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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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지사(憂國之士)는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사람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우국(憂國)’은 나라의 형편과 앞날을 걱정한다는 말이고, ‘지사(之士)’는 ‘~하는 선비, ~하는 사람’이다. 나라가 어려운 때에 개인의 이해를 떠나 나라 걱정을 앞세우는 사람을 높여 부를 때 쓴다. “우국지사의 충정”, “초야의 우국지사들”처럼 쓰며, 구한말·일제강점기의 의병과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자주 쓰인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사람을 뜻하는 ‘애국지사(愛國志士)’와 가깝지만,[2] 우국지사는 ‘걱정하는 마음’ 쪽에 무게가 실린다.
중국어에서도 ‘憂國之士’는 같은 뜻으로 쓰였고, 일본어에서는 ‘우국의 선비(憂国の士)’라는 꼴로 쓴다. 《일본국어대사전》은 ‘憂国’의 첫 용례로 《신장기(信長記)》(1622)를 든다.[3]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라는 글자 뜻 그대로 굳은 말이다. ‘憂國’이라는 말은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제나라 왕이 “과인은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아낀다(寡人憂國愛民)”고 한 대목처럼 일찍부터 쓰였다.[4]
네 글자 형태는 송나라 문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북송의 조변(趙抃)은 구양수(歐陽脩) 등 바른 신하들이 잇따라 지방으로 나가기를 청하자 “요즘 바른 사람과 어진 선비들이 잇달아 떠나가니 우국지사들이 이를 두고 마음이 서늘해한다(近日正人賢士,紛紛引去,憂國之士,為之寒心)”고 상소했다. 이 말은 소식(蘇軾)이 지은 조변의 신도비에 실려 있다.[5] 근대 중국에서도 량치차오(梁啓超)의 《신민설(新民說)》에 “지금 초야의 우국지사들은(今草野憂國之士)”이라는 구절이 있는 등 계속 쓰였다.[6]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憂國之士’가 9건 있다.[7] 가장 이른 것은 1402년(태종 2) 기사이다. 명나라에서 연왕(燕王)이 군사를 일으켜 요동이 어수선하던 때, 태종은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들이 뇌물만 밝힌다고 나무라다가 “오직 축 소경(祝少卿)만은 일찍이 ‘육 유생(陸儒生) 때문에 천하를 잃을 뻔했다’고 말했으니, 이 사람이야말로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이다(唯祝少卿嘗曰:‘以陸儒生幾失天下。’此卽憂國之士也)”라고 했다.[8]
1545년(인종 1)에는 성균관 진사 박근(朴謹) 등이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청하며 “간사한 자들이 화를 꾸며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던 선비들이 모두 뜻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奸邪構禍,使其愛君憂國之士,竝皆齎志長辭)”고 했다.[9] 이 상소문은 강유선(康惟善)의 문집 《주천유고(舟川遺稿)》에 그의 글로 실려 있다.[10] 이처럼 조선 문헌에서는 ‘애군우국(愛君憂國)’, ‘충군우국(忠君憂國)’처럼 임금을 아끼는 마음과 짝지어 쓰는 경우가 많았다.
-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되풀이되자 업계 원로들이 우국지사처럼 보안 투자 확대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 그는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에 머물렀지만,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상소를 올린 우국지사였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우국지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A%B0%EA%B5%AD%EC%A7%80%EC%82%AC, 확인날짜=2026-10-01.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애국지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5%A0%EA%B5%AD%EC%A7%80%EC%82%AC, 확인날짜=2026-10-01.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憂国”,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86%82%E5%9B%BD, 확인날짜=2026-10-01.
- ↑ 《전국책(戰國策)》 〈제책 4(齊策四)〉.
- ↑ 소식(蘇軾), 〈조청헌공신도비(趙清獻公神道碑)〉.
- ↑ 량치차오(梁啓超), 《신민설(新民說)》 제2절.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憂國之士”(9건),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3권, 태종 2년 4월 3일 을묘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0204003_004, 확인날짜=2026-10-01.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종실록》 1권, 인종 1년 3월 13일 을해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la_10103013_003, 확인날짜=2026-10-01.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강유선, 《주천유고(舟川遺稿)》 〈상인종소(上仁宗疏)〉, 자료ID ITKC_MO_0173A_0010_100_0010,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173A_0010_100_0010, 확인날짜=2026-10-01.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우국충정”,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A%B0%EA%B5%AD%EC%B6%A9%EC%A0%95, 확인날짜=2026-10-01.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憂國憂民”,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512, 확인날짜=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