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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유서(長幼有序)는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엄격한 차례가 있고 지켜야 할 질서가 있다는 뜻으로, 오륜(五倫)의 하나를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삼강오륜 가운데 오륜의 넷째 조목이다. 오륜은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붕우유신(朋友有信)의 다섯이다.[1]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 사이에 순서가 있다는 뜻으로, 자리 순서, 인사, 발언 차례 등 생활 예절의 근거로 오랫동안 인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전통 예절을 설명할 때 쓰는 한편, 나이만으로 위아래를 가르는 문화를 비판할 때도 자주 거론된다.

일본어에서도 같은 출전에서 나온 ‘조요노조(長幼の序)’라는 말을 쓴다. 《디지털 다이지센》은 이 말이 《맹자》 〈등문공 상〉에서 나왔다고 밝히고, 어른은 아이를 아끼고 아이는 어른을 공경하는 관계로 풀이한다.[2]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長 장 길다, 어른 나이 많은 사람
幼 유 어리다 나이 어린 사람
有 유 있다 있다
序 서 차례 차례, 순서

‘序’는 《설문해자》에서 “집의 동쪽과 서쪽 담(東西牆)”으로 풀이되는 글자로, 건물 안에서 자리를 나누는 담이라는 뜻에서 차례·순서라는 뜻이 나왔다.[3] 옛날에는 학교를 가리키는 말로도 썼다(庠序).

《맹자》 〈등문공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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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서 맹자가 농가(農家)의 허행(許行)을 따르는 진상(陳相)과 논쟁하면서, 성인은 몸소 밭을 갈 겨를이 없을 만큼 백성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고 말하는 대목에 나온다.[4]

后稷教民稼穡,樹藝五穀,五穀熟而民人育。人之有道也,飽食煖衣,逸居而無教,則近於禽獸。聖人有憂之,使契為司徒,教以人倫: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

[4]

“후직(后稷)이 백성에게 농사를 가르쳐 오곡을 심고 가꾸게 하니, 오곡이 익어 백성이 길러졌다. 사람에게는 도리가 있는데,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편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짐승에 가까워진다. 성인이 이를 걱정하여 설(契)을 사도(司徒)로 삼아 인륜을 가르치게 했으니,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고,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게 한 것이다.”

다른 선진·한대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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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네 글자는 다른 유가 문헌에도 보인다. 《예기(禮記)》 〈경해(經解)〉는 예를 존중하면 “종묘를 받들 때는 공경스럽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귀천에 자리가 있고, 집안에 있을 때는 부자가 친하고 형제가 화목하며, 마을에 있을 때는 어른과 아이에게 차례가 있다(以處鄉里則長幼有序)”고 했다.[5] 《예기》 〈제통(祭統)〉은 제사 뒤 술잔을 내릴 때 소(昭)는 소끼리, 목(穆)은 목끼리, 여러 관원도 모두 나이에 따라 차례를 정하는 것을 두고 “이것을 장유유서라 한다(此之謂長幼有序)”고 설명한다.[6] 《순자(荀子)》 〈군자(君子)〉에도 “어른과 아이에게 차례가 있으면 일이 빨리 이루어지고 쉴 때도 있다(長幼有序,則事業捷成而有所休)”는 구절이 있다.[7] 장유유서가 처음부터 일방적인 복종보다는 일을 나누고 자리를 정하는 질서를 가리켰음을 보여 준다.

송나라 주희(朱熹)는 〈백록동서원게시(白鹿洞書院揭示)〉에서 오륜의 다섯 조목을 ‘오교(五敎)의 조목’으로 내걸고 “배우는 사람은 이것을 배울 뿐(學者學此而已)”이라고 했다.[8] 조선에서도 1439년(세종 21) 성균관이 학령을 의논하면서 이 학규를 근거로 들었다.[9]

한국에서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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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長幼有序가 8건 보인다(국역문에서는 14건).[10] 이른 예로 1438년(세종 20) 진사 이관의(李寬義) 등은 성균관에서 진사가 생원보다 나이가 많아도 아래에 앉는 바람에 서로 다투고 “어른과 아이가 자리를 바꾸는(長幼易位)” 일이 생긴다며, 나이에 따라 앉는 차례를 정해 주면 “장유유서가 되어 인륜이 밝아질 것(長幼有序,而人倫明矣)”이라고 상언했다. 세종은 이를 예조에 내려 의논하게 했다.[11] 1480년(성종 11) 성균관 생원 김굉필(金宏弼)은 유교의 도가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상소했다.[12]

  • 회의 발언 순서를 장유유서로 정하다 보니 신입 개발자의 좋은 의견이 늘 마지막에야 나왔다. 장애 대응 회의만큼은 직급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현장을 아는 사람이 먼저 말하도록 바꾸었다.
  • 명절 차례상 앞에서 할아버지는 장유유서를 들어 절하는 순서를 일러 주셨다.
  • 장유유서는 어른이 먼저 본을 보이고 아랫사람을 아끼라는 뜻도 함께 담고 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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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장유유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E%A5%EC%9C%A0%EC%9C%A0%EC%84%9C, 확인날짜=2026-10-01.
  2. ↑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長幼の序”,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9%95%B7%E5%B9%BC%E3%81%AE%E5%BA%8F, 확인날짜=2026-10-01.
  3. ↑ 허신(許愼), 《설문해자(說文解字)》 〈广부〉 “序”.
  4. ↑ 4.0 4.1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
  5. ↑ 《예기(禮記)》 〈경해(經解)〉.
  6. ↑ 《예기(禮記)》 〈제통(祭統)〉.
  7. ↑ 《순자(荀子)》 〈군자(君子)〉.
  8. ↑ 주희(朱熹), 〈백록동서원게시(白鹿洞書院揭示)〉.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86권, 세종 21년 9월 29일 갑술 5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2109029_005, 확인날짜=2026-10-01.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長幼有序”,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1.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83권, 세종 20년 11월 12일 임진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2011012_001, 확인날짜=2026-10-01.
  12.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18권, 성종 11년 6월 16일 을축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106016_003,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