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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하문(不恥下問)은 손아랫사람이나 지위·학식이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서 공자가 위(衛)나라 대부 공문자(孔文子)를 평한 말에서 나왔다.

배우는 사람의 겸손한 자세를 가리키는 말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전문가가 다른 분야 사람에게 기꺼이 묻는 태도를 칭찬할 때 쓴다. ‘하문(下問)’은 아랫사람에게 묻는다는 뜻이다.

중국어에서도 ‘不恥下問(bù chǐ xià wèn)’을 그대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恥’를 발음이 같은 ‘齒’로 잘못 쓰지 말라고 적어 둔다.[2] 일본어에서는 ‘下問を恥じず(かもんをはじず)’처럼 훈독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下問’ 항목의 첫 용례로 11세기 《본조문수(本朝文粋)》에 실린 미나모토노 시타고(源順)의 시서 가운데 “時人以為不恥下問”을 든다.[3]

《논어》의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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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貢問曰:「孔文子,何以謂之文也?」子曰:「敏而好學,不恥下問,是以謂之文也。」

자공(子貢)이 “공문자는 어째서 ‘문(文)’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영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이라 한 것이다”라고 답했다.[4]

공문자는 위나라의 대부 공어(孔圉)로, 죽은 뒤 ‘문’이라는 시호를 받았다.[2] ‘문’은 시호 가운데서도 높은 글자였기에 자공은 그가 이 시호를 받을 만한 사람인지 의문을 품었다. 남송의 주희(朱熹)는 《논어집주(論語集注)》에서 “대체로 타고난 성품이 영민한 사람은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법(諡法)에 부지런히 배우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을 문이라 한 것이 있다”고 풀고, 공어가 문이라는 시호를 얻은 것은 이 때문일 뿐이라고 했다.[5]

자공이 의문을 품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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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의아하게 여긴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춘추좌씨전》 애공 11년 조에 따르면, 공문자는 위나라의 태숙질(大叔疾)에게 아내를 내보내고 자기 딸과 혼인하게 했다. 그런데 태숙질이 쫓아낸 아내의 여동생을 몰래 데려다 두 아내처럼 거느리자, 공문자는 노하여 그를 치려 했다가 공자가 말려 그만두고 딸을 도로 데려왔다.[6] 공문자는 태숙질을 치려고 할 때 공자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공자는 이렇게 답하고 수레를 준비해 떠나려 했다.

孔文子之將攻大叔也,訪於仲尼。仲尼曰:「胡簋之事,則嘗學之矣;甲兵之事,未之聞也。」退,命駕而行,曰:「鳥則擇木,木豈能擇鳥?」

“제기(祭器)를 다루는 일은 일찍이 배웠지만, 군사를 쓰는 일은 들은 적이 없다.” 그러고는 물러나 “새가 나무를 고르는 것이지, 나무가 어찌 새를 고르겠는가”라고 했다.[6] 《성어전》은 뒤에 어진 인재가 섬길 임금을 고른다는 뜻으로 쓰인 ‘양금택목(良禽擇木)’의 근원을 이 대목에서 찾는다.[7] 이처럼 사사로운 일로 사위를 치려 한 사람이 가장 높은 시호 가운데 하나를 받았으니 자공이 의아해한 것이다. 공자는 그의 흠을 두둔하지 않고, 그가 가진 한 가지 장점인 ‘배움을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도 물은 것’을 들어 시호의 뜻을 설명했다.

주희의 《논어집주》도 소씨(蘇氏)의 말을 인용해 이 일을 소개한다. 소씨는 “그 사람됨이 이와 같은데도 시호를 문이라 했으니 자공이 의심해 물은 것이다. 공자는 그의 좋은 점을 묻어 두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있으면 문이라 하기에 족하다고 한 것이지, 천지를 경륜하는 문(經天緯地之文)을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풀었다.[5]

불치하문은 그 뒤 임금과 학자의 덕목으로 널리 인용되었다. 《성어전》은 후한 순열(荀悅)의 《신감(申鑒)》, 《삼국지》 〈유이전(劉廙傳)〉,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진서(晉書)》 〈왕혼전(王渾傳)〉 등의 용례를 든다. 《포박자》 〈근구(勤求)〉는 “오경을 읽을 때조차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夫讀五經,猶宜不恥下問)”고 했다.[2] 당나라 한유(韓愈)의 〈사설(師說)〉은 “무당·의원·악사·온갖 장인은 서로 스승 삼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데(不恥相師), 사대부들은 스승이니 제자니 하면 모여서 비웃는다”고 개탄하며, 공자도 담자(郯子)·장홍(萇弘)·사양(師襄)·노담(老聃)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했다.[8] 불치하문과 같은 생각을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넓힌 글이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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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不恥下問’이 16건 보인다.[9]

  • 세종 23년(1441) 의정부는 시호를 정하는 법을 바로잡자고 아뢰면서 이 대목과 《논어집주》를 그대로 인용했다. 행장에는 지나치게 좋은 말이 섞이기 쉬워 시호와 실제 행실이 어긋나는 폐단이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시호의 뜻을 따진 공자의 문답이 조선의 시호 제도를 논하는 근거로 쓰인 것이다.[10]
  • 영조 51년(1775) 12월 승지 이보행(李普行)은 대리청정 중이던 왕세손(뒤의 정조)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지극히 마땅한 데로 돌아가기를 힘쓰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좋은 말을 바칠 것(大抵上之人,不恥下問,務歸至當,則下之人,必以善言獻之)”이라고 했다.[11]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不 불 아니다 아니하다
恥 치 부끄러워하다 부끄럽게 여기다
下 하 아래 아랫사람
問 문 묻다 묻다
  • 그는 20년 경력의 보안 전문가였지만 새 클라우드 권한 체계는 입사 2년 차 엔지니어에게 불치하문하며 배웠다.
  • 장애 회고에서 팀장이 먼저 “이 부분은 제가 잘 몰라서요”라고 묻는 불치하문의 태도를 보이자, 신입들도 편하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 옛 선비들은 불치하문을 배우는 사람의 첫째 덕목으로 여겼다.
  • 일본에는 “묻는 것은 한때의 부끄러움, 묻지 않는 것은 평생의 부끄러움(聞くは一時の恥、聞かぬは一生の恥)”이라는 속담이 있다. 《고토와자를 아는 사전》에 따르면 옛날에는 ‘聞くは’보다 ‘問うは’ 꼴이 일반적이었고, ‘一時’ 대신 ‘当座’, ‘一生’ 대신 ‘末代’를 쓰는 등 변이형이 많다.[12]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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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회약곡(虛懷若谷): 골짜기처럼 마음을 비워 남의 말을 받아들임.[2]
  • 순어추요(詢於芻蕘): 꼴 베는 사람과 나무꾼에게도 물음. 《시경》 〈대아·판(板)〉.[2]
  • 호학불권(好學不倦):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음.
  •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자람.
  • 반대 의미: 사심자용(師心自用), 곧 제 생각만 옳다고 여겨 남의 말을 듣지 않음.[2]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불치하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6%88%EC%B9%98%ED%95%98%EB%AC%B8,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2.4 2.5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不恥下問”,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67, 확인날짜=2026-09-27.
  3.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下問”,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B%E5%95%8F, 확인날짜=2026-09-27.
  4. ↑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5. ↑ 5.0 5.1 주희(朱熹), 《논어집주(論語集注)》 〈공야장〉.
  6. ↑ 6.0 6.1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11년.
  7.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良禽擇木”,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385, 확인날짜=2026-09-27.
  8. ↑ 한유(韓愈), 〈사설(師說)〉.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不恥下問”,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7.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93권, 세종 23년 8월 11일 을해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2308011_002, 확인날짜=2026-09-27.
  11.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126권, 영조 51년 12월 25일 무진 9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5112025_009, 확인날짜=2026-09-27.
  12. ↑ 《고토와자를 아는 사전(ことわざを知る辞典)》, “聞くは一時の恥聞かぬは一生の恥”,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81%9E%E3%81%8F%E3%81%AF%E4%B8%80%E6%99%82%E3%81%AE%E6%81%A5%E8%81%9E%E3%81%8B%E3%81%AC%E3%81%AF%E4%B8%80%E7%94%9F%E3%81%AE%E6%81%A5,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