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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무책(束手無策)은 손을 묶은 것처럼 어찌할 도리가 없어 꼼짝 못 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줄여서 ‘속수(束手)’라고도 한다.[1]

재난, 사고, 경기 침체처럼 손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속수무책이었다”처럼 쓴다. 대책이 아예 없다는 뜻뿐 아니라, 대책이 있어도 힘이 모자라 막지 못하는 처지에도 널리 쓴다.

중국어에서도 ‘束手無策(shù shǒu wú cè)’를 그대로 쓰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두 손이 묶여 쓸 계책이 없다는 뜻으로, 문제를 마주하고도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음을 비유한다”고 풀이한다.[2] 일본어 사전에서는 이 네 글자가 표제어로 보이지 않고, 비슷한 뜻으로 ‘手を束ねる(てをつかねる)’, ‘手をこまぬく’ 같은 말을 쓴다. 《일본국어대사전》에 따르면 ‘手を束ねる’는 본래 두 손을 모아 공손함이나 사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었고, 뒤에 팔짱을 낀 채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도 쓰였다.[3]

특정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손을 묶다(束手)’와 ‘계책이 없다(無策)’를 이은 말이다. 한문에서 ‘束手’는 손을 묶인 채 순순히 잡히거나 항복한다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쓰였고, 여기에 ‘손쓸 방도가 없다’는 뜻이 더해졌다.

《성어전》은 이 말의 근원(語本)으로 당나라 설용약(薛用弱)의 《집이기(集異記)》에 실린 위숙(魏淑) 이야기를 든다. 이 이야기는 송나라 초에 엮은 《태평광기(太平廣記)》 권220 〈이질(異疾)〉에 인용되어 전한다.[2][4]

大曆中,元察為邛州刺史。而州城將有魏淑者,膚體洪壯,年方四十,親老妻少。而忽中異疾,無所酸苦,但飲食日損,身體日銷耳。醫生術士,拱手無措。寒暑未周,即如嬰孩焉,不復能行坐語言。

당 대종 대력(大曆) 연간(766~779)에 공주(邛州)의 성을 지키던 장수 위숙은 몸이 건장한 마흔 살 사내였는데, 갑자기 괴이한 병에 걸렸다. 아픈 데는 없는데 먹는 양이 날마다 줄고 몸이 날마다 작아졌다. 의원과 술사들은 “손을 모은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拱手無措)”. 한 해가 채 안 되어 갓난아이처럼 작아져 걷지도 앉지도 말하지도 못했다.[4] 그러다 생일에 집안에서 승려를 불러 재를 올리던 날, 아내가 비녀 끝으로 음식을 집어 먹이자 한 사발을 다 먹었고, 그 뒤로 날마다 먹는 양이 늘고 몸도 자라 반년이 못 되어 본래대로 돌아왔다. 위숙은 옛 직책을 되찾았고, 십여 년 뒤 남만(南蠻)을 막다 싸움터에서 죽었다.[4]

여기의 ‘拱手無措’가 뒤에 ‘束手無策’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성어전》의 설명이다. 《성어전》은 ‘束手無策’의 이른 용례로 남송 왕백(王柏, 1197~1274)의 〈서선군유독선왕공첩후(書先君遺獨善汪公帖後)〉를 든다. 몽골군에 양양(襄陽)과 번성(樊城)을 잃은 일을 한탄하며 “평안하고 일 없을 때 사대부들이 이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니, 하루아침에 변이 닥치면 모두 속수무책이다(一旦事變之來,莫不束手無策)”라고 한 대목이다.[2] 그 뒤 《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성세인연전(醒世姻緣傳)》, 《유림외사(儒林外史)》 같은 명청 소설에 자주 나온다.[2]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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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束手無策’이 46건 보인다.[5] 가장 이른 것은 중종 8년(1513) 5월 성희안(成希顔)이 함경도의 굶주린 백성을 구할 방안을 논한 의견이다. 그는 곡식을 실어 나르는 데 드는 수고를 들어 망설일 일이 아니라며 “속수무책으로 한 도의 백성을 다 죽게 하느니, 잡다한 일을 모두 떨치고 억지로라도 시행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與其束手無策,使一道民生,死亡殆盡,曷若掃除雜故,勉强而行之乎)”라고 했다.[6] 문집에서도 김정국(金正國), 주세붕(周世鵬), 이이(李珥) 등이 흉년과 백성의 곤궁을 말하며 썼다. 이이는 〈진해서민폐소(陳海西民弊疏)〉에서 황해도 백성이 평소 지쳐 여력이 없으니 “만약 변고가 생기면 속수무책일 것(脫有事變,束手無策)”이라고 경고했다.[7]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束 속 묶다 묶다
手 수 손 손
無 무 없다 없다
策 책 꾀, 계책 대책, 방법
  • 백업을 따로 두지 않은 탓에 랜섬웨어에 파일이 모두 암호화되자 회사는 속수무책이었다.
  • 제로데이 취약점은 패치가 나오기 전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으므로, 망 분리와 최소 권한으로 피해 범위를 줄여 두어야 한다.
  •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농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논이 잠기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 류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 〈녹후잡기(錄後雜記)〉에는 비슷한 말 ‘속수무계(束手無計)’가 나온다. 임진왜란 때 임진강을 건너려는데 강의 얼음이 반쯤 녹아 떠내려가 배를 쓸 수 없자, 관원과 의병 천여 명이 강가에 모여 “모두 속수무계였다(皆束手無計)”고 한다. 류성룡은 우봉(牛峰) 사람들에게 칡덩굴을 거두게 해 굵은 밧줄을 꼬고, 이것을 강에 걸어 다리를 놓는 방법을 썼다고 적었다.[8]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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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수무계(束手無計), 속수무조(束手無措): 속수무책과 같은 뜻.[2]
  • 수수방관(袖手傍觀):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음. 《성어전》은 송나라 장원간(張元幹)의 시 “袖手了無策”도 같은 뜻의 용례로 든다.[2]
  • 일주막전(一籌莫展), 계무소출(計無所出): 한 가지 계책도 펴지 못함.[2]
  • 진퇴양난(進退兩難):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처지.
  • 반대 의미: 흉유성죽(胸有成竹), 급중생지(急中生智): 미리 계획이 서 있음, 급할 때 꾀가 떠오름.[2]
  1.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속수무책”,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6%8D%EC%88%98%EB%AC%B4%EC%B1%85,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2.4 2.5 2.6 2.7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束手無策”,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418, 확인날짜=2026-09-27.
  3.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 “手を束ねる”,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89%8B%E3%82%92%E6%9D%9F%E3%81%AD%E3%82%8B,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4.2 《태평광기(太平廣記)》 권220 〈이질(異疾)·위숙(魏淑)〉, 《집이기(集異記)》 인용.
  5.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束手無策”,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7.
  6.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8권, 중종 8년 5월 14일 신사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0805014_001, 확인날짜=2026-09-27.
  7. ↑ 이이, 〈진해서민폐소(陳海西民弊疏)〉, 《율곡전서(栗谷全書)》,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27.
  8. ↑ 류성룡, 《징비록(懲毖錄)》 〈녹후잡기(錄後雜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