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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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기왕성(血氣旺盛)은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기운인 혈기가 한창 성함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혈기(血氣)’는 “피의 기운이라는 뜻으로,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원기를 이르는 말”이고, ‘왕성(旺盛)’은 “한창 성함”이다.[1] 두 낱말을 이은 말이라 뜻이 글자 그대로 드러나며,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는 네 글자 표제어가 없다. 주로 젊은이의 넘치는 힘과 의욕을 두고 “혈기왕성한 청년”, “혈기왕성한 나이”처럼 쓴다.
비슷한 원기왕성(元氣旺盛)이 몸과 마음의 활동력이 넘치는 상태를 두루 이르고 노인에게도 잘 쓰이는 데 비해, 혈기왕성은 젊음과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혈기’라는 말 자체에 “혈기를 부리다”, “혈기에 찬 행동”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격해지는 기운이라는 결이 있어, 혈기왕성도 칭찬과 함께 “그래서 쉽게 흥분한다”는 걱정을 담아 쓰이곤 한다.
같은 뜻의 옛 표현으로 《논어》에서 나온 ‘혈기방강(血氣方剛)’이 있고, 우리말샘에는 ‘혈기 방장(血氣方壯)’이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원기가 왕성함”으로 올라 있다.[2] 일본어에서는 ‘血気盛ん(けっきさかん)’이라고 하며,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은 그 첫 용례로 1603~1604년의 《일포사전(日葡辞書)》을 든다.[3]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다만 ‘혈기가 한창 성한 때’라는 생각 자체는 《논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논어》 〈계씨(季氏)〉에서 공자는 군자가 경계할 세 가지를 사람의 혈기에 맞추어 말했다.
君子有三戒:少之時,血氣未定,戒之在色;及其壯也,血氣方剛,戒之在鬥;及其老也,血氣既衰,戒之在得。
“군자에게는 세 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 젊을 때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경계할 것이 여색에 있고, 장성해서는 혈기가 한창 굳세니 경계할 것이 싸움에 있으며,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했으니 경계할 것이 탐욕에 있다.”
여기서 나온 ‘血氣方剛(혈기방강)’은 중국어에서 지금도 널리 쓰는 성어이며, 《성어전》은 비슷한 형태로 《후한서》 〈양종전(楊終傳)〉의 ‘血氣方盛’, 《신당서》 〈장가정전(張嘉貞傳)〉의 ‘血氣方壯’을 함께 든다.[4] 《성어전》은 이 말을 풀이하면서 “장년에는 혈기가 왕성하여(血氣旺盛) 충동하기 쉽다”라고 현대 중국어로 설명하기도 한다.[4]
네 글자 형태는 송나라 소아과 의서 《소아위생총미론방(小兒衛生總微論方)》 권3에 보인다. 아이의 열증을 가르면서 “아이의 혈기가 왕성하여 갈증이 나 물을 찾고, 대변이 누렇고 굳으며 소변이 붉고 적고, 온몸이 화끈거리면 이는 위의 실열이다(小兒血氣旺盛,發渴引飲……此為胃實熱也)”라고 했다.[5] 여기서는 몸의 기운이 지나치게 성한 병증을 가리키는 의학 용어로 쓰였다.
조선에서는 궁중 기록에 보인다. 1768년(영조 44) 6월 28일, 일흔을 넘긴 영조가 신하들에게 “요즘 뒤통수에 검은 머리가 많이 난다”며 살펴보게 하자, 우의정 이창의(李昌誼)는 “전하의 혈기가 왕성하시어 검은 머리가 많이 나니 참으로 경사스럽습니다. 다만 생각을 너무 쓰지 않으시면 검은 머리가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殿下血氣旺盛,黑髮多生,誠爲慶幸,而不過用思慮,則黑髮必尤多矣)”라고 아뢰었다.[6] 영조 말년에 김종수(金鍾秀)는 왕세손 시절의 정조를 모시며 쓴 〈춘궁시강일기(春宮侍講日記)〉에서, 한창 혈기가 왕성할 나이인데도 늘 누렇게 여위어 보인다며 세손의 건강을 걱정했다(正當血氣旺盛之時,而每有黃羸枯燥之意).[7]
근대에는 일본과 한국에서 ‘젊은이의 기운’을 이르는 말로 널리 퍼졌다. 일본에서는 1879년 번역서 《남녀음욕론(男女淫慾論)》 서문에 “사람이 젊을 때는 대개 혈기가 왕성하고(人之少也大抵血氣旺盛)”라는 구절이 보이며,[8] 한국에서는 1920년대 《개벽》에 독일 표현주의 운동을 소개하며 “血氣旺盛한 靑年”이라 쓴 예가 있다.[9]
나무위키 등의 성어 목록에는 출전을 소설 《초한지》로 적은 경우가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은 찾을 수 없다. 같은 뜻으로 함께 소개되는 ‘혈기방강’의 출전은 《논어》 〈계씨〉이다.
- 혈기왕성한 신입 개발자들이 밤을 새워 해커톤 결과물을 완성했다.
- 혈기왕성한 나이라 그런지 작은 일에도 쉽게 발끈한다.
- 그는 일흔이 넘었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혈기왕성하다.
-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원문 검색은 0건이고, 국역문 검색에 걸리는 13건도 열어 보면 ‘혈기(血氣)’와 왕도를 뜻하는 ‘왕성(王城)’이 한 기사 안에 따로 나온 것들이다.[10] 지금 흔히 쓰는 이 말이 조선 시대 기록에서는 《승정원일기》 같은 데에 드물게 보일 뿐이라는 점에서, 근대 이후에 널리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혈기”,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D%98%88%EA%B8%B0 ; “왕성”,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9%95%EC%84%B1, 확인날짜=2026-10-12.
- ↑ 2.0 2.1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혈기 방장”,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D%98%88%EA%B8%B0%EB%B0%A9%EC%9E%A5, 확인날짜=2026-10-12.
- ↑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血気盛ん”,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8%A1%80%E6%B0%97%E7%9B%9B%E3%82%93, 확인날짜=2026-10-12.
- ↑ 4.0 4.1 4.2 4.3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血氣方剛”,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628, 확인날짜=2026-10-12.
- ↑ 《소아위생총미론방(小兒衛生總微論方)》 권3.
- ↑ 국사편찬위원회 승정원일기, 영조 44년 6월 28일 갑신, https://sjw.history.go.kr/id/SJW-F44060280-02500, 확인날짜=2026-10-12.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김종수(金鍾秀), 《몽오집(夢梧集)》, 〈춘궁시강일기(春宮侍講日記)〉,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556A_0040_010_0010, 확인날짜=2026-10-12.
- ↑ 扶徳 撰, 片山平三郎 訳, 《男女淫慾論》, 1879,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994764,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曉鍾, “獨逸의 藝術運動과 表現主義”, 《개벽》 제15호, https://db.history.go.kr/id/ma_013_0150_0140, 확인날짜=2026-10-12.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血氣旺盛”(0건), 국역 검색 “혈기왕성”(13건); 예: 《연산군일기》 연산 1년 4월 20일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ja_10104020_002 ; 《선조실록》 66권, 선조 28년 8월 10일 경술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2808010_002, 확인날짜=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