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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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용(無用之用)은 언뜻 보기에 쓸모없는 것이 오히려 큰 구실을 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의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쓸모는 알지만, 쓸모없는 것의 쓸모는 알지 못한다(人皆知有用之用,而莫知無用之用也)”에서 나온 말이다.
당장 실용적인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이 실은 더 크고 근본적인 구실을 한다는 뜻이다. 인문학·기초과학·예술처럼 곧바로 돈이 되지 않는 분야의 가치를 말할 때, 또는 여백·여유·쉼처럼 비어 있는 것이 있어야 전체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점을 말할 때 흔히 인용한다.
본래는 도가(道家) 사상의 중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노자》와 《장자》에 두루 보인다.[2] 《장자》에서는 쓸모 있는 재목이 오히려 일찍 베이고, 쓸모없는 나무와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이 오히려 제 목숨을 다 누린다는 우화를 거듭 들어 이 생각을 보여 준다. 일본어에서도 ‘無用の用(むようのよう)’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가나조시 《기요미즈 이야기(清水物語)》(1638)를 든다.[2]
발음이 비슷한 ‘무용지물(無用之物)’은 “쓸모없는 물건이나 사람”을 뜻하는 말로,[3] 무용지용과는 뜻이 거의 반대이다.
네 글자가 그대로 나오는 곳은 《장자》 〈인간세〉의 맨 끝이다. 초나라의 광인 접여(接輿)가 공자의 문 앞을 지나며 부른 노래 뒤에 다음 구절이 이어진다.
山木自寇也,膏火自煎也。桂可食,故伐之;漆可用,故割之。人皆知有用之用,而莫知無用之用也。
“산의 나무는 스스로를 해치고, 기름불은 스스로를 태운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서 베이고, 옻나무는 쓸 수 있어서 껍질이 벗겨진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쓸모는 알지만, 쓸모없는 것의 쓸모는 알지 못한다.”
같은 편에는 이 결론을 받치는 이야기가 여럿 실려 있다.
- 역사수(櫟社樹): 목수 장석(匠石)이 제나라로 가다가 곡원에서 토지신의 사당 나무로 모셔진 거대한 상수리나무를 보았다. 구경꾼이 장터처럼 몰렸지만 장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쓸모없는 나무(散木)이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금세 썩고, 그릇을 만들면 금세 부서진다. 쓸 데가 없으므로 이처럼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날 밤 꿈에 나무가 나타나 “나는 쓸모없기를 바란 지 오래되었고, 거의 죽을 뻔하다가 이제야 그것을 얻어 나의 큰 쓰임으로 삼았다(且予求無所可用久矣,幾死,乃今得之,爲予大用).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이렇게 클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했다.[4]
- 상구의 큰 나무: 남백자기(南伯子綦)가 상구에서 수레 천 대를 가릴 만한 나무를 보았는데, 가지는 구부러져 대들보가 될 수 없고 뿌리는 갈라져 널이 될 수 없으며 잎을 씹으면 입이 헐었다. 자기는 “이것은 과연 재목이 되지 못하는 나무이기에 이렇게 클 수 있었구나”라고 탄식했다.[4]
- 지리소(支離疏): 턱이 배꼽 아래에 숨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은 곱사등이 지리소는 바느질과 키질로 열 식구를 먹였고, 나라에서 군사를 뽑을 때에도 팔을 휘두르며 그 사이를 거닐었으며, 큰 부역이 있을 때에도 늘 병이 있어 일을 받지 않았고, 병자에게 곡식을 나눠 줄 때는 곡식 세 종(鍾)과 땔나무 열 단을 받았다. 장자는 “그 몸이 온전치 못한 사람도 제 몸을 기르고 타고난 수명을 다하는데, 하물며 그 덕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겠는가”라고 했다.[4]
〈소요유(逍遙遊)〉에서 혜자(惠子)는 옹이가 많아 먹줄을 댈 수 없고 가지가 뒤틀려 자를 댈 수 없는 가죽나무(樗)를 들어 “그대의 말은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다”고 비꼬았다. 장자는 “그 나무를 아무것도 없는 고을, 드넓은 들판에 심어 두고 그 곁을 거닐고 그 아래 누워 쉬면 되지 않는가. 도끼에 일찍 베이지 않고 해치는 것도 없을 터인데, 쓸 데가 없다고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不夭斤斧,物無害者,無所可用,安所困苦哉)”라고 답했다.[5]
〈외물(外物)〉에서는 이 생각이 더 분명한 논증으로 나온다.
惠子謂莊子曰:「子言無用。」莊子曰:「知無用而始可與言用矣。夫地非不廣且大也,人之所用容足耳。然則廁足而墊之致黃泉,人尚有用乎?」惠子曰:「無用。」莊子曰:「然則無用之為用也亦明矣。」
“혜자가 장자에게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다’고 하자, 장자가 말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를 함께 말할 수 있다. 땅이 넓고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쓰는 것은 발을 딛는 자리뿐이다. 그렇다고 발 딛는 자리만 남기고 나머지를 황천까지 파 버린다면 그 땅이 그래도 쓸모가 있겠는가?’ 혜자가 ‘쓸모가 없다’고 하자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것의 쓸모 또한 분명하다.’”
한편 〈산목(山木)〉에서는 장자 스스로 이 생각에 단서를 단다. 산속에서 쓸모가 없어 베이지 않은 큰 나무를 본 날 저녁, 벗의 집에서는 울지 못하는 거위가 쓸모없다고 잡혔다. 제자가 어느 쪽에 처하겠느냐고 묻자 장자는 웃으며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材與不材之間)에 처하겠다”고 하고, 그것도 참된 길과 비슷하지만 아니어서 얽매임을 벗어나지 못하니 도와 덕을 타고 노니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7] 쓸모없음 자체를 목표로 삼으라는 말이 아니라,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이라는 세속의 잣대에서 벗어나라는 뜻으로 읽힌다.
《노자》 제11장에도 같은 생각이 비어 있음(無)의 쓰임으로 나온다.
三十輻共一轂,當其無,有車之用。埏埴以為器,當其無,有器之用。鑿戶牖以為室,當其無,有室之用。故有之以為利,無之以為用。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한 바퀴통에 모이는데, 그 비어 있는 곳이 있어 수레의 쓰임이 있다.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 있는 곳이 있어 그릇의 쓰임이 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비어 있는 곳이 있어 방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이 되고, 없음은 쓰임이 된다.” 《일본대백과전서》도 수레바퀴의 바퀴통과 발 딛지 않는 둘레의 땅을 무용지용을 설명하는 대표적 비유로 든다.[2]
-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 기초 연구에 투자하는 것은 무용지용의 이치를 믿기 때문이다.
- 평소에는 쓸 일이 없어 보이는 백업 서버와 복구 훈련이 막상 장애가 나면 가장 큰 구실을 하니, 운영에서도 무용지용이라는 말이 들어맞는다.
- 빈 여백이 있어야 글이 숨을 쉰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무용지용을 떠올리게 했다.
- 남조 송나라 유경숙(劉敬叔)의 《이원(異苑)》을 인용한 《태평광기(太平廣記)》 권284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위(魏)나라 안리왕(安釐王)이 나는 고니를 보고 부러워하자 은유(隱游)라는 식객이 나무 고니를 만들어 바쳤다. 왕이 “모양만 있고 쓸모없는 것이다. 쓸모없는 물건을 만드는 자는 세상의 간사한 백성”이라며 벌을 주려 하자, 은유는 “대왕께서는 쓸모 있는 것의 쓸모는 아시지만 쓸모없는 것의 쓸모는 깨닫지 못하셨습니다(大王知有用之用,未悟無用之用也)”라고 하고는 나무 고니를 타고 훨훨 날아가 버렸다.[12]
- 중국 근대 문인 주쯔칭(朱自清)은 수필 〈논폐화(論廢話)〉에서 쓸데없는 말(廢話)이 사람의 삶을 재미있게 만든다며 “이런 쓸데없는 말이야말로 이른바 무용지용을 가장 잘 보여 준다(這些廢話最見出所謂無用之用)”고 썼다.[1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무용지용”,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C%B4%EC%9A%A9%EC%A7%80%EC%9A%A9, 확인날짜=2026-09-30.
- ↑ 2.0 2.1 2.2 2.3 《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ニッポニカ)》·《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無用の用”,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7%84%A1%E7%94%A8%E3%81%AE%E7%94%A8, 확인날짜=2026-09-30.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무용지물”,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C%B4%EC%9A%A9%EC%A7%80%EB%AC%BC, 확인날짜=2026-09-30.
- ↑ 4.0 4.1 4.2 4.3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 ↑ 《장자》 〈소요유(逍遙遊)〉.
- ↑ 《장자》 〈외물(外物)〉.
- ↑ 《장자》 〈산목(山木)〉.
- ↑ 《노자(老子)》 제11장(왕필본).
- ↑ 이달충(李達衷), 〈취가(醉歌)〉, 《제정집(霽亭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016A_0020_020_033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 ↑ 유몽인(柳夢寅), 〈용졸헌기(用拙軒記)〉, 《어우집(於于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ITKC_MO_0265A_0050_020_0070,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無用之用”,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30.
- ↑ 《태평광기(太平廣記)》 권284 〈환술(幻術) 1·객은유(客隱游)〉, 《이원(異苑)》 인용.
- ↑ 주쯔칭(朱自清), 〈논폐화(論廢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