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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후사(先公後私)는 공적인 일을 앞세우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룬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1]

선공후사는 공직자나 조직 구성원이 개인 사정보다 맡은 공무를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윤리를 말할 때 쓰인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이를 변형해 개인보다 소속 정당을 앞세운다는 뜻의 ‘선당후사(先黨後私)’라는 말도 흔히 쓴다.[2]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先公後私, xiān gōng hòu sī)로 쓴다.

‘先公後私’ 네 글자는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에 이미 두 번 나온다.

  • 위(魏) 명제의 조서: 두서(杜恕)가 올린 상소에 명제의 조서가 인용되어 있다. 명제는 “나라 일을 걱정하느라 사사로움을 잊는 사람(憂公忘私者)은 분명 없겠지만, 공을 먼저 하고 사를 뒤로 하는지만 보아도 곧 가려진다(但先公後私即自辨也)”고 했다. 두서는 이에 대해 신하의 능력을 가리는 근본은 임금이 사람을 제대로 쓰는 데 있다고 반박했다.[3]
  • 오(吳) 손권의 조서: 가화(嘉禾) 6년(237) 정월, 손권은 관리가 부모상을 당했다고 후임자에게 인계하지 않고 임지를 떠나는 일을 금하면서 “일이 많고 나라가 어려우니 무릇 관직에 있는 자는 저마다 절개를 다해 공을 먼저 하고 사를 뒤로 해야 한다(凡在官司,宜各盡節,先公後私)”고 했다.[4]

송나라 주희(朱熹)는 《맹자집주》에서 이 말로 정전제(井田制)를 설명했다. 맹자가 《시경》 〈소아·대전(大田)〉의 “우리 공전에 비를 내리시고 마침내 우리 사전에도 미치소서(雨我公田,遂及我私)”를 인용한 대목에 “공을 먼저 하고 사를 뒤로 한 것(先公而後私也)”이라 주를 달았고, “공전의 일을 마친 뒤에야 사전의 일을 한다(公事畢,然後敢治私事)”는 대목에는 “선공후사는 군자와 야인의 분수를 구별하는 것(先公後私,所以別君子野人之分也)”이라고 풀었다.[5]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소설 《삼국연의》 제43회와 명나라 육채(陸采)의 희곡 《회향기(懷香記)》 제37척을 용례로 든다.[6] 《삼국연의》에서 제갈량은 동오에 사신으로 가서 형 제갈근(諸葛瑾)을 만나자 “이미 유 예주(유비)를 섬기니 공을 먼저 하고 사를 뒤로 함이 마땅합니다. 공무를 마치지 못해 사사로운 일은 감히 돌보지 못했습니다(理宜先公後私。公事未畢,不敢及私)”라며 인사가 늦은 까닭을 댔다.[7]

흔히 함께 소개되는 이야기

편집 원본 편집

《사기》 〈염파·인상여 열전〉의 이야기가 선공후사의 유래로 자주 소개된다. 다만 원문에 ‘先公後私’ 네 글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8]

조(趙)나라 인상여(藺相如)가 진(秦)나라 왕 앞에서 조나라의 체면을 지킨 공으로 상경(上卿)이 되어 명장 염파(廉頗)보다 윗자리에 오르자, 염파는 “인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욕보이겠다”고 했다. 인상여는 조회 때마다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고 길에서 염파를 보면 수레를 돌려 숨었다. 부끄럽게 여긴 식객들이 떠나려 하자 인상여는 이렇게 말했다.

彊秦之所以不敢加兵於趙者,徒以吾兩人在也。今兩虎共鬥,其勢不俱生。吾所以為此者,以先國家之急而後私讎也。

“강한 진나라가 조나라를 감히 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호랑이가 싸우면 둘 다 살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지고 찾아가 사죄했고(육단부형, 肉袒負荊), 두 사람은 목숨을 함께할 만한 사이(문경지교, 刎頸之交)가 되었다.

고려의 최자(崔滋)는 이 대목을 제목으로 삼은 부(賦) 〈상여피염파이선국가지급부(相如避廉頗以先國家之急賦)〉를 남겼다.[9]

한국 문헌의 용례

편집 원본 편집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41건이 있다. 가장 이른 것은 성종 12년(1481) 4월 9일, 사헌부 집의 박숙달(朴叔達) 등이 승정원 관원들을 탄핵하며 “이 자리에 있는 자는 마땅히 공을 먼저 하고 사를 뒤로 하여 하루하루 삼가야 한다(居是任者,所宜先公後私,日愼一日)”고 한 차자이다.[10] 정탁(鄭琢)의 《약포집》에 실린 동네 계(契)의 규약에도 서로 권면할 조목으로 ‘선공후사’가 들어 있다.[11]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先 선 먼저 먼저 하다, 앞세우다
公 공 공평하다, 공적인 것 공적인 일
後 후 뒤 뒤로 미루다
私 사 사사롭다 사사로운 일
  • 휴가 중이던 담당자가 선공후사의 자세로 복귀해 장애를 수습했지만, 한 사람에게 기대는 구조는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 공직자에게 선공후사는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멸사봉공(滅私奉公):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여 힘씀.
  • 대공무사(大公無私), 공평무사(公平無私): 공정하여 사사로움이 없음.
  • 우공망사(憂公忘私): 나라 일을 걱정하느라 사사로운 일을 잊음. 위 명제의 조서에 함께 나온다.
  • 배사향공(背私向公): 사사로움을 등지고 공을 향함.
  • 선당후사(先黨後私): 개인보다 당을 앞세움. 한국 정치권에서 쓰는 변형이다.
  • 반대 의미: 가공제사(假公濟私): 공적인 일을 핑계로 사사로운 이익을 챙김.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선공후사”,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4%A0%EA%B3%B5%ED%9B%84%EC%82%AC, 확인날짜=2026-09-26.
  2. ↑ 조진래, “선당후사(先黨後私)”, 헤럴드경제, 2014-07-14, http://mbiz.heraldcorp.com/view.php?ud=20140714000252, 확인날짜=2026-09-26.
  3. ↑ 진수, 《삼국지》 〈위서(魏書)·두서전(杜恕傳)〉.
  4. ↑ 진수, 《삼국지》 〈오서(吳書)·오주전(吳主傳)〉.
  5. ↑ 주희, 《맹자집주(孟子集注)》 〈등문공 상(滕文公上)〉.
  6.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先公後私”,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6728, 확인날짜=2026-09-26.
  7. ↑ 나관중, 《삼국연의》 제43회.
  8. ↑ 사마천, 《사기》 권81 〈염파·인상여 열전(廉頗藺相如列傳)〉.
  9. ↑ 최자, 〈상여피염파이선국가지급부(相如避廉頗以先國家之急賦)〉.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28권, 성종 12년 4월 9일 계축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204009_002, 확인날짜=2026-09-26.
  11.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정탁, 《약포집(藥圃集)》 권3 〈동계약조(洞契約條)〉,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84A_0040_050_0020,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