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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망타진(一網打盡)은 그물을 한 번 쳐서 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뜻으로, 어떤 무리를 한꺼번에 모두 잡아들이는 것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줄여서 ‘망타(網打)’라고도 한다.[1]

오늘날에는 주로 경찰·검찰이 범죄 조직이나 사기단을 한꺼번에 검거했을 때 쓴다. 보안 분야에서도 봇넷이나 해킹 조직의 서버와 조직원을 동시에 적발하는 작전을 가리켜 자주 쓴다. 그러나 이 말이 처음 쓰인 북송 때에는 권력자가 반대파 인사들을 한꺼번에 몰아내는 일을 가리켰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도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들을 남김없이 배척함”을 비유하는 말로 풀이한다.[2]

중국어에서도 같은 글자로 ‘一網打盡(yī wǎng dǎ jìn)’이라고 한다.[2] 일본어에서는 ‘一網打尽(いちもうだじん)’이라고 하며, 《일본국어대사전》은 첫 용례로 우오즈미 세쓰로(魚住折蘆)의 평론 〈온건한 자유사상가〉(1910)에서 경시청이 자유사상을 ‘일망타진식으로’ 억누르려 한다고 쓴 대목을 든다.[3]

북송 인종(仁宗) 경력(慶曆) 연간에 범중엄(范仲淹)·부필(富弼)·두연(杜衍) 등이 정치 개혁(경력신정)을 추진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쪽과 개혁파 사이의 갈등이 깊어졌다. 이때 일어난 것이 ‘진주원(進奏院) 사건’이다.

《송사(宋史)》 〈소순흠전(蘇舜欽傳)〉에 따르면, 범중엄의 천거로 집현교리가 되어 진주원을 맡은 소순흠(蘇舜欽)은 재상 두연의 사위였다. 진주원에서 신에게 제사 지내는 날, 소순흠과 유손(劉巽)은 관례대로 헌 종이를 판 공금으로 기생과 풍악을 불러 손님들과 잔치를 벌였다. 어사중승 왕공진(王拱辰)은 이 일을 알아내 부하 어주순(魚周詢) 등에게 탄핵하게 했는데, 이를 빌미로 두연을 흔들려는 뜻이 있었다. 소순흠과 유손은 공금을 훔친 죄로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졌고, 그 자리에 있던 이름난 선비 10여 명이 함께 쫓겨났다.[4]

同時會者皆知名士,因緣得罪逐出四方者十餘人。世以爲過刻,而拱辰等方自喜曰:「吾一舉網盡矣。」

“세상에서는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했으나 왕공진 등은 ‘우리가 한 번 그물을 들어 다 잡았다’며 기뻐했다.”[4] 《송사》의 이 대목은 네 글자 ‘一網打盡’이 아니라 ‘一舉網盡’으로 되어 있다.

같은 사건을 북송 위태(魏泰)의 필기 《동헌필록(東軒筆錄)》은 조금 다르게 전한다. 이 책에서는 소순흠을 탄핵한 사람이 어사 유원유(劉元瑜)이고, 네 글자 그대로의 말도 그의 입에서 나온다.[5]

劉待制元瑜既彈蘇舜欽,而連坐者甚衆,同時俊彥,為之一空。劉見宰相曰:「聊為相公一網打盡。」

“유원유가 소순흠을 탄핵하자 연좌된 사람이 매우 많아 한 시대의 뛰어난 인재들이 이 때문에 텅 비었다. 유원유는 재상을 만나 ‘상공을 위해 그물 한 번으로 다 잡아 드렸습니다’라고 했다.”[5] 《성어전》은 이 《동헌필록》 권4의 구절을 네 글자 형태의 첫 용례로 든다.[2] 《동헌필록》은 이어서, 소순흠이 죽은 뒤 구양수(歐陽修)가 그의 문집 서문에서 “한때의 뛰어난 인재들이 그물을 들어 다 잡혔다(一時俊彥,舉網而盡)”고 쓴 것이 바로 어사의 이 말을 옮긴 것이라고 적었다.[5]

사건 당시의 기록에 가장 가까운 것은 구양수 자신이 쓴 〈호주장사 소군 묘지명(湖州長史蘇君墓誌銘)〉이다. 구양수는 소순흠이 범중엄이 천거한 사람이자 재상 두연의 사위였기 때문에 표적이 되었다고 쓰고, 연회에 모인 손님들이 모두 한 시대의 인재였는데 다 함께 쫓겨나자 “그를 모함한 자가 기뻐하며 ‘내가 한 번 그물을 들어 모두 잡았다’고 했다(然後中君者喜曰:吾一舉網盡之矣)”고 적었다. 말한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6] 남송 이도(李燾)의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 권153도 《송사》처럼 왕공진 등이 “吾一舉網盡矣”라며 기뻐했다고 적는다.[7]

세 기록은 말한 사람을 밝히지 않거나 왕공진·유원유로 달리 전하지만, 반대파가 개혁파 인사들을 한꺼번에 몰아낸 것을 스스로 자랑한 말이라는 점은 같다.

《송사》 〈범순인전〉

편집 원본 편집

표준국어대사전과 《일본국어대사전》은 출전을 《송사》 〈범순인전(范純仁傳)〉으로 든다.[1][3] 범중엄의 아들 범순인은 철종 원우(元祐) 연간에 재상이 되어, 조정에 붕당의 다툼이 거세지는 것을 걱정하며 황제에게 아버지 때의 일을 들어 경계했다.[8]

昔先臣與韓琦、富弼同慶曆柄任,各舉所知,常時飛語指為朋黨,三人相繼補外,造謗者公相慶曰一網打盡,此事未遠,願陛下戒之。

“예전에 신의 아비가 한기·부필과 함께 경력 연간에 정권을 맡아 저마다 아는 사람을 천거했는데, 그때 뜬소문이 이들을 붕당이라 지목하여 세 사람이 잇달아 지방으로 나갔습니다. 헐뜯던 자들은 드러내 놓고 서로 ‘일망타진했다’며 축하했으니, 이 일이 오래지 않으니 폐하께서는 경계하소서.”[8] 범순인은 이어 앞 시대 붕당의 화를 힘주어 말하고 구양수의 〈붕당론(朋黨論)〉을 베껴 올렸다.[8] 이 말 역시 경력 연간의 일을 가리킨다.

《성어전》은 이 말의 먼 뿌리를 《여씨춘추(呂氏春秋)》 〈이용(異用)〉의 탕왕 이야기에서 찾는다.[2] 탕(湯)은 사냥꾼이 사방에 그물을 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땅에서 솟는 것, 사방에서 오는 것이 모두 내 그물에 걸려라”라고 비는 것을 보고 “아, 다 잡아 버리겠구나(嘻,盡之矣)”라며 세 면을 거두고 한 면만 남기게 했다. 이것이 ‘그물의 한 면을 열어 준다’는 망개일면(網開一面)의 고사이다. 한 번에 다 잡는 것을 경계한 이야기가 뒤에 반대 방향의 말과 짝을 이루게 된 셈이다.

한국 문헌의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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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는 원문 기준으로 ‘一網打盡’이 136건 보인다.[9] 조선에서도 처음에는 송나라 때처럼 정적이나 사림을 한꺼번에 몰아내는 일을 경계하는 말로 많이 쓰였다. 이른 예로 성종 24년(1493) 허침(許琛) 등의 상소는 “왕안석이 집정하자 여(呂)·소(蘇) 여러 무리가 일망타진되었다”며, 대간을 미워하는 권신이 언관을 한꺼번에 내치는 일을 경계했다.[10] 무오사화(1498)를 적은 문집 기록들에서도 유자광(柳子光)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빌미로 “일망타진의 계책”을 꾀했다고 표현한다.[11]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一 일 하나 한 번
網 망 그물 그물을 치다
打 타 치다 (고기를) 잡다
盡 진 다하다 남김없이 모두

송나라와 조선의 문헌에서 이 말은 대개 권력을 쥔 쪽이 반대파를 한꺼번에 제거하는 일, 곧 부당한 박해를 비판하는 말로 쓰였다. 범순인이 이 말을 꺼낸 것도 붕당의 화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명청 소설에서는 원수나 도적 무리를 한 번에 없애는 뜻으로도 널리 쓰였고,[2]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범죄 조직을 모두 검거한다는 긍정적인 뜻이 중심이 되었다.

  • 경찰은 여섯 달 동안의 추적 끝에 보이스피싱 조직의 국내 총책과 인출책을 일망타진했다.
  • 여러 나라 수사 기관이 공조해 랜섬웨어 조직의 명령 제어 서버와 운영진을 일망타진했다.
  • 반대파를 일망타진하려던 그의 계획은 오히려 거센 반발을 불렀다.
  • 《동헌필록》에 따르면 소순흠은 사면을 앞두고 며칠 먼저 판결을 받아 사면을 받지 못했고, 뒤에 호주장사(湖州長史)가 되었으나 마흔 남짓한 나이에 죽었다.[5]
  • 나무위키 등에는 《동헌필록》의 “不及雞竿下坐人”을 ‘사면 깃발 아래 앉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로 옮긴 번역이 보이지만, 이 시구는 사면 때 세우는 금계(金雞) 장대 아래 앉아 은혜를 입는 죄수들에게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면을 받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것이다. 《동헌필록》도 “사면을 받지 못한 죄수임을 이른 것(蓋謂不得預赦免之囚也)”이라고 풀었다.[5]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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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타(網打): 일망타진의 준말.[1]
  • 일망무유(一網無遺): 그물 하나로 남김없이 잡음. 일망타진과 같은 말. 《송사》 〈조여우전(趙汝愚傳)〉에 보인다.[2]
  • 일소이공(一掃而空): 한 번에 쓸어 없앰. 《성어전》이 드는 근의 성어.[2]
  • 망개일면(網開一面): 그물의 한 면을 열어 줌. 너그럽게 빠져나갈 길을 터 줌. 반대 의미.[2]
  • 발본색원(拔本塞源): 폐단의 근원을 아주 뽑아 없앰.
  1. ↑ 1.0 1.1 1.2 1.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일망타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D%BC%EB%A7%9D%ED%83%80%EC%A7%84, 확인날짜=2026-09-27.
  2. ↑ 2.0 2.1 2.2 2.3 2.4 2.5 2.6 2.7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一網打盡”,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60, 확인날짜=2026-09-27.
  3.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 “一網打尽”,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0%E7%B6%B2%E6%89%93%E5%B0%BD, 확인날짜=2026-09-27.
  4. ↑ 4.0 4.1 탈탈 등, 《송사(宋史)》 권442 〈문원전(文苑傳) 4·소순흠(蘇舜欽)〉.
  5. ↑ 5.0 5.1 5.2 5.3 5.4 위태(魏泰), 《동헌필록(東軒筆錄)》 권4. 판본에 따라 ‘劉待制’가 ‘劉侍制’로 된 것도 있다.
  6. ↑ 구양수, 〈호주장사소군묘지명(湖州長史蘇君墓誌銘)〉, 《구양수집(歐陽修集)》 권30.
  7. ↑ 이도(李燾),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 권153.
  8. ↑ 8.0 8.1 8.2 탈탈 등, 《송사》 권314 〈범순인전(范純仁傳)〉.
  9.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一網打盡”, https://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 확인날짜=2026-09-27.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281권, 성종 24년 8월 10일 임신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ia_12408010_004, 확인날짜=2026-09-27.
  11. ↑ 표연말(表沿沫), 《남계집(藍溪集)》 〈사화수말(史禍首末)〉; 홍귀달(洪貴達), 《허백정집(虛白亭集)》 〈허백선생연보(虛白先生年譜)〉.