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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무례(傲慢無禮)는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하여 예의를 지키지 아니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남을 깔보아 지켜야 할 예를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꾸짖을 때 쓴다. “오만무례한 언사”, “오만무례하기 짝이 없다”처럼 쓰며, 오만불손(傲慢不遜)과 뜻이 거의 같다. 오만불손이 ‘겸손하지 못함’에 무게를 둔다면, 오만무례는 ‘예의를 저버림’에 무게를 둔다. ‘무례(無禮)’는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음을 뜻한다.[2]

중국어에서도 ‘傲慢無禮(傲慢无礼)’를 같은 뜻으로 쓰고, 일본어에서도 ‘傲慢無礼(ごうまんぶれい)’라고 한다. 《디지털 다이지센》은 일본어 ‘傲慢無礼’를 ‘傲岸不遜’과 같은 말로 풀이한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傲 오 거만하다 거만함
慢 만 게으르다, 거만하다 남을 업신여김
無 무 없다 없음
禮 례(예) 예도, 예절 예의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글자 뜻 그대로 굳은 말이다. 확인되는 이른 예는 당나라 도교 문헌이다. 서울 태청관(太淸觀)의 도사 장만복(張萬福)이 엮은 계율집 《삼동중계문(三洞眾戒文)》은 제자가 스승을 섬기는 법도를 늘어놓으며 이렇게 적었다.[4]

弟子事師, 皆當恭敬, 不得傲慢無禮.
“제자는 스승을 섬길 때 모두 공경해야 하며, 오만무례해서는 안 된다.”

송나라 때는 금나라 사신의 태도를 두고 “앞서 금나라 사신이 오만무례하였다(前此虜使傲慢無禮)”라고 한 상소가 《삼조북맹회편》에 실렸고,[5] 《명사》 〈일본전〉은 명 태조가 보낸 승려 사신을 일본의 ‘왕’ 양회(良懷, 가네요시 친왕)가 “오만무례하게 대하여 2년 동안 붙잡아 두었다(而王則傲慢無禮,拘之二年)”고 적었다.[6] 이 《명사》 구절은 뒤에 일본의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가 《어융개언(馭戎慨言)》에서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다.[7] 명대 소설 《동주열국지》에도 “宋公傲慢無禮(송공이 오만무례하다)” 같은 표현이 나온다.[8]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네 차례 나온다. 가장 이른 것은 1511년(중종 6) 병조가 향화인 명부에 오르지 못한 데 불만을 품은 북도(北道) 사람 양번석(楊番碩) 형제를 “오만무례하다(傲慢無禮)”며 벌줄 것을 청한 기사이고,[9] 1712년(숙종 38)에는 일본에서 받아 온 국서의 겉봉 형식이 옛 예를 따르지 않은 것을 두고 “그 오만무례함이 참으로 해괴하다(其傲慢無禮, 誠極駭惋)”는 탄핵이 올라왔다.[10] 실록에는 같은 뜻으로 ‘倨傲無禮’, ‘侮慢無禮’, ‘驕傲無禮’도 보인다.[11]

  • 고객 문의에 오만무례한 자동 응답이 나가지 않도록 챗봇의 답변 문구를 검수한다.
  • 회의에서 남의 말을 끊고 비웃는 것은 오만무례한 행동이다.
  • 그는 은사에게 오만무례하게 굴었다가 동료들의 눈총을 받았다.
  • 《조선왕조실록》 국역문의 ‘오만무례’가 원문에서는 다른 글자인 경우가 있다. 1420년(세종 2) 대마도 왜인의 일을 의논한 기사에서 국역 “대마도 왜인의 오만무례한 죄”의 원문은 “侮慢無禮之罪”이다.[12]
  • 일본의 《사자숙어를 아는 사전》은 구니키다 돗포(国木田独歩)의 단편 〈도미오카 선생(富岡先生)〉(1902)에서 후작·백작 행세하는 자들의 “傲慢無礼な風”을 묘사한 문장을 용례로 든다.[3]
  • 1926년 5월 《동아일보》에는 제천청년회가 어느 목사에게 경고를 보냈는데 그 이유가 “傲慢無禮”였다는 기사가 실렸다.[13]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오만불손(傲慢不遜): 태도나 행동이 거만하고 공손하지 못함.
  • 안하무인(眼下無人): 방자하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김.
  • 방약무인(傍若無人):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데 거리낌이 없음.
  • 오만방자(傲慢放恣), 후안무치(厚顔無恥), 기고만장(氣高萬丈)
  • 반대: 예의범절(禮儀凡節): 일상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모든 예의와 절차.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만무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8%A4%EB%A7%8C%EB%AC%B4%EB%A1%80, 확인날짜=2026-10-11.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무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C%B4%EB%A1%80, 확인날짜=2026-10-11.
  3. ↑ 3.0 3.1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傲慢無礼”,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2%B2%E6%85%A2%E7%84%A1%E7%A4%BC, 확인날짜=2026-10-11.
  4. ↑ 장만복(張萬福) 편, 《삼동중계문(三洞眾戒文)》, 《정통도장(正統道藏)》 동진부 계율류.
  5. ↑ 서몽신(徐夢莘),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권186.
  6. ↑ 《명사(明史)》 권322 〈외국열전 3 일본(日本)〉.
  7. ↑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馭戎慨言》, 1796 간본,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2578259, 확인날짜=2026-10-11.
  8. ↑ 풍몽룡(馮夢龍) 개편,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제34회.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3권, 중종 6년 4월 18일 정유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0604018_005, 확인날짜=2026-10-11.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51권, 숙종 38년 2월 7일 경신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3802007_002, 확인날짜=2026-10-11.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傲慢無禮”·“倨傲無禮”·“侮慢無禮”·“驕傲無禮”,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11.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0권, 세종 2년 11월 1일 을축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211001_002, 확인날짜=2026-10-11.
  13.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26년 5월 14일 4면, “堤川靑年會에서 牧師에 警告, 理由는 傲慢無禮”, https://db.history.go.kr/id/npda_1926_05_14_v0004_0640,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