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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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왕성(元氣旺盛)은 마음과 몸의 활동력이 한창 성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네 글자 ‘元氣旺盛’은 중국 고전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 반면, 조선 후기 궁중 기록에는 일찍부터 보인다. 확인되는 가장 이른 예는 《승정원일기》 영조 즉위년(1724) 10월 18일 기사다. 즉위 직후의 영조는 나라의 재정과 민심이 모두 믿을 것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3]
比如人元氣旺盛, 則客氣不敢侵, 及其少衰, 百病交乘.
“사람에 비유하자면, 원기가 왕성하면 객기(바깥에서 드는 나쁜 기운)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쇠하면 온갖 병이 번갈아 덮친다.”
이처럼 한의학에서 말하는 ‘원기’와 ‘사기(邪氣)·객기’의 관계를 나라의 형편에 빗댄 말이다. 정조도 1797년 신하들에게 서학(西學)을 막는 길을 말하면서 “사람의 원기가 왕성하면 바깥의 사기가 저절로 침범하지 못한다(譬如人之元氣旺盛, 則外邪自不得侵)”며, 바른 학문을 밝히는 것이 근본이라고 했다.[4] 1781년(정조 5) 《승정원일기》에는 영의정 서명선(徐命善)이 추운 날씨에도 땀이 난다는 정조에게 “옥체가 강건하고 원기가 왕성한 덕분(玉體康健, 元氣旺盛之致)”이라고 아뢴 대목이 있다.[5]
일본에서도 메이지 초부터 쓰였다.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가 블룬칠리의 국가학을 옮긴 《국법범론(国法汎論)》(1872~1874)에는 국정학(國政學)을 “국가의 원기가 왕성하여 활동하는 까닭을 논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6] 근대 한국어에서는 1920년대 신문과 잡지에 흔히 보인다. 1924년 8월 《동아일보》는 무전 도보로 금강산을 다녀온 탐승단이 “元氣旺盛히 歸還”했다고 전했다.[7]
나무위키 등의 성어 목록에는 이 말이 약초 토사자(兎絲子, 새삼의 씨)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보이지만, 그런 내용을 뒷받침하는 문헌은 찾을 수 없다. 이 말은 위에서 본 것처럼 ‘원기’와 ‘왕성’을 이은 말이다.
- 밤샘 해커톤을 마치고도 원기왕성한 신입 개발자들이 곧바로 회고 회의를 열자고 했다.
-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는 아직도 원기왕성하게 텃밭을 가꾸신다.
- 아이들은 하루 종일 뛰어놀고도 원기왕성했다.
- 《조선왕조실록》 국역문에는 ‘원기왕성’이 10여 차례 나오지만 원문에는 ‘元氣旺盛’이 한 번도 없다. 예를 들어 1516년(중종 11) 기사의 국역 “원기가 왕성하고”는 원문에서 “元氣雄健(원기가 굳세고 튼튼함)”이다.[8]
- ↑ 1.0 1.1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원기 왕성”,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C%9B%90%EA%B8%B0%EC%99%95%EC%84%B1, 확인날짜=2026-10-12.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원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B%90%EA%B8%B0 ; “왕성”,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9%95%EC%84%B1,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영조 즉위년 10월 18일 무자, https://sjw.history.go.kr/id/SJW-F00100180-02200, 확인날짜=2026-10-12.
- ↑ 정조(正祖), 《홍재전서(弘齋全書)》 권164 〈일득록(日得錄) 4〉 문학 4, 원임 직제학 이병모(李秉模) 정사년(1797) 기록.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정조 5년 12월 24일 임진, https://sjw.history.go.kr/id/SJW-G05120240-01600, 확인날짜=2026-10-12.
- ↑ 블룬칠리(J. C. Bluntschli) 저,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 역, 《国法汎論》 수권, 文部省, 1874(메이지 7),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788995,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아일보》 1924년 8월 28일 3면, “無錢徒步 金剛山探勝團, 元氣旺盛히 歸還”, https://db.history.go.kr/id/npda_1924_08_28_v0003_0630,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24권, 중종 11년 3월 8일 기축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ka_11103008_001 ;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元氣旺盛”(0건), 확인날짜=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