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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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流言蜚語)는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을 뜻하는 한자성어이다. 비슷한 말로 ‘부설(浮說)’, ‘부언(浮言)’, ‘부언낭설(浮言浪說)’, ‘부언유설(浮言流說)’, ‘표설(漂說)’ 등이 있다.[1]
‘흘러 다니는 말(流言)’과 ‘날아다니는 말(蜚語)’을 합친 말이다. 누가 처음 했는지 모를 말이 입에서 입으로 흘러 다니며 불어나는 모습을 그린다. 단순한 뜬소문뿐 아니라, 남을 헐뜯거나 민심을 어지럽히려고 퍼뜨리는 거짓 소문을 가리킬 때가 많다. 오늘날의 ‘가짜 뉴스’, ‘루머’와 통하는 말이다.
‘蜚’는 본래 바퀴벌레 같은 벌레를 가리키는 글자이지만, 여기서는 ‘날 비(飛)’와 통하는 글자로 쓰였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流言과 蜚語는 뜻이 같아 모두 근거 없는 말을 가리키며 남을 헐뜯는 데 쓰인다. 蜚는 飛로도 쓴다”고 설명한다.[2] 중국어에서는 ‘流言蜚语(liúyán fēiyǔ)’로 쓰고, 일본어에서는 주로 ‘流言飛語(りゅうげんひご)’로 적는다. 일본의 《디지털 대사천》은 ‘流言蜚語’ 표기도 함께 싣되 ‘蜚’에 상용한자 밖의 글자라는 표시를 달았다.[3]
‘유언’과 ‘비어’는 각각 따로 오래된 출전이 있고, 뒤에 두 말이 합쳐져 네 글자가 되었다.[2]
《서경(書經)》 〈금등(金縢)〉에 따르면, 주나라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이 즉위해 숙부 주공(周公)이 섭정하자, 무왕의 아우 관숙(管叔)과 그 아우들이 나라 안에 말을 퍼뜨렸다.
武王既喪,管叔及其羣弟乃流言於國,曰:「公將不利於孺子。」
“무왕이 세상을 떠나자 관숙과 그 아우들이 나라에 말을 퍼뜨려 ‘주공이 장차 어린 임금에게 이롭지 못한 일을 할 것’이라 했다.” 주공은 이 소문을 피해 동쪽으로 가서 2년을 머물렀고, 뒤에 성왕이 금등(쇠줄로 봉한 궤)에 넣어 둔 주공의 축문을 보고서야 오해를 풀었다. ‘유언’이 권력자를 모함하는 소문이라는 뜻으로 쓰인 가장 이른 예이다.
‘비어(蜚語)’는 《사기》 권107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에 나온다. 한나라 무제 때, 외척인 위기후(魏其侯) 두영(竇嬰)은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과 다투던 장군 관부(灌夫)를 감싸다 선제(先帝)의 유조를 위조했다는 죄로 갇혔다. 무제에게 두영을 죽일 뜻이 없다는 말을 듣고 두영이 다시 음식을 먹고 병을 다스려 죽지 않게 되는 듯했으나, 상황은 곧 뒤집혔다.
乃有蜚語為惡言聞上,故以十二月晦論棄市渭城。
“그런데 누군가 떠도는 말로 나쁜 말을 지어 임금의 귀에 들어가게 했으므로, 12월 그믐에 위성(渭城)에서 기시(棄市)했다.” 두영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바로 출처 없는 비어였다.[5] 《성어전》은 이 밖에 《갈관자(鶡冠子)》 〈무령왕(武靈王)〉에서 조나라 무령왕이 “떠도는 말(飛語)이 퍼지기를 ‘백 번 싸워 이기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라고 하더라”라고 한 대목을 ‘비어’의 근원으로 든다.[2]
나무위키 등에서는 이 이야기의 인물을 ‘전분(田粉)’으로 적고 그가 뒤에 반란에 가담해 거열형을 받았다고 소개하나, 《사기》 원문의 이름은 ‘田蚡’이다. 또 전분은 두영이 처형된 이듬해 봄 병으로 죽었으며, 무당이 보니 두영과 관부의 귀신이 지키고 앉아 그를 죽이려 했다고 한다. 뒤에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모반이 드러나 전분이 예전에 회남왕에게 뇌물을 받고 아첨한 일이 알려지자, 무제는 “무안후가 살아 있었다면 멸족했을 것”이라고 했을 뿐이다.[5]
네 글자로 합친 형태는 송대부터 보인다. 송나라의 장강(張綱)은 글에서 간사한 무리가 “감히 유언비어로 몰래 착한 사람들을 해쳤다(輒敢以流言飛語陰中善類)”고 썼다.[6] ‘流言蜚語’ 표기는 명대에 보이며, 《성어전》은 명나라 문병(文秉)의 《선발지시(先撥志始)》와 《명사(明史)》 〈마맹정전(馬孟禎傳)〉의 “유언비어가 궁궐 안까지 날아든다(流言蜚語,騰入禁庭)”를 용례로 든다.[2] 한나라 때에는 비슷한 말로 ‘유언비문(流言飛文)’이 있었다. 《한서》 〈초원왕전〉의 “소인배들이 틈을 엿보아 문자를 꾸미고, 교묘한 말로 헐뜯으며 유언비문이 민간에 떠들썩하다”가 그 예이다.[2]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流言飛語는 3건 보인다.[7] 가장 이른 것은 성종 13년(1482)의 상소로, 아버지의 시호를 다시 정해 달라고 청하면서 “아무리 성군과 어진 신하 사이라도 소인배들의 유언비어에 그르쳐지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鮮不爲群小流言飛語之所誤)”고 했다.[8] 중종 14년(1519)에는 “근래 조정에서 사람의 진퇴를 논할 때 공론인 듯하지만 유언비어였을 뿐 끝내 사실이 아닌 경우가 있다”는 아룀이 있고,[9] 숙종 4년(1678) 윤3월에는 이조 판서 홍우원(洪宇遠)이 외척의 병권 장악을 비판하며 “유언비어가 돌고 궁궐의 금령이 엄하지 않다”고 상소했다.[10] ‘蜚語’ 두 글자만으로 쓴 예는 이보다 훨씬 많다.
- 긴급조치: 유신 체제에서 1974년 1월의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는 유신 헌법 비방과 함께 유언비어의 날조·유포를 금지했고,[11] 1975년 5월 13일의 제9호도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를 금지했다.[12] 헌법재판소는 2013년 3월 21일 재판관 전원 일치로 긴급조치 제1·2·9호를 위헌이라고 결정했다.[11]
- 관동 대지진: 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져 많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군대·경찰·자경단에게 살해되었다.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의 전문조사회 보고서도 이 유언비어와 학살을 재해의 교훈으로 기록했다.[13]
-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유언비어가 메신저로 퍼지자 회사는 공식 공지로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
- 재난 때에는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피해를 키우기 쉽다.
- 선거철마다 후보를 겨냥한 유언비어가 기승을 부린다.
-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Gordon W. Allport)와 레오 포스트먼(Leo Postman)은 1947년 《소문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Rumor)》에서 소문이 퍼지는 양은 그 주제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와 증거가 얼마나 모호한지의 곱에 비례한다는 ‘소문의 기본 법칙(R ~ i × a)’을 내놓았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소문은 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14]
- 부언낭설(浮言浪說), 부언유설(浮言流說): 근거 없이 떠도는 말.[1]
- 풍언풍어(風言風語): 떠도는 소문. 《성어전》은 流言蜚語가 남을 공격하고 헐뜯는 말에 초점을 두고, 風言風語는 여럿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말에 초점을 둔다고 구별한다.[2]
- 풍설(風說), 풍문(風聞): 떠도는 소문. 일본어에서는 流言飛語의 유의어로 ‘風説’, ‘風聞’, ‘流説’, ‘デマ’ 등을 든다.[3]
-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 말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는 뜻으로, 근거 없는 말도 여럿이 하면 곧이듣게 됨.
- 증삼살인(曾參殺人): 거짓말도 여러 번 들으면 믿게 됨.
- 반대 의미: 언지착착(言之鑿鑿): 말에 근거가 확실함.[2]
- ↑ 1.0 1.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유언비어”,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C%A0%EC%96%B8%EB%B9%84%EC%96%B4, 확인날짜=2026-09-28.
- ↑ 2.0 2.1 2.2 2.3 2.4 2.5 2.6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流言蜚語”,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009, 확인날짜=2026-09-28.
- ↑ 3.0 3.1 《디지털 대사천(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브리태니커 국제대백과사전 소항목사전》, “流言飛語”,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B5%81%E8%A8%80%E9%A3%9B%E8%AA%9E, 확인날짜=2026-09-28.
- ↑ 《서경(書經)》 〈주서(周書) 금등(金縢)〉.
- ↑ 5.0 5.1 5.2 사마천, 《사기(史記)》 권107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
- ↑ 장강(張綱), 《화양집(華陽集)》 권2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流言飛語”,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성종 13년 9월 26일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1309026_006,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중종 14년 9월 28일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1409028_001,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숙종 4년 윤3월 21일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0403121_001, 확인날짜=2026-09-28.
- ↑ 11.0 11.1 “위헌 판정받은 긴급조치 1·2·9호는”, 《서울신문》, 2013-03-21,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13/03/21/20130321800105, 확인날짜=2026-09-28.
-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유신 헌법 개헌 논의를 금지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levelId=hm_150_0100, 확인날짜=2026-09-28.
- ↑ 일본 내각부 방재정보 페이지, 중앙방재회의 재해교훈 계승에 관한 전문조사회, 《1923 관동대지진 보고서》 제2편, https://www.bousai.go.jp/kyoiku/kyokun/kyoukunnokeishou/rep/1923_kanto_daishinsai_2/index.html, 확인날짜=2026-09-28.
- ↑ “Rumor”,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Encyclopedia.com, https://www.encyclopedia.com/social-sciences-and-law/sociology-and-social-reform/sociology-general-terms-and-concepts/rumor, 확인날짜=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