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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약무인(傍若無人)은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주변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구는 모습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남을 업신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비판하는 말로 주로 쓰여 안하무인(眼下無人)과 뜻이 가깝다. 중국어에서는 ‘旁若無人’으로 쓰는 것이 표준이고 ‘傍若無人’은 그 이체 표기로 다룬다.[2][3] 일본어에서도 ‘傍若無人(ぼうじゃくぶじん)’이라고 하며 일상적으로 널리 쓴다.[4]

《사기(史記)》 권86 〈자객열전(刺客列傳)〉의 형가(荊軻) 대목에서 나왔다.[5] 뒷날 진왕(진시황)을 찌르러 가는 자객 형가는 연(燕)나라에 와서 개 잡는 백정, 그리고 축(筑)이라는 현악기를 잘 타는 고점리(高漸離)와 어울렸다.

荊軻嗜酒,日與狗屠及高漸離飲於燕市,酒酣以往,高漸離擊筑,荊軻和而歌於市中,相樂也,已而相泣,旁若無人者。

“형가는 술을 즐겨 날마다 개 백정, 고점리와 함께 연나라 저잣거리에서 마셨다. 술기운이 오르면 고점리는 축을 타고 형가는 그에 맞추어 저잣거리 한가운데서 노래하며 서로 즐거워하다가, 이윽고 서로 붙들고 울었는데,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듯했다.” 《사기》는 이어서 형가가 술꾼들과 어울렸지만 사람됨이 침착하고 깊었으며 글을 좋아했고, 가는 곳마다 그 나라의 어질고 뛰어난 인물들과 사귀었다고 덧붙인다.[5]

원문의 ‘방약무인’은 남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노래하고 우는 모습을 그린 말로, 남을 깔보는 오만함을 뜻하지는 않았다. 《성어전》도 본래는 말과 행동에 거리낌이 없음을 형용했고, 뒤에 태도가 오만함을 형용하는 데도 쓰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2]

《사기》 원문의 글자는 ‘旁’이다. ‘傍’으로 쓴 예는 《진서(晉書)》 권79 〈사상전(謝尙傳)〉에 보인다. 왕도(王導)가 좌중에게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추게 하자 사상(謝尙)이 그 가운데서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며 춤을 추었는데 “곁에 사람이 없는 듯했다(傍若無人)”고 하니, 이 역시 거리낌 없는 활달함을 그린 것이다.[6] 명나라 《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권22에는 “기색이 교만하여 방약무인했다(氣色驕傲,傍若無人)”는 구절이 있어, 오만하다는 쪽의 뜻이 뚜렷하다.[7]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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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傍若無人’이 22건, ‘旁若無人’이 5건 나온다(2026-09-27 검색 기준). 가장 이른 것은 태종 4년(1404) 조운흘(趙云仡)의 졸기이다. 벼슬에서 물러나 광주(廣州)에 살던 조운흘을 옛 벗인 정승 조준(趙浚)이 동료 재상들과 함께 기생과 악공을 거느리고 찾아가자, 조운흘은 귀먹은 척 눈을 감고 꼿꼿이 앉아 “나무아미타불”만 큰 소리로 두 번 외쳤는데 “곁에 사람이 없는 듯했다(傍若無人)”. 조준은 “선생이 이를 싫어하시는구려” 하고 풍악을 그치게 한 뒤 차만 마시고 돌아갔다.[8] 실록은 “세상을 우습게 보고 스스로 높이는 것이 이와 같았다”고 평했다.

문집에서는 남의 눈을 개의치 않는 활달함을 그린 예가 많다. 이지함(李之菡)의 유사(遺事)에는 그가 베옷에 짚신, 삿갓 차림으로 짐을 지고 벼슬아치들 사이를 오가며 “곁에 사람이 없는 듯했다”고 전한다.[9]

다른 언어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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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어: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헤이안 시대 귀족 후지와라노 무네타다의 일기 《중우기(中右記)》 호안 원년(1120) 7월 22일 조의 “天下之権威傍若無人也”를 든다.[4]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은 오늘날 일본어에서 전철 안에서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떠드는 경우처럼 ‘남 앞을 꺼리지 않음’의 뜻으로 쓰는 것이 전형적이고, ‘거만하고 무례함’에 가까운 뜻으로도 쓴다고 설명한다.[4]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傍 방 곁 곁, 옆
若 약 같다 ~와 같다
無 무 없다 없다
人 인 사람 다른 사람
  • 회의 중에 다른 사람 발표를 끊고 자기 제품 이야기만 늘어놓는 그의 방약무인한 태도에 모두 질렸다.
  • 공용 서버에서 다른 팀 작업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원을 독차지하는 방약무인한 배치 작업이 문제가 되었다.
  • 지하철에서 방약무인하게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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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하무인(眼下無人): 눈 아래 사람이 없음. 교만하여 남을 업신여김.
  • 목중무인(目中無人), 목공일체(目空一切): 눈에 뵈는 사람이 없음.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2]
  • 후안무치(厚顔無恥):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을 모름.
  • 반대 의미: 허회약곡(虛懷若谷): 골짜기처럼 마음을 비워 남을 받아들임.[2]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방약무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0%A9%EC%95%BD%EB%AC%B4%EC%9D%B8,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旁若無人”,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23, 확인날짜=2026-09-27.
  3.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傍若無人”,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013,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4.2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傍若無人”,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2%8D%E8%8B%A5%E7%84%A1%E4%BA%BA, 확인날짜=2026-09-27.
  5. ↑ 5.0 5.1 사마천, 《사기》 권86 〈자객열전(刺客列傳)〉.
  6. ↑ 대만 교육부 《성어전》 “傍若無人” 항목의 서증; 《진서(晉書)》 권79 〈사상전(謝尙傳)〉.
  7. ↑ 대만 교육부 《성어전》 “傍若無人” 항목의 서증.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8권, 태종 4년 12월 5일 임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0412005_001, 확인날짜=2026-09-27.
  9.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지함, 《토정유고(土亭遺稿)》 〈유사(遺事)〉,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66A_0030_010_0010,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