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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지명(先見之明)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앞을 내다보고 아는 지혜를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明’은 사물을 꿰뚫어 보는 눈, 곧 안목을 가리킨다.[2]

흔히 “선견지명이 있다”는 꼴로,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흐름을 먼저 읽고 대비한 사람을 칭찬할 때 쓴다. 투자, 기술 선택, 정책 판단처럼 결과가 나중에 드러나는 일에서 특히 자주 쓰인다.

중국어에서도 ‘先見之明(xiān jiàn zhī míng)’을 그대로 쓴다.[2] 일본어에서는 ‘先見の明(せんけんのめい)’이라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1477년의 《사기초(史記抄)》를 든다.[3]

《후한서(後漢書)》 권54 〈양진열전(楊震列傳)〉에 딸린 양표(楊彪)의 전기에 나온다.[4] 양표는 청렴한 관리로 이름난 양진(楊震)의 증손으로, 후한 헌제 때 삼공을 두루 지낸 인물이다. 조조가 권력을 잡자 한나라의 운수가 다했다고 보고 다리가 오그라드는 병을 핑계로 10년 동안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그 사이 아들 양수(楊修)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後子修為曹操所殺,操見彪問曰:「公何瘦之甚?」對曰:「愧無日磾先見之明,猶懷老牛舐犢之愛。」操為之改容。

조조가 양표를 보고 “공은 어찌 그리 몹시 여위었소?”라고 묻자, 양표는 “부끄럽게도 김일제(金日磾)와 같은 선견지명은 없고, 아직도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아 주는 사랑을 품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조조는 이 말을 듣고 낯빛을 고쳤다.[4] 자식을 잃은 슬픔을 말하면서, 아들을 죽인 조조 앞에서 그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형식을 빌려 원망을 에둘러 드러낸 대답이다.

김일제의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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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표가 든 김일제는 흉노 휴도왕(休屠王)의 태자로 한나라에 귀순해 무제의 신임을 받은 인물이다. 당나라 이현(李賢)의 주석은 《한서》를 인용해 그 사연을 이렇게 적는다.[4]

前書曰,金日磾子二人,武帝所愛,以為弄兒。其後弄兒壯大,不謹,自殿下與宮人戲,日磾適見之,惡其淫亂,遂殺弄兒。

김일제의 두 아들은 무제가 귀여워해 곁에 두고 노는 아이(弄兒)로 삼았는데, 큰 뒤에 궁궐에서 궁녀와 희롱하는 것을 김일제가 보고는 그 음란함을 미워해 죽여 버렸다. 김일제는 아들이 장차 집안에 화를 부를 것을 미리 보고 싹을 잘랐고, 양표는 그런 결단을 하지 못해 아들을 잃었다는 뜻이다. 이 대답에서 지독지애(舐犢之愛)라는 말도 나왔다.[3]

《후한서》에 따르면 양수는 재주가 뛰어나 조조의 주부(主簿)로 일했다. 한중에서 조조가 “계륵(雞肋)”이라는 명령만 내렸을 때 홀로 그 뜻을 알아차렸고, 조조가 물을 일을 미리 헤아려 답을 적어 두기도 했다. 조조는 이 일로 양수를 꺼리게 되었고, 또 그가 원술(袁術)의 생질이어서 뒷날의 걱정거리가 될까 염려해 “일을 핑계 삼아 죽였다(遂因事殺之)”.[4] 이현의 주석이 인용한 《속한서(續漢書)》는 양수가 조조의 아들 조식(曹植)과 술에 취해 수레를 함께 타고 사마문(司馬門)으로 나갔다는 고발이 들어와 조조가 크게 노해 죽였다고 적는다.[4]

나무위키 등에는 양수가 계륵 사건을 빌미로 처형되었다는 설명이 보이지만, 이는 《삼국지연의》 제72회의 줄거리이다. 《후한서》는 계륵 일화를 양수의 재치를 보여 주는 예로 들었을 뿐이고, 죽인 까닭은 조조의 경계심과 원술과의 인척 관계로 적었다.[4]

‘先見之明’은 뒤에 널리 쓰였다. 《원사(元史)》 〈조원용전(曹元用傳)〉에는 도적이 과연 패하자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선견지명이 있다고 일컬었다는 구절이 있다.[2] 《삼국지연의》 제98회에서는 위나라 명제 조예가 제갈량의 진창 공격을 미리 내다본 사마의에게 “경이 이미 선견지명이 있다면 어찌 몸소 한 부대를 이끌고 치지 않는가(卿既有先見之明,何不自引一軍以襲之)”라고 묻는다.[5] 비슷한 말로 한나라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용허(龍虛)〉에 ‘先知之明’이 보인다.[2]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先見之明’이 44건 보인다.[6] 가장 이른 것은 건국 직후인 태조 1년(1392) 윤12월 16일의 교서로, 태조는 정당문학 이염(李恬)이 “정밀하고 치밀하며 선견지명이 있다(精詳縝密,有先見之明)”며 그의 말을 듣고 거취를 정했던 일을 들어 원종공신에 추록하게 했다.[7]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先 선 먼저 미리
見 견 보다 내다보다
之 지 ~의 앞말이 뒷말을 꾸미게 함
明 명 밝다 밝은 안목, 지혜
  • 10년 전에 로그를 한곳에 모으는 체계를 만들어 둔 것은 선견지명이었다. 덕분에 이번 침해 사고의 경로를 하루 만에 되짚을 수 있었다.
  • 그는 전기차 시장이 커질 것을 내다보고 일찍 배터리 기술에 투자한 선견지명으로 평가받는다.
  • 우산을 챙기라던 어머니의 말은 오후에 쏟아진 소나기로 선견지명이 되었다.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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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견(先見): 앞일을 미리 내다봄.
  • 선지지명(先知之明): 앞일을 미리 아는 밝음. 《논형》.[2]
  • 지독지애(舐犢之愛): 어미 소가 송아지를 핥아 주는 사랑. 같은 대목에서 나온 말.
  • 유비무환(有備無患): 미리 대비하면 걱정이 없음.
  • 반대 의미: 망양보뢰(亡羊補牢), 만시지탄(晩時之歎): 일이 벌어진 뒤에야 손을 쓰거나 뉘우침.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선견지명”,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4%A0%EA%B2%AC%EC%A7%80%EB%AA%85,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先見之明”,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78760, 확인날짜=2026-09-27.
  3.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先見の明”,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5%85%88%E8%A6%8B%E3%81%AE%E6%98%8E,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4.2 4.3 4.4 4.5 범엽(范曄), 《후한서》 권54 〈양진열전(楊震列傳)〉.
  5. ↑ 나관중,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98회.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先見之明”,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7.
  7.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윤12월 16일 임진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aa_10112116_001, 확인날짜=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