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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苦盡甘來)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옴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어려운 시기를 참고 견디면 결국 좋은 날이 온다는 격려와 위로의 말로 널리 쓰인다. 시험, 재활, 창업처럼 오래 버텨야 하는 일을 마친 뒤 그간의 고생을 돌아볼 때나,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북돋울 때 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과 뜻이 통한다. 반대 방향의 말로는 흥진비래(興盡悲來)가 있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쓴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어렵고 괴로운 처지가 끝나고 점차 좋은 형편으로 들어섬’으로 풀고, 가까운 말로 ‘비극태래(否極泰來)’, 반대말로 ‘복과재생(福過災生)’과 ‘낙극생비(樂極生悲)’를 든다. 관련 항목으로는 앞뒤를 뒤집은 ‘감진고래(甘盡苦來)’를 든다.[2]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송·금·원 시대의 설창(說唱) 문학과 희곡에 자주 쓰이던 표현이 성어로 굳은 것이다.[2]

《성어전》은 말의 근원을 설창 문학 제궁조(諸宮調)의 하나인 《유지원제궁조(劉知遠諸宮調)》 제12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후한(後漢)을 세운 유지원(劉知遠)이 가난하던 시절 이문규(李文奎)의 집에 머물며 그 딸 삼랑(三娘)과 혼인했으나, 처가 식구들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집을 떠나 군에 들어갔다. 뒤에 공을 세워 높은 자리에 오른 유지원이 13년 동안 모진 고생을 견딘 삼랑을 데려오자, 삼랑은 이렇게 말한다.[2]

受辛懃打罵也甘心,又爭知卻有今日。劉郎豪貴,獨掌九州元帥,方知是苦盡甘來,自古道果無虛矣。

“갖은 고생과 매질과 욕설도 달게 받았지만,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유랑께서 귀하게 되어 홀로 천하의 원수가 되셨으니, 이제야 쓴 것이 다하고 단 것이 온다는 옛말이 과연 헛되지 않음을 알겠습니다.”[2]

나무위키 등에는 이 말이 원나라 왕실보(王實甫)의 《서상기(西廂記)》에 처음 나온다고 소개되어 있으나, 《성어전》은 《서상기》를 그보다 앞선 《유지원제궁조》에 이어지는 용례로 든다. 《서상기》에서는 장생(張生)이 앵앵(鶯鶯)을 향한 마음을 두고 “진심으로 참고 정성으로 버티지 않았다면 어찌 이 그리움이 쓴 것 다하고 단 것 오는 데 이르렀겠는가(若不是真心耐,志誠捱,怎能勾這相思苦盡甘來)”라고 노래한다.[2] 원나라 관한경(關漢卿)의 《호접몽(蝴蝶夢)》, 정덕휘(鄭德輝)의 《왕찬등루(王粲登樓)》, 명나라 소설 《서유기》 제9회, 《유세명언(喻世明言)》 등에도 두루 쓰였다.[2]

《성어전》은 ‘고진첨래(苦盡甜來)’도 같은 뜻의 말로 올리고, 원나라 시혜(施惠)의 《유규기(幽閨記)》와 《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의 용례를 든다.[3]

한국 문헌의 용례

편집 원본 편집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보이지 않지만, 조선 문인의 글에는 16세기부터 나온다.

  • 유배와 벼슬살이를 두루 겪은 유희춘(柳希春)은 시 〈침상구점(枕上口占)〉에서 “남쪽 바다 북쪽 바다를 몇 번이나 부평초처럼 떠돌았던가(南溟北海幾萍蓬)”라는 구절 바로 뒤에 “苦盡甘來”를 썼다.[4]
  • 황택후(黃宅厚)는 벌을 치는 법을 논한 〈축봉설(畜蜂說)〉에서 꿀을 얻으려면 벌을 해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두고 “이것이 살면 저것이 죽고,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것은 비록 속된 말이지만 이치가 있다(此生彼殺。苦盡甘來。雖俚俗之言。亦理也)”고 썼다.[5]
  • 정재경(鄭在褧)은 처음에는 쓰고 나중에 단 감람(橄欖) 열매를 호로 삼은 사람에게 지어 준 〈감암명(橄菴銘)〉에서 “속담에 ‘고진감래’라 하고, 전(傳)에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은 뒤로 한다(先難後獲)’고 했다”고 썼다.[6]

황택후와 정재경이 모두 ‘속된 말’, ‘속담(諺)’이라고 한 것을 보면, 조선 후기에는 이 말이 문자로 된 격언이라기보다 입에 붙은 속담처럼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苦 고 쓰다, 괴롭다 쓴 것, 고생
盡 진 다하다 다하다, 끝나다
甘 감 달다 단 것, 즐거움
來 래 오다 찾아오다
  • 3년간 적자를 견디며 서비스를 다듬은 끝에 흑자로 돌아섰으니 고진감래라 할 만하다.
  • 몇 달 동안 밤을 새워 가며 레거시 시스템을 옮긴 팀은 이전을 마친 날 고진감래라며 서로를 격려했다.
  • 긴 재활을 이겨 내고 복귀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그에게 고진감래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 소맥 아래에 콜라를 가두어 첫맛은 쓰고 끝맛은 달게 만든 ‘고진감래주’라는 폭탄주가 있다. 2009년 신문 기사에 따르면 젊은 층과 여성 손님에게 인기를 끌어, 서울의 한 술집에서는 손님 열 팀 가운데 두세 팀 이상이 이 술을 찾았다고 한다.[7]
  • 박찬욱·박찬경 형제 감독은 시민과 외국인이 찍어 보낸 서울 영상을 엮어 영화 《고진감래(Bitter, Sweet, Seoul)》(2014)를 만들었다. 서울시의 홍보 프로젝트 ‘우리의 영화, 서울’의 하나였다. 98일 동안 공모한 영상 1만 1852편 가운데 154편이 쓰였다.[8][9]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고진첨래(苦盡甜來): 고진감래와 같은 뜻의 중국어 표현.
  • 비극태래(否極泰來): 나쁜 운이 다하면 좋은 운이 옴. 《성어전》이 가까운 말로 든다.[2]
  • 전화위복(轉禍爲福): 재앙과 근심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됨.
  • 반대 의미: 흥진비래(興盡悲來), 감진고래(甘盡苦來), 낙극생비(樂極生悲)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고진감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3%A0%EC%A7%84%EA%B0%90%EB%9E%98, 확인날짜=2026-09-26.
  2. ↑ 2.0 2.1 2.2 2.3 2.4 2.5 2.6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苦盡甘來”,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71, 확인날짜=2026-09-26.
  3.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苦盡甜來”,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298, 확인날짜=2026-09-26.
  4.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유희춘, 《미암집(眉巖集)》 권2 〈침상구점(枕上口占)〉,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57A_0040_060_0090, 확인날짜=2026-09-26.
  5.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황택후, 《화곡집(華谷集)》 〈축봉설(畜蜂說)〉,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00A_0050_020_0040, 확인날짜=2026-09-26.
  6.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정재경, 《신와집(愼窩集)》 〈감암명(橄菴銘)〉,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1178A_0060_040_0010, 확인날짜=2026-09-26.
  7. ↑ “‘쌉쌀 달콤’ 고진감래주 아세요”, 서울신문, 2009-06-05,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605500002, 확인날짜=2026-09-26.
  8. ↑ “박찬욱·찬경 형제 감독이 만든 이색적인 영화 ‘고진감래’”, 국민일보, 2014-02-11,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8025854, 확인날짜=2026-09-26.
  9. ↑ “국내 최초 클라우드 소싱 영화 ‘고진감래’ 공개”, 한국일보, 2014-02-11,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1402111256287183,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