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진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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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진비래(興盡悲來)는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세상일은 돌고 돌아 좋은 때가 가면 궂은 때가 온다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당나라 초기의 문인 왕발(王勃)의 〈등왕각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래 제목은 〈추일등홍부등왕각전별서(秋日登洪府滕王閣餞別序)〉로, 홍주(洪州)의 등왕각에서 열린 잔치에 참석해 지은 시의 서문이다.[3]
遙襟甫暢,逸興遄飛。爽籟發而清風生,纖歌凝而白雲遏。睢園綠竹,氣凌彭澤之樽;鄴水朱華,光照臨川之筆。四美具,二難并。窮睇眄於中天,極娛遊於暇日。天高地迥,覺宇宙之無窮;興盡悲來,識盈虛之有數。
“먼 곳을 바라보는 마음이 막 트이자 흥취가 날 듯이 일어난다. 퉁소 소리가 울리니 맑은 바람이 일고, 가는 노랫소리가 머무니 흰 구름이 멈춘다. …… 네 가지 아름다움(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즐기는 마음, 즐거운 일)이 갖추어지고, 두 가지 어려움(어진 주인과 좋은 손님)이 함께 모였다. 하늘 가운데를 끝까지 바라보고, 한가한 날에 즐거움을 다한다. 하늘은 높고 땅은 아득하니 우주가 끝없음을 깨닫고, 흥이 다하자 슬픔이 밀려오니 차고 기우는 데에 정해진 운수가 있음을 안다.”[3]
원문의 ‘흥진비래’는 잔치의 흥이 절정에 이른 뒤 문득 밀려드는 쓸쓸함을 말한 것이다. 왕발은 이어서 멀리 장안을 바라보며 “관산은 넘기 어려우니 길 잃은 사람을 누가 슬퍼하랴(關山難越,誰悲失路之人)”라며 벼슬길이 막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3] 뒤 구절 “識盈虛之有數”가 말하듯,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오는 것을 달이 차고 기우는 이치에 빗대었다. 오늘날 한국어에서 이 말을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이 온다’는 세상사 순환의 이치로 쓰는 것은 이 뒤 구절의 뜻까지 함께 담은 쓰임이다.
《구당서》에 따르면 왕발은 여섯 살에 글을 지을 만큼 재주가 뛰어났다. 패왕(沛王) 이현(李賢)의 부(府)에서 일할 때 왕자들이 닭싸움을 벌이자 장난으로 〈격영왕계문(檄英王雞文)〉을 지었는데, 당 고종이 이를 보고 “왕자들 사이를 이간하는 조짐”이라며 노하여 그를 부에서 내쫓았다. 그 뒤 괵주(虢州) 참군이 되었을 때는 죄를 지은 관노 조달(曹達)을 숨겨 주었다가 일이 드러날까 두려워 그를 죽였고, 사형에 처해질 뻔했다가 사면을 받아 관적에서 이름이 지워졌다. 아버지 왕복치(王福畤)는 이 일에 연좌되어 교지(交趾) 현령으로 좌천되었다.[4] 나무위키 등에는 닭싸움 격문 때문에 왕발이 유배되고 아버지도 좌천된 것처럼 소개되어 있으나, 《구당서》와 《신당서》는 모두 아버지의 좌천을 관노 살해 사건의 연좌로 기록하고 있다.[4][5]
왕발은 교지로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바다를 건너다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4] 〈등왕각서〉는 그 여정 중에 홍주를 지나며 지은 글이다. 《신당서》는 이 잔치에 얽힌 이야기를 전한다. 홍주 도독은 사위에게 미리 서문을 지어 두게 하고는 짐짓 손님들에게 종이와 붓을 돌렸는데, 모두 사양하는 가운데 왕발만 거리낌 없이 붓을 받았다. 도독은 불쾌해 자리를 떴다가 아전을 시켜 왕발이 쓰는 대로 알려 오게 했는데, 구절이 올라올수록 더욱 기이하자 “천재로다”라며 끝까지 짓게 하고 즐거움을 다한 뒤 잔치를 마쳤다고 한다.[5]
〈등왕각서〉는 조선에서도 널리 읽혀 ‘흥진비래’가 자주 인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보이지 않지만 문집에는 여러 용례가 있다.
- 백광홍(白光弘)이 1555년 평안도 평사로 부임해 지은 가사 〈관서별곡(關西別曲)〉에 “天高地逈고 興盡悲來니”라는 대목이 있다. 〈등왕각서〉의 두 구를 우리말 가사에 그대로 녹인 것이다.[6]
- 심희수(沈喜壽)는 기영회(耆英會) 시의 서문에서 잔치가 즐거울수록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니, 지나치게 즐기지 말라는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興盡悲來。不能無無已太康之懼)”고 썼다.[7]
- 이희조(李喜朝)는 《소학》 주석(마씨 설)의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뒤집힌다(樂極則反)”는 풀이를 논하면서 “이른바 흥진비래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8]
- 김만중(金萬重)의 소설 《구운몽(九雲夢)》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양소유가 어머니 류 부인을 여의는 대목은 “태평이 극에 이르면 막힘이 오는 것은 하늘의 도리이고,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는 것은 사람 일의 떳떳함이다(泰極否至,天道之恆。興盡悲來,人事之常也)”라는 말로 시작한다.[9]
| 한자 | 음 | 기본 의미 | 성어 안의 의미 |
|---|---|---|---|
| 興 | 흥 | 일어나다, 흥취 | 흥겨움, 즐거움 |
| 盡 | 진 | 다하다 | 다하다, 끝나다 |
| 悲 | 비 | 슬프다 | 슬픔 |
| 來 | 래 | 오다 | 닥쳐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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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흥진비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D%A5%EC%A7%84%EB%B9%84%EB%9E%98, 확인날짜=2026-09-26.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興盡悲來”,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510, 확인날짜=2026-09-26.
- ↑ 3.0 3.1 3.2 왕발, 〈추일등홍부등왕각전별서(秋日登洪府滕王閣餞別序)〉, 《왕자안집(王子安集)》 권5.
- ↑ 4.0 4.1 4.2 《구당서(舊唐書)》 권190상 〈문원전 상(文苑傳上)·왕발〉.
- ↑ 5.0 5.1 《신당서(新唐書)》 권201 〈문예전 상(文藝傳上)·왕발〉.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백광홍, 《기봉집(岐峯集)》 권4 〈관서별곡(關西別曲)〉,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688A_0050_020_0010, 확인날짜=2026-09-26.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심희수, 《일송집(一松集)》 〈기영회시 병서(耆英會詩竝序)〉,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239A_0040_010_0760, 확인날짜=2026-09-26.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희조, 《지촌집(芝村集)》 〈소학차의(小學箚疑)〉,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445A_0310_010_0040, 확인날짜=2026-09-26.
- ↑ 김만중, 《구운몽(九雲夢)》 제15회.
- ↑ 10.0 10.1 10.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樂極生悲”,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24, 확인날짜=2026-09-26.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호사다마”,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8%B8%EC%82%AC%EB%8B%A4%EB%A7%88,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