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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구식(三旬九食)은 서른 날 동안 아홉 끼니밖에 먹지 못한다는 뜻으로, 몹시 가난한 처지를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순(旬)’은 열흘이므로 ‘삼순’은 한 달이다. 한 달에 아홉 끼, 곧 사흘에 한 끼 정도로 끼니를 잇는 형편을 말한다. 끼니를 거를 만큼 가난하다는 뜻으로 쓰지만, 옛 문헌에서는 그런 가난 속에서도 지조를 지킨 선비를 기리는 맥락에서 자주 쓰였다. 출전으로 꼽히는 이야기도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가 가난하면서도 남의 선물을 받지 않았다는 일화이다.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三 삼 셋 세
旬 순 열흘 열흘
九 구 아홉 아홉
食 식 먹다, 밥 끼니를 먹다

한나라 유향(劉向)이 엮은 《설원(說苑)》 〈입절(立節)〉에 자사가 위(衛)나라에 살 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2]

子思居於衛,縕袍無表,二旬而九食,田子方聞之,使人遺狐白之裘,恐其不受,因謂之曰:「吾假人,遂忘之;吾與人也,如棄之。」子思辭而不受,子方曰:「我有子無,何故不受?」子思曰:「伋聞之,妄與不如棄物於溝壑,伋雖貧也,不忍以身為溝壑,是以不敢當也。」

“자사가 위나라에 살 때 겉감도 없는 솜옷을 입고 스무 날에 아홉 끼를 먹었다. 전자방(田子方)이 이를 듣고 사람을 보내 여우 겨드랑이 흰 털로 만든 갖옷을 보내면서, 받지 않을까 걱정하여 ‘나는 남에게 빌려주면 곧 잊어버리고, 남에게 주면 버린 것처럼 여긴다’고 전하게 했다. 자사가 사양하고 받지 않자 전자방이 ‘나에게는 있고 그대에게는 없는데 어찌 받지 않는가’라고 했다. 자사는 ‘함부로 주는 것은 물건을 도랑에 버리는 것만 못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가난하기는 하지만 차마 제 몸을 도랑으로 삼을 수는 없으니 감히 받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오늘날 전하는 《설원》 판본(사부총간본·사고전서본)에는 이 대목이 ‘이순(二旬)’, 곧 스무 날로 되어 있다. 그런데 당나라 초의 유서 《예문유취(藝文類聚)》 권72와 송나라 초의 《태평어람(太平御覽)》 권849는 같은 《설원》의 문장을 “子思居於衛,緼袍無裏,三旬九食”으로 인용한다.[3] 삼순구식이라는 네 글자는 이 인용 계통의 문장과 같다.

도연명의 시와 네 글자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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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의 도연명(陶淵明)은 〈의고(擬古)〉 아홉 수 가운데 다섯째 수에서 가난한 선비를 이렇게 그렸다.[4]

東方有一士,被服常不完。三旬九遇食,十年著一冠。

“동쪽에 한 선비가 있으니, 입은 옷이 늘 성하지 않다. 서른 날에 아홉 번 끼니를 만나고, 십 년 동안 갓 하나를 쓴다.” 사고전서본 《도연명집》 등 후대 주석본은 이 구절에 “《설원》에 자사가 삼순구식했다(說苑子思三旬九食)”는 주를 달아 두 이야기를 이어 놓았다.[5]

네 글자가 그대로 쓰인 이른 예는 수나라 노사도(盧思道)의 〈노생론(勞生論)〉이다. 노사도는 벼슬살이의 고단함을 늘어놓으면서, 험한 변경 길을 말안장에 의지해 다니며 “바람에 머리 빗고 비에 몸 씻고 서른 날에 아홉 끼를 먹어도 감히 지쳤다고 하지 못했다(櫛風沐雨,三旬九食,不敢稱弊)”고 하고, 이런 고역은 그중 작은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이 글은 《수서(隋書)》 권57 〈노사도전〉에 실려 있다.[6]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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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손순효(孫舜孝)는 〈삼지당기(三止堂記)〉에서 “옛날 자사가 위나라에 살 때 겉감 없는 솜옷을 입고 삼순구식했다(昔子思居於衛。蘊袍無裏。三旬九食)”고 하여, 《예문유취》 계통의 ‘삼순’ 문장으로 자사의 일을 인용했다.[7] 이건(李健)은 세상을 떠난 벗을 꿈에서 보고 지은 시의 주에서 “흉년이 들어 삼순구식의 탄식을 면치 못했다(比歲大無。未免三旬九食之歎)”고 벗의 가난을 회고했다.[8]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1건이 있다. 1782년(정조 6) 10월, 정조는 경기·호서의 흉년으로 도성 백성이 굶주리는 것을 걱정하며 “가난한 선비와 쇠잔한 백성은 바늘을 팔아도 곡식을 얻지 못하고 칼과 송곳으로는 굶주림을 구할 수 없어, 서른 날에 아홉 끼를 먹고 천 가지 고생 끝에 한 번 밥을 먹는다(三旬九食,千辛一就)”고 하교하고 진휼을 서두르게 했다.[9]

  • 그는 삼순구식하는 처지에서도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 창업 초기에는 투자금이 바닥나 삼순구식이나 다름없는 살림으로 서버 비용부터 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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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반석죽(朝飯夕粥):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을 먹는다는 뜻으로, 몹시 가난한 살림.
  • 적빈여세(赤貧如洗): 물로 씻은 듯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함.
  • 초근목피(草根木皮):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라는 뜻으로, 맛이나 영양가가 없는 거친 음식.
  • 단사표음(簞食瓢飮): 한 그릇 밥과 한 바가지 물이라는 뜻으로,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
  • 호구지책(糊口之策): 겨우 끼니를 이어 가는 방책.
  • 반대 의미: 난의포식(暖衣飽食), 포식난의(飽食暖衣)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삼순구식”,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2%BC%EC%88%9C%EA%B5%AC%EC%8B%9D, 확인날짜=2026-10-03.
  2. ↑ 유향(劉向), 《설원(說苑)》 권4 〈입절(立節)〉.
  3. ↑ 구양순(歐陽詢) 등, 《예문유취(藝文類聚)》 권72 〈식물부(食物部)·식(食)〉; 이방(李昉) 등, 《태평어람(太平御覽)》 권849 〈음식부(飮食部) 7·식(食) 하〉.
  4. ↑ 도연명(陶淵明), 〈의고(擬古)〉 제5수, 《도연명집(陶淵明集)》 권4.
  5. ↑ 《도연명집(陶淵明集)》(사고전서본) 권4 〈의고〉 제5수 주.
  6. ↑ 위징(魏徵) 등, 《수서(隋書)》 권57 〈노사도전(盧思道傳)〉.
  7. ↑ 손순효(孫舜孝), 〈삼지당기(三止堂記)〉, 《물재집(勿齋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667A_0020_030_0020, 확인날짜=2026-10-03.
  8. ↑ 이건(李健), 〈몽견망우(夢見亡友)〉, 《규창유고(葵窓遺稿)》,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76A_0040_010_1670, 확인날짜=2026-10-03.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14권, 정조 6년 10월 18일 신사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va_10610018_002,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