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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유친(父子有親)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리는 친애에 있음을 이르는 한자성어로, 오륜(五倫)의 하나이다.[1]

삼강오륜 가운데 오륜의 첫째 조목이다. 오륜은 부자유친·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의 다섯이다.[2] 어버이와 자식은 서로 친애해야 한다는 뜻으로, 오늘날에는 유교 윤리를 설명할 때 오륜의 한 조목으로 인용되는 일이 많고,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을 강조할 때도 쓴다.

《맹자》의 원문에서 ‘父子’는 아버지와 아들만이 아니라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를 대표하는 말이다. 같은 관계를 두고 삼강은 ‘부위자강(父爲子綱)’, 곧 ‘아버지는 자식의 벼리가 된다’고 하여 한쪽이 기준이 되는 위계로 말하지만, 부자유친은 두 사람 사이에 ‘친(親)’이 있어야 한다는 관계의 말이다. 일본 사전도 오륜을 ‘父子の親, 君臣の義, 夫婦の別, 長幼の序, 朋友の信’으로 소개한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父 부 아버지 아버지(어버이)
子 자 아들 아들(자식)
有 유 있다 (둘 사이에) 있다
親 친 친하다, 어버이 친애, 가까이 아끼는 정

‘어버이와 자식(사이)에는 친함이 있다’는 짜임이다. 오륜의 다섯 조목이 모두 ‘A와 B + 有 + 덕목’의 같은 꼴이다.

《맹자》 〈등문공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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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서 맹자가 농가(農家)의 허행(許行)을 따르는 진상(陳相)과 논쟁하는 대목에 나온다. 성인은 백성이 배불리 먹고 편히 살기만 하면 짐승에 가까워질 것을 걱정해 설(契)을 사도(司徒)로 삼아 인륜을 가르쳤다는 것이다.[4]

人之有道也,飽食煖衣,逸居而無教,則近於禽獸。聖人有憂之,使契為司徒,教以人倫: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

[4]

“사람에게는 도리가 있는데,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편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짐승에 가까워진다. 성인이 이를 걱정하여 설을 사도로 삼아 인륜을 가르치게 했으니,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고,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게 한 것이다.”

다섯 조목 가운데 부자유친이 맨 앞에 놓인다. 《중용》은 같은 다섯 관계를 ‘천하의 달도(達道)’라 부르며 군신을 맨 앞에 두는데(君臣也、父子也、夫婦也、昆弟也、朋友之交也),[5] 《맹자》는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를 인륜의 첫머리로 삼은 셈이다.

《예기》 〈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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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네 글자는 《예기(禮記)》 〈혼의(昏義)〉에도 나온다. 여기서는 혼례가 모든 인륜의 출발점이라는 논리 속에 놓인다.[6]

男女有別,而後夫婦有義;夫婦有義,而後父子有親;父子有親,而後君臣有正。故曰:昏禮者,禮之本也。

“남녀에게 분별이 있은 뒤에 부부에게 의리가 있고, 부부에게 의리가 있은 뒤에 부자에게 친함이 있으며, 부자에게 친함이 있은 뒤에 군신에게 바름이 있다. 그러므로 혼례는 예의 근본이라고 한다.”

남송의 주희(朱熹)는 〈백록동서원게시(白鹿洞書院揭示)〉에서 《맹자》의 다섯 구절을 적고 “이상은 오교의 조목(右五教之目)”이라 하며 “배우는 사람은 이것을 배울 뿐(學者學此而已)”이라고 했다.[7] 조선의 서원과 성균관은 이 학규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 다섯째 그림인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도 부자유친에서 시작한다.[8]

한국에서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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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몽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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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박세무(朴世茂)의 아동 교재 《동몽선습(童蒙先習)》은 첫머리에 《맹자》의 다섯 구절을 들고, 첫 절을 ‘부자유친’으로 시작한다.[9]

父子天性之親。生而育之。愛而教之。奉而承之。孝而養之。是故教之以義方。弗納於邪。柔聲以諫。不使得罪於鄕黨州閭。苟或父而不子其子。子而不父其父。其何以立於世乎。雖然。天下無不是底父母。父雖不慈。子不可以不孝。

[9]

“부자는 하늘이 낸 친함이다. 낳아서 기르고 사랑하여 가르치며, 받들어 잇고 효도하여 봉양한다. 그러므로 의로운 길로 가르쳐 그릇된 데 빠지지 않게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간하여 고을에서 죄를 짓지 않게 한다. 만일 아버지가 자식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고 자식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상에 설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는 없으니, 아버지가 비록 자애롭지 못하더라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을 수 없다.”

앞부분은 어버이와 자식이 서로에게 지는 도리를 함께 말하지만, 끝에서는 어버이가 자애롭지 않아도 자식은 효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 절은 순임금이 자신을 죽이려 한 완고한 아버지와 어리석은 어머니(父頑母嚚)에게도 효도를 다한 이야기로 끝난다.[9]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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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父子有親이 5건 보인다.[10] 1480년(성종 11) 성균관 생원 김굉필(金宏弼)은 유교의 도가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상소했다.[11] 1597년(선조 30) 선조가 명나라에 왕위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알리겠다고 하자 유성룡(柳成龍)·윤두수(尹斗壽)·이원익(李元翼) 등이 거듭 말렸는데, 선조는 신하들이 부자 관계를 끌어다 비유한 것을 두고 “부자와 군신은 그 의리가 각기 다르다. 자식에게는 사양하거나 물러날 의리가 없지만, 군신 사이에는 신하가 직분을 잃으면 물러나게 한다. 그러므로 부자유친·군신유의라고 한 것(故曰父子有親,君臣有義)”이라고 답했다.[12] 부자 관계는 끊을 수 없는 친함이고 군신 관계는 의리로 맺어진 것이라는 구분을 정치 논리에 쓴 예다.

1626년(인조 4) 대사성 김덕함(金德諴)은 광해군 때 성균관 유생들이 인목대비를 폐하자는 통문을 돌린 일을 들어, 그런 자들의 죄를 풀어 준 것을 부끄러워하며 “부자유친이 어떤 일인데(父子有親,是何等事)”라고 상소했다.[13]

송순(宋純)의 〈오륜가(五倫歌)〉, 주세붕(周世鵬)의 〈입교(立敎)〉 등 16세기 문집에도 부자유친을 첫 조목으로 둔 오륜 노래와 글이 여럿 실려 있다.[14]

  • 부자유친이라 했으니,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먼저 있어야 할 것은 엄격함보다 정이다.
  • 오륜의 첫머리에 부자유친을 둔 것은 가정에서 배운 친애가 모든 인간관계의 바탕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신입 사원 교육 자료에 ‘선배와 후배 사이에도 부자유친 같은 정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친밀함을 강요하는 말로 들린다는 의견이 나와 고쳤다.
  • 명나라 탕현조(湯顯祖)의 희곡 《남가기(南柯記)》에는 개미 나라의 부마가 된 주인공 순우분(淳于棼)이 집안과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불교가 아니라 공자의 도만 쓰면 된다며 그 도를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으로 설명하자, 공주가 자기 나라에는 공자의 도가 없었는데도 임금과 신하, 부부, 부자, 형제 사이의 도리가 다 있다며 어찌 된 일이냐고 되묻는 장면이 있다.[15]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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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위자강(父爲子綱): 삼강의 하나. 아버지는 자식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
  • 부자자효(父慈子孝): 어버이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성스러움.
  •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오륜의 나머지 조목.
  • 형우제공(兄友弟恭):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을 공경함.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부자유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6%80%EC%9E%90%EC%9C%A0%EC%B9%9C, 확인날짜=2026-10-03.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8%A4%EB%A5%9C, 확인날짜=2026-10-03.
  3. ↑ 《세계대백과사전(世界大百科事典)》(구판) “徳” 항목, 코토뱅크 “仁義礼智” 페이지 인용, https://kotobank.jp/word/%E4%BB%81%E7%BE%A9%E7%A4%BC%E6%99%BA, 확인날짜=2026-10-03.
  4. ↑ 4.0 4.1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
  5. ↑ 《예기(禮記)》 〈중용(中庸)〉.
  6. ↑ 《예기(禮記)》 〈혼의(昏義)〉.
  7. ↑ 주희(朱熹), 〈백록동서원게시(白鹿洞書院揭示)〉.
  8. ↑ 이황(李滉), 〈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 〈제5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퇴계집(退溪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9. ↑ 9.0 9.1 9.2 박세무(朴世茂), 《동몽선습(童蒙先習)》 〈부자유친(父子有親)〉.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父子有親”,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18권, 성종 11년 6월 16일 을축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106016_003, 확인날짜=2026-10-03.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94권, 선조 30년 11월 9일 병신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011009_001, 확인날짜=2026-10-03.
  13.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14권, 인조 4년 10월 26일 을축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0410026_003, 확인날짜=2026-10-03.
  14. ↑ 송순(宋純), 〈오륜가 오편(五倫歌五篇)〉, 《면앙집(俛仰集)》; 주세붕(周世鵬), 〈입교(立敎)〉, 《무릉잡고(武陵雜稿)》,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15. ↑ 탕현조(湯顯祖), 《남가기(南柯記)》 제25척 〈완월(玩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