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더 많은 작업
일희일비(一喜一悲)는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슬퍼함, 또는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일어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순서를 바꾼 ‘일비일희(一悲一喜)’도 같은 말로 사전에 올라 있다.[2]
오늘날에는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말라”, “여론 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처럼, 상황이 조금 바뀔 때마다 기뻐했다 슬퍼했다 하며 마음이 흔들리는 태도를 경계하는 말로 많이 쓴다. 우리말샘은 명사 외에 동사 ‘일희일비하다’(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슬퍼하다)와 형용사 ‘일희일비하다’(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슬프다)를 따로 싣는다.[3] 발음은 [일히일비]이다.
옛 문헌에서는 두 감정이 ‘번갈아’ 오는 것보다 한 가지 일을 두고 기쁨과 슬픔이 ‘한꺼번에’ 드는 경우에 더 자주 썼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 기쁘면서도 곧 헤어져야 해서 슬픈 장면, 돌아가신 어버이의 글씨를 보고 반가우면서도 서러운 장면이 대표적이다(아래 유래).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을 아우르는 희로애락(喜怒哀樂)처럼 감정을 묶어 부르는 말이지만, 일희일비는 그 가운데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순간을 가리킨다.
같은 뜻을 일본어에서는 주로 ‘一喜一憂(いっきいちゆう)’, 곧 기쁨과 ‘근심’이 엇갈린다고 말한다(아래 다른 언어의 표현).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글자 뜻 그대로의 표현이다. 다만 네 글자 형태는 아주 이른 시기의 한문 불전에서부터 확인된다.
서진(西晉)의 역경승 축법호(竺法護)가 옮긴 《불설녹모경(佛說鹿母經)》에 이미 나온다. 사냥꾼의 덫에 걸린 어미 사슴이 새끼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고 돌아와 죽겠다고 약속하자, 사냥꾼이 그 말을 믿고 놓아준다. 어미가 새끼에게 달려가는 장면이다.
於是,鹿母出弶得去,且顧且馳,到其子所,低頭嗅子,舐其身體,一喜一悲,踟蹰徘徊,嘆息啼吟。
“이에 어미 사슴은 덫에서 풀려나 돌아보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새끼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머리를 숙여 새끼의 냄새를 맡고 몸을 핥으며,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슬퍼하며 머뭇거리고 서성이다 탄식하며 울었다.”[4]
새끼를 다시 만난 기쁨과 곧 죽으러 돌아가야 하는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장면이다. 같은 경의 다른 본에는 순서를 바꾼 “一悲一喜”로 되어 있다.[4]
그 뒤에도 같은 쓰임이 이어진다.
- 채염(蔡琰)이 지었다고 전하는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 제14박은 흉노 땅에 두고 온 아들을 꿈에 만나는 대목을 “꿈속에서 손을 잡으니 한편 기쁘고 한편 슬프다가, 깨고 나니 가슴 아픔이 그칠 때가 없구나(夢中執手兮一喜一悲,覺後痛吾心兮無休歇時)”라고 노래한다.[5] 이 노래가 정말 채염의 작품인지는 예부터 논란이 있다.
- 당나라 왕거(王琚)의 〈미인편(美女篇)〉에는 “잠깐 얼굴을 펴다가 문득 표정을 거두니, 한 번 슬프고 한 번 기쁜 것이 모두 어울린다(須臾破顏倏斂態,一悲一喜倂相宜)”는 구절이 있다.[6]
- 둔황에서 나온 당나라 강창 〈추호변문(秋胡變文)〉에는 벼슬을 하던 추호가 어머니를 뵈러 가도록 왕의 허락을 받는 장면에서 “추호는 왕명을 받들고 한편 기쁘고 한편 슬펐다. 슬픈 것은 왕의 조정을 떠나는 것이요, 기쁜 것은 어머니를 뵙게 된 것이었다(一喜一悲,悲乃違背王庭,喜乃得見慈母)”라고 풀어 놓았다.[7]
이처럼 옛 한문의 일희일비는 대개 ‘두 감정이 한꺼번에 듦’을 그린 말이다.
조선 문인들도 같은 뜻으로 즐겨 썼다. 홍귀달(洪貴達, 1438~1504)은 상주 목사로 부임하는 유문통을 보내는 글에서, 자신도 예전에 어버이를 모시려고 경주 부윤을 청해 나간 적이 있는데 이제 어버이가 돌아가셔서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이별에 즈음하여 한편 기쁘고 한편 슬프다(於其別,一喜一悲焉)”고 적었다.[8]
《조선왕조실록》에는 1648년(인조 26) 승정원이 선조의 글씨와 그림을 바친 사람들에게 6품 벼슬을 준 것을 문제 삼으며 “전하께서 선왕의 손때 묻은 글씨를 보시고 한편 기쁘고 한편 슬퍼하시는 것은 스스로 그칠 수 없는 일임을 신들도 잘 압니다(臣等固知殿下一喜一悲,自有所不能已者矣)”라고 아뢴 대목이 원문에 남아 있다.[9]
근대 잡지와 신문에서도 자주 보인다. 1906년 《태극학보》에는 6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유학생이 “일희일비(一喜一悲)에 그칠 바를 모르겠다”고 쓴 글이 실렸고,[10] 1930년대 《동아일보》는 도청 이전이나 가뭄 끝의 비 소식을 두고 “일희일비의 두 곳 주민”, “농가에선 일희일비” 같은 제목을 달았다.[11]
일본어에서는 같은 자리에 주로 ‘一喜一憂’를 쓴다.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이를 “기쁨과 근심이 번갈아 찾아옴. 상황의 변화에 따라 기뻐하거나 걱정함”으로 풀고, 메이지 초의 《근세기문(近世紀聞)》(1875~81)을 첫 용례로 들며, 중국 문헌으로 《도덕지귀론(道德指歸論)》을 든다.[12] 전한 엄준(嚴遵)이 지었다고 전하는 《노자지귀(老子指歸)》 〈명신숙친편(名身孰親篇)〉에는 명예와 이익에 매달리는 사람을 두고 “잃으면 근심하고 얻으면 기뻐한다. 한 번 기쁘고 한 번 근심하니 혼백이 떠돌고, 한 번 근심하고 한 번 기뻐하니 정신이 떠나간다(失之而憂,得之而喜。一喜一憂,魂魄浮遊;一憂一喜,神明去矣)”는 대목이 있다.[13] 오늘날 한국어 일희일비의 ‘상황이 바뀔 때마다 흔들림’이라는 쓰임은 이 一喜一憂의 쓰임과 거의 같다.
한국어에서도 ‘일희일우(一喜一憂)’라는 말이 쓰인 적이 있다. 1575년 이이(李珥)는 선조가 “학문을 하고 싶지만 일이 많아 겨를이 없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신은 이 말을 듣고 한편 기쁘고 한편 걱정스럽습니다. 기쁜 것은 성상께 학문할 뜻이 있으셔서이고, 걱정스러운 것은 학문의 이치를 살피지 못하셔서입니다(臣聞此言,一喜一憂。喜者喜聖上有學問之志也;憂者憂上不察學問之理也)”라고 아뢰었다.[14]
- 장애 대응은 지표 하나가 잠깐 좋아지거나 나빠질 때마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추세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 출시 첫날 내려받기 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한 달 뒤 남아 있는 사용자 수를 보자.
-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사이 세상을 떠난 친구 소식도 들어 일희일비한 하루였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희일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D%9D%AC%EC%9D%BC%EB%B9%84, 확인날짜=2026-10-12.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비일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B%B9%84%EC%9D%BC%ED%9D%AC, 확인날짜=2026-10-12.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일희일비”,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C%9D%BC%ED%9D%AC%EC%9D%BC%EB%B9%84, 확인날짜=2026-10-12.
- ↑ 4.0 4.1 축법호(竺法護) 역, 《불설녹모경(佛說鹿母經)》(대정신수대장경 T0182b). 같은 경의 다른 본(T0182a 《녹모경》)에는 “一悲一喜”로 되어 있다. CBETA 중화전자불전협회, https://cbetaonline.dila.edu.tw/T0182b, 확인날짜=2026-10-12.
- ↑ 주희(朱熹), 《초사후어(楚辭後語)》 권3; 곽무천(郭茂倩), 《악부시집(樂府詩集)》 권59.
- ↑ 《전당시(全唐詩)》 권98, 왕거(王琚) 〈미인편(美女篇)〉.
- ↑ 〈추호변문(秋胡變文)〉, 왕중민(王重民) 등 편, 《둔황변문집(敦煌變文集)》 권2.
- ↑ 홍귀달(洪貴達), 《허백정집(虛白亭集)》 문집 권2 〈송유목사문통부임상주서(送柳牧使文通赴任尙州序)〉,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자료ID ITKC_MO_0071A_0030_020_0150,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49권, 인조 26년 윤3월 27일 임진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2603127_001,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장홍식(張弘植), “我國의 實業觀(寄書)”, 《태극학보》 제2호, 1906년 9월 24일, https://db.history.go.kr/id/ma_007_0020_0220,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長城郡에도 喜雨! 農家에선 一喜一悲”, 《동아일보》 1935년 8월 11일, https://db.history.go.kr/id/npda_1935_08_11_w0002_0150, 확인날짜=2026-10-12.
- ↑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사자숙어를 아는 사전(四字熟語を知る辞典)》, “一喜一憂”,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0%E5%96%9C%E4%B8%80%E6%86%82, 확인날짜=2026-10-12.
- ↑ 엄준(嚴遵), 《노자지귀(老子指歸)》 〈명신숙친편(名身孰親篇)〉.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9권, 선조 8년 5월 11일 무신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b_10805011_003,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현종실록》 10권, 현종 6년 5월 28일 계축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ra_10605028_002,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忠南道廳移轉確定과 一喜一悲의 兩處住民, 悲憤의 公州!”, 《동아일보》 1931년 1월 16일, https://db.history.go.kr/id/npda_1931_01_16_v0002_0280, 확인날짜=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