)의 폐불을 만난 대목에 이 말이 나온다.
欲恣遊方,遠投帝裏。值會昌四年沙汰僧流,毀坼佛宇。東奔西走,竄身無所。感河伯之引道,遇山神之送迎。遂隱高山,獨居禪定。
“마음껏 사방을 돌아보려고 멀리 도성으로 갔다. 마침 회창(會昌) 4년에 승려들을 가려 내쫓고 절을 헐어 버리는 일을 만나, 동으로 뛰고 서로 달렸으나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강의 신이 길을 이끌어 주고 산신이 맞아 보내 주는 덕에 마침내 높은 산에 숨어 홀로 선정에 들었다.” 《조당집》은 범일이 떨어진 과일을 주워 먹고 샘물을 떠 마시며 반년 넘게 숨어 지냈다고 이어 적는다.
북송의 조설지(晁說之)는 시 〈증뇌승(贈雷僧)〉에서 “동으로 뛰고 서로 달리며 어찌 머뭇거리랴(東奔西走肯徘徊)”라고 읊었다.[6] 남송 말의 장첩(蔣捷)은 원나라 군대에 나라가 무너진 뒤 오(吳) 땅에 머물며 지은 사(詞)에서 “그림자만 나를 짝하여 동분서주한다(影厮伴、東奔西走)”고 떠돌이 신세를 노래했다.[7] 《성어전》은 원나라 위초(魏初)의 사 〈심원춘(沁園春)·자췌평생(自揣平生)〉의 “근래 벼슬길을 떠돌며 벗들과 멀어지고, 동분서주하며 물이 보내고 산이 맞아 주었다(年來行役,交情契闊,東奔西走,水送山迎)”와 《서유기》 제35회를 용례로 든다.[2]
- 오건(吳健)은 1570년 전라도 어사 겸 재상경차관으로 올린 계에서, 떠돌다 남은 백성들이 흩어진 사람의 토지세까지 떠맡아 “동분서주하며 부역을 대기에도 겨를이 없다(民等東奔西走。以供徭役之不暇)”고 보고했다.[8]
- 이순신(李舜臣)은 1592년 견내량 싸움의 장계에서, 김해에 머물던 왜군이 밤에 고기잡이 불빛을 보고 전라도 수군이 쳐들어온 줄 알고 크게 놀라 떠들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분서주하다가 한참 뒤에야 진정되었다(罔知所爲。東奔西走。良久乃定)”는 포로의 진술을 전했다.[9]
-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東奔西走’가 4건 있다. 선조 26년(1593) 병조 판서 이항복(李恒福)은 비변사 유사(有司)를 겸하느라 비변사와 병조를 오가며 “동분서주하니 부지런해 보이기는 하나 어느 쪽에도 전념하지 못한다”며 겸직을 풀어 달라고 청했다.[10]
일본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1871년 《신문잡지(新聞雑誌)》 제17호의 “벼슬길이 바빠 동분서주하느라 오래 그 업을 폐했다”를 첫 용례로 든다.[3]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東 | 동 | 동녘 | 동쪽으로 |
| 奔 | 분 | 달리다 | 뛰다 |
| 西 | 서 | 서녘 | 서쪽으로 |
| 走 | 주 | 달리다 | 뛰다 |
- 대규모 장애가 나자 인프라팀은 데이터센터와 관제실을 오가며 밤새 동분서주했다.
- 투자자를 찾아 동분서주한 끝에 겨우 첫 계약을 따냈다.
- 《성어전》은 원나라 문헌을 용례로 들지만, 그보다 수백 년 앞선 《조당집》의 대목은 신라 승려 범일(810~889)이 당나라에서 숨을 곳을 찾아 헤맨 일을 적은 것이다. 범일은 귀국한 뒤 명주(지금의 강릉) 굴산사에 머물며 선종 산문의 하나인 사굴산문(闍崛山門)을 열었다.[11]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동분서주”,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F%99%EB%B6%84%EC%84%9C%EC%A3%BC, 확인날짜=2026-09-27.
-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東奔西走”,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963, 확인날짜=2026-09-27.
-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東奔西走”,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D%B1%E5%A5%94%E8%A5%BF%E8%B5%B0, 확인날짜=2026-09-27.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혼비백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8%BC%EB%B9%84%EB%B0%B1%EC%82%B0, 확인날짜=2026-09-27.
- ↑ 정(靜)·균(筠) 편, 《조당집(祖堂集)》 권17 〈통효(通曉)〉.
- ↑ 조설지(晁說之), 《경우생집(景迂生集)》 권7 〈증뇌승(贈雷僧)〉.
- ↑ 장첩(蔣捷), 《죽산사(竹山詞)》, 〈하신랑(賀新郎)·병후우오(兵後寓吳)〉.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오건, 《덕계집(德溪集)》 권4, 〈어사겸재상경차관시계(御史兼災傷敬差官時啓)〉, 자료ID ITKC_MO_0175A_0040_010_0010,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75A_0040_010_0010,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순신,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권2, 〈견내량파왜병장(見乃梁破倭兵狀)〉, 자료ID ITKC_MO_0232A_0050_010_0090,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32A_0050_010_0090, 확인날짜=2026-09-27.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44권, 선조 26년 11월 11일 신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611011_001, 확인날짜=2026-09-27.
-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범일(梵日)”,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596,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