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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분강개(悲憤慷慨)는 슬프고 분하여 마음이 북받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같은 말로 ‘비가강개(悲歌慷慨)’가 있다.[1]

나라가 위태롭거나 세상에 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말한다. 단순히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의분을 품는다는 뜻이 강해서, 우국지사나 의병, 지조를 지킨 선비의 모습을 그릴 때 자주 쓴다. “비분강개하다”, “비분강개한 어조”처럼 쓴다.

‘강개(慷慨)’는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하고 슬퍼하는 것이고,[2] 여기에 ‘슬퍼하고 분해함’을 뜻하는 ‘비분(悲憤)’을 겹친 말이다. 일본어에서도 ‘悲憤慷慨(ひふんこうがい)’라고 하여 세상 형편이나 자기 운명에 분개하고 슬퍼하는 것을 뜻한다.[3] 중국어에서는 순서를 바꾼 ‘慷慨悲憤’이나 ‘悲歌慷慨’, ‘慷慨激昂’ 등도 쓴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悲 비 슬프다 슬퍼하다
憤 분 분하다, 성내다 분해하다
慷 강 강개하다 (의기가) 북받치다
慨 개 분개하다, 슬퍼하다 탄식하며 분개하다

비가강개(悲歌慷慨)

편집 원본 편집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은 아니지만, 같은 말인 ‘비가강개’의 바탕에는 《사기》 〈항우본기(項羽本紀)〉의 해하(垓下) 장면이 있다. 한나라 군사에게 겹겹이 포위된 항우가 밤에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오자 장막 안에서 술을 마시며 “슬피 노래하며 강개하여(悲歌忼慨)” 스스로 시를 지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해하가(垓下歌)〉이다.[4]

於是項王乃悲歌忼慨,自為詩曰:「力拔山兮氣蓋世,時不利兮騅不逝。騅不逝兮可柰何,虞兮虞兮柰若何!」

“이에 항왕은 슬피 노래하며 강개하여 스스로 시를 지어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건만, 때가 이롭지 않아 오추마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할 것인가, 우희여 우희여 너를 어찌할 것인가!’” 忼慨는 慷慨와 같은 말이다.

‘悲憤慷慨’ 네 글자는 송대 문헌부터 보인다. 남송 초의 주자지(周紫芝)는 〈애상루부(哀湘纍賦)〉의 서문에서 “내가 밤에 《이소경》 스물다섯 편을 읽다가 그 비분강개하여 견디지 못하다가 끝내 충간하다 죽은 대목에 이르면, 눈물을 흘리며 그 사람을 그려 보지 않은 적이 없다(始余夜讀離騷經二十五篇,至其悲憤慷慨有不能勝,卒以忠諫而死,未嘗不垂涕想見其人)”고 하여 굴원의 심정을 이 말로 그렸다.[5] 남송 말의 유극장(劉克莊)도 어느 시인의 시권(詩卷)에 쓴 제발에서 그의 가행(歌行)에 “비분강개한” 작품이 있다고 평했다.[6]

조선의 용례와 국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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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집에서는 사화나 전란을 겪은 선비의 심정을 그릴 때 자주 썼다. 송시열(宋時烈)은 구수담(具壽聃)의 묘표에서,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화를 입자 그가 “비분강개하여 십 년 동안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公悲憤慷慨。杜門不出者十年)”고 적었다.[7]

한편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悲憤慷慨’가 한 건도 없고 순서를 바꾼 ‘慷慨悲憤’만 한 건 있지만, 국역문에서는 ‘비분강개’가 29건 검색된다.[8] 번역자들이 원문의 ‘慷慨’ 등을 익숙한 네 글자로 풀어 쓴 결과이다. 예컨대 1587년(선조 20) 선조가 내린 하교의 “조정에서는 강개하여 적을 쳐서(朝廷,慷慨討賊)”라는 구절을 국역문은 “비분강개(悲憤慷慨)한 정신으로 적을 토벌하여”로 옮겼다.[9] 원문의 유일한 용례인 ‘慷慨悲憤’은 1779년(정조 3) 기사로, 경종 때 열여섯 살 궁인 묵세(墨世)가 국문을 받으면서도 “강개하고 비분하여 죽음으로써 그렇지 않음을 밝혔다(慷慨悲憤,以死明其不然)”며 그 집터에 정표를 세우게 한 내용이다.[10]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1890년대의 엔카(演歌) 〈아시아의 앞길(亜細亜の前途)〉을 든다.[3] 이보다 앞서 1877년에 나온 기조(F. Guizot)의 《유럽 문명사》 일역본, 1880년의 《일본 민권가 언행록(日本民権家言行録)》 등에도 이 말이 보여, 메이지 초기 번역서와 자유민권운동 관련 글에서 이미 쓰였음을 알 수 있다.[11]

  •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소식에 피해자들은 비분강개했지만, 정작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 그는 비분강개한 어조로 부당한 인사 조치를 성토했다.
  • 나라를 잃은 선비들은 비분강개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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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가강개(悲歌慷慨): 비분강개와 같은 말.[12]
  • 강개(慷慨):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하고 슬퍼함.
  • 절치부심(切齒腐心): 몹시 분하여 이를 갈며 속을 썩임.
  • 우국지사(憂國之士): 나랏일을 근심하는 사람.
  • 사면초가(四面楚歌): 항우가 해하에서 사방의 초나라 노래를 들은 데서 나온 말.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비분강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9%84%EB%B6%84%EA%B0%95%EA%B0%9C, 확인날짜=2026-10-01.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강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0%95%EA%B0%9C, 확인날짜=2026-10-01.
  3. ↑ 3.0 3.1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悲憤慷慨”,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82%B2%E6%86%A4%E6%85%B7%E6%85%A8, 확인날짜=2026-10-01.
  4. ↑ 사마천, 《사기》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
  5. ↑ 주자지(周紫芝), 〈애상루부(哀湘纍賦)〉 서(叙), 《태창제미집(太倉稊米集)》 권41.
  6. ↑ 유극장(劉克莊), 〈제조과시권(題趙戣詩卷)〉, 《후촌선생대전집(後村先生大全集)》.
  7. ↑ 송시열(宋時烈), 〈부제학구공묘표(副提學具公墓表)〉, 《송자대전(宋子大全)》 권189,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67A_1910_010_0040, 확인날짜=2026-10-01.
  8.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국역 검색 “悲憤慷慨”, “비분강개”,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1.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21권, 선조 20년 12월 28일 임오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2012028_001, 확인날짜=2026-10-01.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7권, 정조 3년 3월 15일 기해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0303015_004, 확인날짜=2026-10-01.
  11. ↑ ギゾー 저, 永峰秀樹 역, 《欧羅巴文明史》, 1877; 小池洋次郎 편, 《日本民権家言行録》, 1880,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컬렉션, https://dl.ndl.go.jp/pid/776967, https://dl.ndl.go.jp/pid/778553, 확인날짜=2026-10-01.
  1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비가강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9%84%EA%B0%80%EA%B0%95%EA%B0%9C,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