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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후락(先憂後樂)은 세상의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거워할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거워한다는 뜻으로,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지사(志士)나 어진 사람의 마음가짐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북송의 정치가 범중엄(范仲淹)이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의 “천하의 근심을 앞서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뒤에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를 줄인 말이다. 공직자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세, 곧 자기 안락보다 공동체의 걱정을 앞세우는 태도를 말할 때 쓴다.

중국어에서도 先憂後樂(xiān yōu hòu lè)을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두 가지 뜻을 싣는다. 하나는 “먼저 고생하고 뒤에 편안함을 얻는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범중엄의 말에서 온 “근심은 천하 사람보다 앞서고 안락은 천하 사람보다 뒤에 한다”는 뜻이다.[2] 일본어에서도 센유코라쿠(先憂後楽)라 하여 같은 뜻으로 쓴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先 선 먼저 남보다 먼저
憂 우 근심하다 세상일을 걱정하다
後 후 뒤 남보다 나중에
樂 락 즐기다 즐거움을 누리다

樂은 ‘즐기다’일 때는 ‘락’, ‘음악’일 때는 ‘악’, ‘좋아하다’일 때는 ‘요’로 읽는다. 이 성어에서는 ‘즐기다’의 뜻이므로 ‘락’으로 읽는다.

범중엄의 〈악양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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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4년 등자경(滕子京)이 파릉군(巴陵郡)으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 악양루를 고쳐 짓고 범중엄에게 기문을 부탁했다. 범중엄은 1046년에 쓴 이 글에서, 악양루에 오른 사람들이 날씨에 따라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고 묘사한 뒤 이렇게 끝맺는다.

嗟夫!予嘗求古仁人之心,或異二者之為,何哉?不以物喜,不以己悲。居廟堂之高,則憂其民;處江湖之遠,則憂其君。是進亦憂,退亦憂;然則何時而樂耶?其必曰「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歟!噫!微斯人,吾誰與歸?

[4]

“아, 내가 일찍이 옛 어진 사람의 마음을 찾아보니 이 두 가지와는 달랐으니 어째서인가. 바깥 사물 때문에 기뻐하지 않고 자기 처지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다. 조정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백성을 걱정하고, 멀리 강호에 물러나 있으면 임금을 걱정했다. 나아가도 걱정하고 물러나도 걱정하니, 그렇다면 언제 즐거워하는가. 반드시 ‘천하의 근심을 앞서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뒤에 즐긴다’고 할 것이다. 아, 이런 사람이 없다면 나는 누구와 함께 돌아가겠는가.”

《송사(宋史)》 〈범중엄전〉의 논찬은 “조정에 있은 기간은 길지 않았으나 선우후락의 뜻으로 천하가 이미 그의 넓고 굳센 그릇을 믿었다(然先憂後樂之志,海內固已信其有弘毅之器)”고 평했다. 네 글자로 줄인 형태가 범중엄의 평가와 묶여 쓰였음을 보여 준다.[5]

더 오랜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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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근심하면 뒤에 즐겁다’는 생각 자체는 범중엄보다 훨씬 이르다. 《대대례기(大戴禮記)》 〈증자입사(曾子立事)〉에 “일을 앞서 근심하는 자는 뒤에 즐거워하고, 일을 앞서 즐기는 자는 뒤에 근심한다(先憂事者,後樂事;先樂事者,後憂事)”는 말이 있고,[6] 전한 유향(劉向)의 《설원(說苑)》 〈설총(說叢)〉에도 “先憂事者後樂,先傲事者後憂”라는 구절이 있다.[7] 명나라 양신(楊慎)은 《단연속록(丹鉛續錄)》에서 〈증자입사〉의 이 구절을 들고 “범문정공의 선우후락이라는 말은 여기에 뿌리를 둔다(范文正公先憂後樂之語本此)”고 했다.[8] 《성어전》이 첫째 뜻의 어본(語本)으로 《대대례기》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2]

다만 두 말은 초점이 다르다. 《대대례기》는 개인이 일을 미리 걱정해 두면 뒤에 편하다는 처세의 말이고, 범중엄은 천하 사람의 근심을 자기 근심보다 앞세우는 공인의 마음가짐을 말했다. 오늘날 한국어의 선우후락은 범중엄의 뜻으로 쓴다.[1]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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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15년(1433) 7월, 우의정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유관(柳寬)에게 내린 제문에 “먼저 근심하고 뒤에 즐거워하여 기쁨과 슬픔을 이미 함께하였다(先憂後樂,旣休戚之與同)”는 구절이 있다. 청렴하기로 이름난 원로 대신을 기리는 말로 쓴 것이다.[9]

  • 장애가 나면 가장 먼저 달려오고 복구가 끝나면 맨 나중에 퇴근하는 운영팀장은 선우후락을 몸으로 보여 주었다.
  • 공직자라면 선우후락의 자세로 국민의 어려움부터 살펴야 한다.
  • 일본 도쿄의 고이시카와 고라쿠엔(小石川後楽園)은 미토 번주 도쿠가와 미쓰쿠니(徳川光圀)의 명으로 명나라 유학자 주순수(朱舜水)가 〈악양루기〉의 선우후락에서 ‘후락(後楽)’을 따서 이름 지었다.[10] 정원 부근에는 도쿄 돔과 유원지가 들어서 있어, 이 일대를 흔히 고라쿠엔이라고 부른다.[11]
  • 일본 3대 정원의 하나인 오카야마의 고라쿠엔(後楽園)은 에도 시대에는 오카야마성 뒤에 있다고 하여 ‘고코엔(御後園)’이라 불렸는데, 1871년 선우후락의 뜻을 따서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11]
  •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復旦大學)의 교가에는 “학교를 굳게 하고 나라를 지키며, 선우후락으로 서로 힘쓰자(鞏固學校,維護國家,先憂後樂交相勉)”라는 구절이 있다.[12]
  • 《일본국어대사전》이 드는 ‘선우후락’의 첫 용례는 1951년 언론인 오기야 쇼조(扇谷正造)의 글이지만,[3] 도쿄 고라쿠엔의 이름이 17세기에 이미 이 말에서 나왔으므로 일본에서는 훨씬 전부터 알려진 말이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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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공후사(先公後私): 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룸.
  • 멸사봉공(滅私奉公):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적인 일을 위해 힘써 일함.
  • 고진감래(苦盡甘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대대례기》 쪽의 뜻(먼저 고생하고 뒤에 즐거움)과 통한다.
  •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울 때의 일을 생각함.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선우후락”,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4%A0%EC%9A%B0%ED%9B%84%EB%9D%BD, 확인날짜=2026-09-30.
  2.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先憂後樂”,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604, 확인날짜=2026-09-30.
  3.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先憂後楽”,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5%88%E6%86%82%E5%BE%8C%E6%A5%BD, 확인날짜=2026-09-30.
  4. ↑ 범중엄(范仲淹), 〈악양루기(岳陽樓記)〉, 《범문정공집(范文正公集)》 권7.
  5. ↑ 《송사(宋史)》 권314 〈범중엄전(范仲淹傳)〉 논찬.
  6. ↑ 《대대례기(大戴禮記)》 〈증자입사(曾子立事)〉.
  7. ↑ 유향(劉向), 《설원(說苑)》 권16 〈설총(說叢)〉.
  8. ↑ 양신(楊慎), 《단연속록(丹鉛續錄)》 권6.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61권, 세종 15년 7월 12일 계해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507012_003, 확인날짜=2026-09-30.
  10. ↑ 《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닛포니카)》, “小石川後楽園”,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B0%8F%E7%9F%B3%E5%B7%9D%E5%BE%8C%E6%A5%BD%E5%9C%92, 확인날짜=2026-09-30.
  11. ↑ 11.0 11.1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일본역사지명대계(日本歴史地名大系)》, “後楽園”,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BE%8C%E6%A5%BD%E5%9C%92, 확인날짜=2026-09-30.
  12. ↑ 〈복단대학 교가(復旦大學校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