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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지교(刎頸之交)는 서로를 위해서라면 목이 잘린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사이, 또는 그런 벗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 중국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의 고사에서 나왔다.[1] ‘문경지우(刎頸之友)’라고도 한다.[2]

‘문경(刎頸)’은 칼로 목을 벤다는 뜻이다. 문경지교는 관포지교와 함께 깊은 우정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성어로 꼽히지만, 유래가 된 이야기는 처음부터 친한 두 사람이 아니라 반목하던 두 사람이 화해해 생사를 함께하는 사이가 된 이야기라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보다 나라와 공동체의 일을 앞세우는 태도를 말할 때도 함께 인용된다.

중국어에서도 같은 한자로 쓴다.[3] 일본어에서는 ‘刎頸の交わり(ふんけいのまじわり)’라고 한다.[4]

《사기(史記)》 권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온다.[5]

조나라 혜문왕(惠文王) 때 인상여는 진(秦)나라에 화씨벽(和氏璧)을 온전히 지켜 돌아오고, 민지(澠池)의 회맹에서 진나라 왕에게 맞서 조나라 왕의 체면을 지켰다. 그 공으로 인상여가 상경(上卿)에 올라 지위가 염파보다 높아지자, 싸움터에서 큰 공을 세워 온 명장 염파는 이렇게 불평했다.

廉頗曰:「我為趙將,有攻城野戰之大功,而藺相如徒以口舌為勞,而位居我上,且相如素賤人,吾羞,不忍為之下。」宣言曰:「我見相如,必辱之。」

“나는 조나라 장수로서 성을 치고 들판에서 싸운 큰 공이 있는데, 인상여는 한낱 혀를 놀린 수고로 지위가 나보다 위에 있다. 게다가 인상여는 본래 천한 사람이니, 나는 부끄러워 차마 그 아래에 있을 수 없다.” 그러고는 “인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욕을 보이겠다”고 떠벌렸다.

인상여는 이 말을 듣고 조회 때마다 병을 핑계 대며 염파와 자리를 다투지 않았고, 길에서 염파를 보면 수레를 돌려 피했다. 부끄럽게 여긴 식객들이 떠나겠다고 하자 인상여가 물었다. “그대들이 보기에 염 장군과 진나라 왕 중에 누가 더 무서운가?” 식객들이 진나라 왕만 못하다고 답하자 인상여는 이렇게 말했다.

相如曰:「夫以秦王之威,而相如廷叱之,辱其群臣,相如雖駑,獨畏廉將軍哉?顧吾念之,彊秦之所以不敢加兵於趙者,徒以吾兩人在也。今兩虎共鬥,其勢不俱生。吾所以為此者,以先國家之急而後私讎也。」

“진나라 왕의 위세 앞에서도 나는 조정에서 그를 꾸짖고 그 신하들을 욕보였다. 내가 아무리 둔하다 한들 유독 염 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에 군사를 보내지 못하는 것은 오직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면 형세상 둘 다 살 수는 없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나라의 급한 일을 앞세우고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 돌리기 때문이다.”

廉頗聞之,肉袒負荊,因賓客至藺相如門謝罪。曰:「鄙賤之人,不知將軍寬之至此也。」卒相與驩,為刎頸之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짊어진 채 빈객을 통해 인상여의 집 문 앞에 가서 사죄했다. “비천한 사람이 장군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을 몰랐습니다.” 두 사람은 마침내 기꺼이 화해하고 문경지교를 맺었다.[5] 염파가 가시나무를 지고 죄를 청한 이 대목에서 ‘부형청죄(負荊請罪)’라는 성어도 나왔다.[3]

《성어전》은 《한서》 〈괴통전〉, 〈제갈풍전〉, 《남사》, 《수서》, 《구당서》, 명·청대 희곡과 수필 등 여러 문헌을 용례로 든다. 이 가운데 《수서》 〈이밀전〉은 이밀(李密)이 양현감(楊玄感)과 문경지교를 맺었다고 적었고, 청나라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에서 “선비라면 반드시 마음을 터놓는 벗(密友)이 있어야 하지만, 밀우가 꼭 문경지교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3] 후한의 염범(廉范)은 낙양의 경홍(慶鴻)과 문경지교를 맺어, 당시 사람들이 “앞에는 관중과 포숙이 있고, 뒤에는 경홍과 염범이 있다(前有管鮑,後有慶廉)”고 일컬었다.[6] 서진의 손초(孫楚)가 지은 위(魏)나라 장수 견초(牽招)의 비문에는 견초가 젊어서 하북에서 유비(劉備)와 함께 자라며 문경지교를 맺었으나, 뒤에 견초는 조조를 섬기고 유비는 촉한에 자리를 잡았다는 대목이 있다(初,君與劉備少長河朔,英雄同契,爲刎頸之交……俄而委質于太祖,備遂鼎足于蜀漢).[7] ‘문경교(刎頸交)’, ‘문경지교(刎頸至交)’ 같은 변이형도 쓰였다.[8]

한국 문헌의 용례

편집 원본 편집
  • 《조선왕조실록》 성종 13년(1482) 7월 1일 기사에서, 대사헌 채수(蔡壽) 등이 자신들이 탄핵한 송영(宋瑛)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하자 성종은 “옛사람 중에는 서로 원수처럼 틈이 벌어졌다가도 끝내 문경지교가 된 이가 있다(古人有相仇隙者,終或爲刎頸之交)”며 물리쳤다.[9] 염파와 인상여의 고사를 그대로 끌어온 말이다.
  • 효종 1년(1650) 9월 3일 기사에서는 영의정 이경여(李敬輿)가 호조 판서 원두표(元斗杓)와 형조 판서 이시방(李時昉) 사이가 나쁘다는 말을 두고 “사람들이 염파와 인상여의 혐의가 있다고 하니 어찌 불행하지 않겠습니까. 염파와 인상여는 인품이 매우 높았기에 끝내 문경지교가 되었습니다”라며 화해를 권했다. 효종도 나라의 급한 일을 먼저 생각하라며 두 사람을 타일렀다.[10]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刎 문 (목을) 베다 목을 베다
頸 경 목 목
之 지 ~의 앞말이 뒷말을 꾸미게 함
交 교 사귀다 사귐, 교분
  • 문경지교를 맺고도 원수가 된 예가 《사기》에 함께 실려 있다. 장이(張耳)와 진여(陳餘)는 젊을 때 진여가 장이를 아버지처럼 섬기며 “서로 문경지교를 맺었다(兩人相與為刎頸交)”고 할 만큼 가까웠으나,[11] 거록(鉅鹿)에서 장이가 포위되었을 때 진여가 구원에 나서지 않은 일로 틀어졌다. 결국 한나라에 귀순한 장이는 한신과 함께 정형 전투에서 진여를 죽였다. 사마천은 두 사람이 “나라를 차지하고 권세를 다투자 끝내 서로 멸망시켰으니, 어찌 예전에는 그토록 서로 흠모하고 믿다가 뒤에는 그토록 등을 돌렸는가. 권세와 이익으로 사귄 것이 아니겠는가(豈非以勢利交哉)”라고 평했다.[11] 괴통(蒯通)은 한신에게 한나라를 믿지 말라고 설득하며 바로 이 두 사람의 예를 들었다.[12]
  • 같은 〈염파인상여열전〉에는 반대되는 사귐도 나온다. 염파가 장평(長平)에서 장수 자리를 잃자 식객들이 모두 떠났다가, 다시 장수로 기용되자 돌아왔다. 염파가 물러가라고 하자 한 식객은 “천하는 시장의 방식으로 사귑니다. 그대에게 권세가 있으면 따르고, 권세가 없으면 떠나는 것이 본래 이치인데 무엇을 원망하십니까(夫天下以市道交,君有勢,我則從君,君無勢則去,此固其理也,有何怨乎)”라고 답했다.[5] 이익만을 위한 사귐을 이르는 ‘시도지교(市道之交)’가 바로 이런 사귐이다.[13]
  • 일본 소설 가운데서는 야마모토 슈고로의 《전나무는 남았다(樅の木は残った)》(1954~56)에 “두 사람은 문경의 사귐이 있었는데도 문병을 가지 않았다”는 식의 용례가 사전에 실려 있다.[4]

유의어와 관련 표현

편집 원본 편집
  • 문경지우(刎頸之友): 문경지교와 같은 말.
  •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의 사귐. 우정이 아주 돈독한 사이.
  • 금란지교(金蘭之交): 쇠처럼 단단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
  • 금석지교(金石之交): 쇠나 돌처럼 변함없는 굳은 사귐.
  • 막역지우(莫逆之友): 거스름이 없는 아주 친한 벗.
  • 부형청죄(負荊請罪): 가시나무를 지고 죄를 청함.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함.
  • 반대 의미: 염량세태(炎涼世態), 시도지교(市道之交)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문경지교”,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C%B8%EA%B2%BD%EC%A7%80%EA%B5%90, 확인날짜=2026-09-26.
  2.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문경지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AC%B8%EA%B2%BD%EC%A7%80%EC%9A%B0, 확인날짜=2026-09-26.
  3. ↑ 3.0 3.1 3.2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刎頸之交”,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135, 확인날짜=2026-09-26.
  4. ↑ 4.0 4.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일본대백과전서(日本大百科全書)》, “刎頸の交わり”,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8%8E%E9%A0%B8%E3%81%AE%E4%BA%A4%E3%82%8F%E3%82%8A, 확인날짜=2026-09-26.
  5. ↑ 5.0 5.1 5.2 사마천, 《사기》 권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6. ↑ 《후한서(後漢書)》 〈염범전(廉范傳)〉. 《태평어람(太平御覽)》 권409 〈인사부(人事部)·교우(交友)〉에도 《화양국지(華陽國志)》를 인용해 실려 있다.
  7. ↑ 손초(孫楚), 〈견초비(牽招碑)〉, 《태평어람(太平御覽)》 권409 〈인사부(人事部)·교우(交友)〉 인용.
  8.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刎頸交”,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021, 확인날짜=2026-09-26.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43권, 성종 13년 7월 1일 무진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307001_004, 확인날짜=2026-09-26.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 5권, 효종 1년 9월 3일 갑인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qa_10109003_001, 확인날짜=2026-09-26.
  11. ↑ 11.0 11.1 사마천, 《사기》 권89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
  12. ↑ 사마천, 《사기》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13.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시도지교”,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B%9C%EB%8F%84%EC%A7%80%EA%B5%90, 확인날짜=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